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생활
성찬경
오늘도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모차르트와 베토벤과 슈베르트와
세계 일류의 연주가들을 부려먹었다.
나는 사정없는 주인이었고 그들은 불평없는 머슴이었다.
리모콘 단추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낯익은 곡들을 듣고 또 듣고 듣고 또 듣는다.
아아, 어느 제왕이 나 같은 호화생활을 누렸겠는가.
너무 가혹하지 않아? 가책도 느끼지만
나는 이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다.
미(美)의 나라가 열리고 슬픔이 빛나지 않는가.
문제 많은 현대문명이지만
이러한 기적을 낳기도 한다.
나는 오는 날도 오는 날도 호화생활을 이어간다.
▶ 성찬경 (1930~2013) 시인, 영문학자. ‘60년대 사화집’ 동인. 시집으로『 화형둔주곡 』, 『 영혼의 눈 육체의 눈 』. 『거리가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든다 』등이 있다.
▶ 시 해설
참으로 즐거운 상상력이자 호쾌한 발상이다. 읽으면서 저절로 ‘정말 그렇구나! 맞아, 나는 옛날 어떤 제왕보다 더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사람이야!” 하고 동의하게 된다.
한번 초청하여 연주를 들으려면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을 주어도 여간해선 초청할 수도 없는 일류 연주가들을 마음대로 불러온다. 이들을 시켜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의 명곡들을 아침부터 밤까지 연주하도록 계속 부려먹는다.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나는 사정없는 주인이고, 그들은 불평 없는 머슴이다. 듣고 싶은 곡을 듣고 또 듣고, 듣고 또 듣는다. 이런 제왕이 어디 또 있겠는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가책도 느끼지만 이 호화생활을 물리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현대 과학기술과 물질문명, 자본주의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그러나 때로는 우리 같은 사람이 이런 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기적을 낳기도 한다.
시인들은 이처럼 이미 존재하는 현실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삶을 새롭게 바꾸는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독자 여러분들도 삶이 비록 힘들고 지치더라도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시도 읽으면서, 잠시라도 넉넉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제왕 같은 호화생활을 누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