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삶
한국에 계신 어느 강사 목사님이 우리 교회로 집회를 오셨을 때 시차 때문에 피곤하지 않으신지 여쭤본 적이 있다. 한국과 미국은 밤낮이 뒤바뀌는 시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처음 한두 주는 꼬박 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시차로 인한 불편함이 거의 없다고 하셨다. 아무 때나 잠이 오면 자고, 깨면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기도를 하신단다. 밤에 억지로 자야겠다는 생각이 없으니, 잠이 안 오는 밤이나 새벽이 특별히 고역스럽지 않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니 문득 갱년기를 별로 힘들지 않게 잘 지나가셨다는 어느 집사님이 떠올랐다. 그분에게도 갱년기의 흔한 증상 중 하나인 불면증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런데 자다 깨지면 그냥 일어나서 이 일 저 일 하다가 잠이 오면 자고, 안오면 그냥 일어나 일을 가신단다. 그러면 다음 날은 어찌 되었건 푹 주무신다나…….
이 정도로 유연하게 인생의 리듬을 타는 분들에게는 불면증이 와도 별 문제가 안 될 것 같다. 잠이 안 오면 다른 일을 하면 되고, 오늘 잠을 못 자면 내일은 단잠을 잘 수 있으니 만사가 다 편안하다.
문제 없애기
사람들이 상담을 원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불편한 증상을 없애는 것이다. 삶의 골칫거리를 없애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울둑불둑 화가 치미는 증상을 없애고, 불면증을 없애고, 우울감과 불안감을 없애고 싶어한다. 남편이나 아이들의 문제를 없애고, 집안에서의 싸움을 없애고, 사회에서, 교회에서 갈등을 없애고 싶다. 그래서 문제가 없던 옛날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생각처럼 빨리 없어지지 않을 때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누군가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시원찮은 상담자를 비난하거나 가족을 증오하기도 하고, 직장 동료나 상사, 교회의 성도 혹은 목회자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가장 심하게 비난한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대체 남들보다 뭐가 모자라 이러고 있나, 별 생각을 다한다.
이런 증상이나 문제들을 없애려고 집요하게 집중하면 할수록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문제가 너무 커져서 점점 내 삶 전체를 마비시키고, 나 자신은 아무런 힘이 없는 피해자처럼 생각된다. 문제가 나를 지배하고 삼켜버린 것이다.
문제 받아들이기
앞에서 소개한 목사님이나 집사님의 경우 밤에 잠이 안 오는 것이 꽤 힘든 문제일 수도 있었지만 그 문제를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문제를 없애려고 애쓰지 않았다. 대신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일에 집중했다. 그래서 시차 덕분에 독서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늘었고, 불면증이 다음 날 꿀잠을 자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불편한 증상이나 문제를 제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오히려 그 문제가 작아져 버리는 희안한 현상이 벌어졌다.
상대방 받아들이기
아내나 남편의 단점을 고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헤어지겠다고 마음먹고 마지막에 상담자를 찾는 분들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상대방의 문제를 고치려고 하다하다 안 돼서 이제는 그만 포기하고 상대방의 모자란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부부관계가 회복되는 일을 종종 목격한다. 돈 한 푼에 벌벌 떠는 남편에게 노랭이라고 욕하다가, 상담을 통해 어린 시절 갑자기 집안이 망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관계가 전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늙음 받아들이기
우리 교회에 참 존경받고 사랑받는 권사님이 계신다. 다리 관절과 허리가 너무 안 좋으신 탓에 늘 구부정한 자세로 절뚝절뚝 걸으신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예배가 끝난 후에도 제일 늦게 일어나 나오신다. 그런데 그 육신의 고통이 권사님 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울 수는 없었다. 늘 농담을 즐기시며 한없이 다정하시다. 오늘은 몸이 좀 어떠신지 안부를 물으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신다.
“나이 들면 다들 여기저기 아픈 법인데, 저만 안 아플 수 있나요? 아픈 것도 다 그러려니 하면, 이렇게 나와서 예배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지요.”
나이듦과 육신의 노쇠함까지 겸허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기쁨과 감사를 빼앗기지 않으시는 모습이 우리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고 도전이 된다. 그분 안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함과 견고함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수용하기 시작하면 치유되기 시작한다. 어쩌면 변화는 상황을 바꾸려고 애쓰는 수많은 시도에서부터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임에서 시작될 수 있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병을 받아들이고 마주할 때 치료책을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 문제와 함께 가야 하는 삶을 받아들일 때 그 다음 단계가 보이고, 더 중요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문제와 동행하는 것을 배울 때 문제는 해결을 향한 디딤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