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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분명한 YES, 분명한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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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분명한 YES, 분명한 NO!
오늘부터 좋다, 싫다, 그렇다, 아니다를 분명하게 말하는 연습을 해보자.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 ©Dai Manuel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mail protected]

분노 표현하기
분노를 무조건 참기보다는 밖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 육체적, 정서적 건강에 유익하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분노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분노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감정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되도록이면 화를 내지 않거나, 화가 나더라도 어지간하면 감정을 억누르며 참고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분노를 잘 참고 밖으로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의 감정은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화가 났을 때 직접적으로 말을 안 할지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든지,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는다든지, 갑자기 연락을 끊는다든지 하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화를 표출한다. 바로 수동 공격적인 방법(Passive-Aggressive)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말없는 분노
수동 공격적인 분노의 표현은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인간관계에 해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수동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 관계를 단칼에 끊어 버릴 수도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 정말로 상처를 줄 의도가 있었는지 확인하거나, 화해할 기회도 가져보지 못한 채 그 사람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은 왜 내가 거리를 두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할 수 있다. 거칠고 폭발적인 분노 표현이나, 이런 수동 공격형 분노 표현이나 둘 다 가까운 사람을 잃어 버리기는 매한가지다.

자존감 문제
수동 공격적인 분노 표현은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상대방의 기분과 뜻에 맞춰주는 속 깊은 배려도 도에 지나치면 분노의 씨앗이 되는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상대방을 배려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불편한 것들을 표현하지 않고 양보하지만, 나의 배려가 점점 당연시되면서 슬슬 억울해지기 시작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뒤에 어쩌면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자존감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면 상대방이 나를 거부하거나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배려라는 가면 뒤로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말을 안 한다고 해서 그 감정이 표현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표정으로든, 눈빛으로든, 행동으로든, 우리의 감정을 드러낸다. UCLA 심리학 교수 메라비언의 연구에 의하면, 의사소통의 93%는 말이 아니라 이런 비언어적(None-verbal) 양식을 통해 일어나며, 말은 단지 7%의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싹싹한 신입사원 T양
상담소를 찾은 T양은 새 직장에 들어가서 6개월을 넘긴 적이 별로 없다. 처음에는 새로 구한 직장이 마음에 들어 열정적으로 배우고 일을 한다. 똑똑하고 눈치 빠른 T양은 어느 곳에서든 잘 배우고 금방 적응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 동료들이 이렇게 싹싹하고 일도 잘하는 T양에게 자꾸만 다른 일들을 부탁하거나 시키기 시작했다. T양은 그 일들을 맡아 열심히 처리하고 도와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만이 생겨났다. 나 혼자만 열심히 하는 것 같고, 나한테만 일을 시키는 상사에 대해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띄고 거슬렸다. 자신에게 일을 떠넘기는 상사들의 문제점이 보이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태도 역시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T양은 이런 불만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태도나 표정에서 점점 적대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말투도 차가워졌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일을 더 많이 시키는 것 같은 상사나 동료들이 자신을 싫어해서 따돌리는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느새 T양은 다른 직장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T양이 어느 직장에 가더라도 이와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T양의 순수한 열정과 열심이 직장 안에서의 관계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한 의사 표현
이 사례에서 T양이 느끼는 어려움은 T양에게 일을 많이 시키는 상사나 자신을 안 도와주는 동료들에게서 기인하지 않는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거절하지 못하는 T양의 지나친 배려가 분노와 불신의 원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는 T양의 독립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동료들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고 싫어한다는 오해로 이어졌다. 자신이 다 감당할 수 없을 때 못하겠다고, 안 되겠다고 말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오는 오해와 불신을 대화로 풀기보다 수동공격적으로 표현하는 T양의 패턴이 계속적인 관계 단절로 나타났다.
분명한 Yes 혹은 No는 한편으로는 매정해 보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필요한 오해와 분노를 예방해주는 최고의 방법이다. 좋다, 싫다, 그렇다, 아니다라는 감정과 의견의 표현은 상대방에게 나 자신을 용기 있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이 간단한 말 한마디를 충분히 부드럽고 겸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듣는 사람도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표현하는 사람에 대해 야멸차다고 매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분명한 거절 의사를 밝히지 못해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말하다가, 나중에는 못 알아듣는 상대방에게 은근히 짜증을 내는 사람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 할 때 ‘예’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마 5:37) 하는 분명한 의사표현은 무례함이 아니다. 불필요한 오해와 분노를 미리 막아주는 아주 간단하고도 귀중한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