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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분노의 뿌리 ① – 힘에 대한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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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분노의 뿌리 ① – 힘에 대한 갈망
어린 시절의 무력감이 힘에 대한 갈망과 분노로 발전할 수 있다. ©heysigmund
심연희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mail protected]

분노의 근본 원인
갈등은 우리 삶에 늘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그리고 갈등에서 오는 좌절감, 두려움, 분노 또한 당연한 감정이다. 그런데 양파처럼 겹겹이 싸인 분노의 껍질을 까보면 꽤나 의외의 모습이 숨어 있다.
상담을 오신 분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무슨 일 때문에 갈등이 일어났는지 그 구체적인 사건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시간을 안 지키고 계속 늦는 친구 때문에 짜증이 난다, 아무리 치우라고 해도 돼지우리 같은 딸 아이 방 때문에 폭발했다, 말이 안 통하는 배우자 때문에 열 받는다, 업무평가서에 부정적인 코멘트를 날린 상사가 꼴도 보기 싫다 등등 나에게 분노를 불러온 일상의 크고 작은 해프닝들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데 한 사람의 삶에 드러나는 여러 갈등의 원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예전에 싸웠던 문제로 또 싸우고, 전에 열 받았던 비슷한 일로 또 화를 낸다.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사건들을 꿰뚫고 있는 한두 가지 핵심 이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분노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 즉 분노의 깊은 심층에 숨겨진 이슈(Hidden issue)이다.

파워 이슈
그 근본적인 이슈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힘(Power)이다. 파워가 분노의 방아쇠를 당기는 숨겨진 이유인 것이다.
파워게임은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사람들이 대화하다가 갑자기 “누구 맘대로!” 하며 언성을 높일 때, 그 이면에 파워 이슈가 있다. 직장에서 내 영역을 침범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동료 때문에 짜증이 나고,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초장에 기선을 잡아야 평생이 편안하다며 기싸움을 하고,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저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하며 대드는 이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는 자신의 파워를 확인하고 지키고 키우려는 파워 이슈가 숨어 있다.

힘에 대한 갈망
인간은 누구나 힘을 갖기를 갈망한다. 인생을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고 싶어 한다. 그 결정체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했던 아담과 하와의 갈망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생육하고 번성하며 만물을 다스릴 파워를 허락하셨지만 인간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고 싶어 했다. 이처럼 파워는 인간의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거대한 욕망이다.
동시에 힘에 대한 욕망은 인간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힘을 갖고자 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생존본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갓난 아기 때부터 이것을 몸으로 체득한다. 자신이 울 때마다 엄마가 우유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된 아기는 자신이 가진 힘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다. 반대로, 울어도 먹을 것을 주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아기들은 무력감을 먼저 배운다.
파워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에게 힘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누군가 내게 갑질을 해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강간을 당한 여자들이 그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파워가 다른 사람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당한 충격 때문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힘에 휘둘리거나 나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이 닥칠 때 우리는 불안감을 느끼며 주먹을 쥔다. 나를 지키기 위한 힘이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S씨의 분노
S씨가 아내와 크게 싸우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집안의 큰 일을 결정할 때 S씨가 아내와 아무런 의논도 없이 갑자기 일을 벌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은 S씨가 혼자 나가더니 차를 바꿨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그렇게 큰 돈이 드는 일을 자신과 상의 한마디 없이 저지르는 S씨 때문에 그의 아내는 펄펄 뛰었다.
S씨는 위로 여러 명의 형과 누나들이 있는 집안의 막내로 자랐다. 막내로서 부모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웬만한 실수도 눈감아주는 특혜를 누렸다. 그런데 문제는 막내인 자신의 위로 너무나 많은 보스들, 즉 형과 누나들이 있었다. 막내인 그의 의견은 ‘어린애가 뭘 아냐’며 늘 뒷전으로 밀렸고, 무슨 일을 하려면 허락 받아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가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부딪힌 벽은 ‘나에게는 힘이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S씨가 어른이 된 후로는, 누군가 자기 의견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거나 자신의 생각이 관철되지 않는 상황에서 너무나 화가 났다. 어릴 때부터 층층시하 보스들 밑에서 느낀 분노와 무력감이 현재 S씨의 인간관계에서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S씨는 아내가 자신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존중하지 않는 듯이 느껴지면 불같이 화를 냈고, 어떤 일을 아내와 상의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저질렀다. 그의 분노는 자신에게 아무런 힘도, 결정권도 없다는 억눌린 무력감의 다른 얼굴이었다. 이럴 때 만약 자기 내면의 핵심 이슈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면 자신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을 할퀴게 된다.

진정한 파워
다윗 역시 집안의 막내로 자랐다. 집안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고 식구들의 잔심부름이나 하는 존재로 여겼다. 선지자 사무엘이 집에 방문하는 것과 같은 특별하고 중요한 행사에는 아예 끼지도 못했다. 그의 의견 따위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매우 특별한 점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힘을 욕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윗은 진정한 파워가 누구에게서 나오고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지하는 그에게는 자신의 작은 힘이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또한 누구도 그를 주눅들게 할 수 없었다.
분노로 치닫는 반복적인 갈등과 문제의 이면에는 숨겨진 핵심 이슈가 있다. 우리의 분노에는 여러 가지 다른 얼굴이 있는 것이다. 살면서 계속 반복되는 싸움이나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쉽게 분노로 치닫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 때,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 분노의 깊은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채워지지 않은 힘에 대한 갈망과 그 안에 숨겨진 두려움과 무력감, 불안감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기성찰의 과정이 없이는, 자신의 분노를 자극하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그 분노와 한 덩어리가 되어 누군가를 치받고 상처주는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무력함을 뛰어넘는 진정한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항복함이 없이는, 우리는 날마다 힘을 찾아 세상을 헤매게 될 것이다. 늘 채워지지 않는 힘을 갈망하고, 내가 가진 힘을 지키려 몸부림치며, 더 큰 힘을 갖는 것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 굳게 믿지만, 실상은 깊은 절망과 분노만을 부르는 힘을 갖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