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몇 달간 골치를 썩었던 문제가 있다. 언제부턴가 집 주위에 개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개똥이 집 주위의 보도를 따라 열 군데가 넘게 늘어서 있었다. 며칠 동안 집 주변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범인은 이사온지 얼마 안 된 옆집 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마다 옆집에서 데리고 나온 강아지가 우리집 주변에서 큰일을 보고 유유히 사라지곤 했다.
어느 날 마주친 옆집 아저씨에게 개똥을 치워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옆집 아저씨 왈, “겨우 이런 일을 가지고 투덜대다니, 참 좋은 이웃이네.” 하며 빈정대고 가버렸다. 순간 어이가 없고, 화가 치솟았다. 그날 이후 옆집과 개똥을 사이에 둔 전쟁이 시작되었다.
개똥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인터넷 검색도 하고,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했다. 우스운 일 같지만 이런 문제로 골치를 썩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던지 이래저래 한마디씩 조언을 해주었다. 그중에는 개가 똥을 싸면 그걸 옆집에 다시 던지라는 귀에 착 붙는 조언도 있다. 별로 효과는 없었지만 마당에 뿌리는 약도 사다 뿌리고, 똥이 있는 자리에 깃발도 꽂아보고, Home Association에 이메일도 보냈다. 그러자 우리가 바짝 경계태세에 돌입한 것을 알아차린 옆집의 중학생 아이들이 이에 질세라 우리집 마당에 장난질을 하고 도망가기도 했다.
이쯤 되니 어느 순간 성경책을 읽다가도 창밖을 노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솟아나는 미움에 죄책감을 느끼다가도, 옆집 사람들의 무례함에 약이 바짝바짝 올랐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는 사이 반 년이 훌쩍 지나갔다. 개똥 가지고 씨름하는 일이 이렇게나 스트레스가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신경 쓰며 살기
얼마 전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던 이라는 황당한 제목의 책이 한국말로는 비교적 점잖게 <신경끄기의 기술>로 번역되어 나왔다. 원작으로 보면 제목보다 더 수위 높은 욕설이 난무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 막말 뒤에 꽤나 깊이 있는 통찰력이 숨어 있다.
저자인 마크 맨슨(Mark Manson)은 우리가 평소 정말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산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산다는 것이 늘 녹록치 않은 일이기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훅 치고 들어올 때가 많다. 그런 일을 당하면 우리는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아 보일지, 혹은 별볼일 없는 인간으로 비춰질지 신경을 쓰며 전전긍긍한다.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뒤에서 내 욕을 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또한 내가 뭘 몰라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 늘 경계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골목길에 숨어 있던 복병을 만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평생을 이런 저런 일로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산다.
신경 끄고 살기
그런데 저자는 그 신경을 끄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경 써야 할 일과 신경 꺼야 할 일을 잘 구분하며 살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생각을 더 효율적이고 의도적으로 정돈하고 조직하자는 것이다.
두어 달 동안 개똥 때문에 옆집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결과, 옆집 가족들의 얄미운 태도와 개똥은 확실히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내가 기필코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 옆집 사람들에게 벌금을 물리고야 말겠다며 창밖을 째려보고, 또 어느 날은 용서에 관한 책을 들춰 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옆집을 쳐다보지 않게 된 계기가 있었다. 손님들을 여럿 치르며 유난히 바쁜 한 달을 보내면서였다. 우리 집에 오고 가시는 손님들을 치르느라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어느 새인가 옆집 개가 나와서 똥을 싸는지 오줌을 싸는지 신경도 안 쓰게 되었다.
그러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화가 나서 마당을 지켜보는 일이 없어지니 옆집 사람들도 시큰둥해졌는지 우리 집 앞으로 왔다갔다 하는 일이 줄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살펴보니 더 이상 개똥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내 신경이 우리 집에 오신 손님들을 잘 대접하는 데 쏠리다보니 옆집 사람들을 미워할 시간이 없어진 것이었다.
중요한 일에 집중
마크 맨슨에 의하면 신경을 끈다는 것은 세상사에 무관심해지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고 은둔자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덜 중요한 일에서 더 중요한 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그저 어깨 한 번 으쓱하며 피식 웃고 지나가고, 대신 진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마치 개똥에서 고개를 돌려 내가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하는 것이다.
이 신경끄기의 기술은 우리 삶의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숙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음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사명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고난이 그저 삶의 작은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교회에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다고 해서 교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상기시켜준다. 또한 사랑에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단점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말해준다.
어쩌면 우리는 쓸데 없는 것에 목숨을 걸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옆집 개똥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반 년을 허비하듯이……. 그것은 우리가 진짜 신경 써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잠깐 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신경을 온통 사로잡은 문제가 있다면 자문해보자. 이것은 나에게 진짜 중요한 문제인가? 만약 아니라면 고개를 돌려 진짜 중요한 것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