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사회
상담소를 찾는 분들이 가장 많이 토로하는 고민 중 하나가 시도때도 없이 터지는 ‘분노’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별것 아닌 일로 참을 수 없이 짜증이 나고 화를 터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저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쉽게 화가 나고, 일단 화가 나면 잘 가라앉질 않아요. 얼마 전에 아내가 제가 얘기하는 도중에 자기 말을 하느라 제 말을 끊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열이 나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화를 냈어요. 제가 그때 무슨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생각도 안나요.”
“저는 그냥 다 화가 나요. 세상만사 제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해 놓은 일이 계획에서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참을 수가 없어요.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짜증이 나요. 어떤 물건이 내가 놓아둔 자리에 있지 않으면 화가 솟구쳐요.”
사람들은 오만 가지 이유로, 혹은 자신도 잘 모르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화를 낸다. 심지어 여기저기 버럭하고 까칠하게 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사람들을 나쁜 남자, 나쁜 여자 캐릭터로 미화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을 보일듯 말듯 조금이라도 챙겨주면 ‘츤데레’ 캐릭터라며 열광한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속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라며 좋아하는 것이다.
분노의 원인
그러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매력적인 나쁜 남자, 나쁜 여자 혹은 츤데레 캐릭터와는 달리, 현실 속의 버럭남이나 버럭녀는 그저 남에게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다.
분노조절이 잘 안 되는 사람들 옆에 있다보면 갑자기 날벼락을 맞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 사람이 왜 갑자기 불처럼 화를 내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버럭 화를 잘 내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 그 배우자나 아이들은 늘 살얼음판을 걷듯 마음을 졸인다. 화 내는 사람은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도 모른 체 화를 내고, 당하는 쪽은 왜 불안한지 모른 체 끊임없이 불안증에 시달리게 된다.
분노(Angry outburst)는 많은 경우 우울증이나 조울증, 불안증에 동반되는 증상 중의 하나이다. 특히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툰 한국 남자들에게는 슬픔이라는 감정보다는 분노라는 감정이 훨씬 편안하고 익숙하다. 그래서 자신이 너무 슬프다고 말하기보다는 성질을 내는 것이 더 익숙한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 빈둥지 증후군이나 폐경을 겪으면서 전에 없이 짜증을 많이 내거나 무섭게 화를 터트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일시적인 호르몬이나 화학적 반응의 불안정 때문일 수도 있고, 계속 지속되어 왔던 정신적 문제, 스트레스 등이 분노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분노의 뿌리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늘 짜증을 내는 이유가 자신을 에워싼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분노조절 장애로 상담소를 찾은 한 내담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여편네 말 듣고 땅을 팔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금 그 땅을 가지고 있었으면 수십 배가 넘는 돈을 벌었을 거라구요.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요. 그 돈만 있었으면 내가 지금 사라져도 우리 가족은 걱정도 없었을 텐데…”
그런데 알고보니 그에게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라졌을 때 남게 될 가족을 걱정하는 불안감이었다. 그는 어릴 때 갑자기 아버지를 잃고 자기 혼자 알아서 커야 했다. 그 때문에 마음속에 늘 미래를 걱정하는 불안감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나 늘 걱정했고, 그때를 준비하며 살았다. 그런데 자신이 죽었을 때 가족이 먹고 살만큼 충분한 돈이 모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는 일요일도 공휴일도 없이 일했다. 그리고 늘 가족에게,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짜증을 냈다. 술이 있어야 잠이 들었고, 술에 취하면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함부로 뱉었다. 가정 폭력, 술 등은 눈에 보이는 문제였지만, 그의 내면에 곪은 상처의 뿌리는 불안감과 상실감이다.
분노의 이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분노와 그로 인한 행동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자신을 정죄하기도 한다. 또한 분노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오랜 친구 관계에 금이 가고 나서야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후회한다. 내가 쏟아낸 말들을 주워 담을 수도, 내가 때려부순 살림살이를 다시 붙일 수도 없다. 깊은 후회와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 하지만 어느 순간 또 다시 자제력을 잃고 만다.
분노는 양파 껍질과 같다. 분노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감정이지만, 그 껍질을 한 겹 한 겹 벗겨보면 그 안에는 아주 다양한 감정들이 숨겨져 있다. 외로움, 불안감, 슬픔, 모멸감 등 겉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취약한 감정들이다.
분노라는 껍질에 숨겨진 또 다른 감정은 뿌리깊은 죄책감일 수도 있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경계심일 수도 있다. 혹은 내가 너무 보잘 것 없게 느껴지는 자존감의 밑바닥일 수도 있다.
문제는 분노 뒤에 숨어 있는 이 아픔을 보지 못하고 단지 겉으로 드러난 분노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별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쏟아부은 분노가 사실은 자기 안의 뿌리 깊은 감정적 고통 때문임을 간과하는 것이다. 분노의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후회하게 될 뿐이다.
성찰의 시간
시편은 시를 쓴 기자들의 진솔하고 간절한 감정을 그려낸다. 그것이 불타는 분노일 때도 있고, 뼈가 마르는 그리움과 슬픔일 때도 있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찬양일 때도 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3:1)’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성토로 시작하기도 한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시6:1)’라는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시문을 열기도 한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뛰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와 같은 깊은 슬픔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 자신을 다 쏟아내는 이 노래들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내밀한 감정들을 하나하나 언어로 담는다. 그들은 그 감정을 피하지 않는다. 주님 앞에서 쏟아낸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위로하시는 주님 안에서 찬송으로 바뀐다.
우리가 남들에게 분노하고 상처주면서, 그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고 있다면, 이제는 잠깐 멈추어보자. 분노와 하나가 되어 폭발하기 전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내 분노를 들여다보자. 하나님 앞에 이 힘든 마음의 짐을 가지고 가보자. 그 감정의 껍질들을 하나 하나 벗겨내는 것은 위험하고 아픈 일이지만,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시는 아버지 안에서는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