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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시] 봄바람 난 년들 – 권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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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시] 봄바람 난 년들 – 권나현

봄바람 난 년들

권나현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말 매화년이
바람이 났다네

고추당초보다
매운 겨울살이를
잘 견딘다 싶더만
남녁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
귓가에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아이고~
말도 마소!
어디 매화년 뿐이것소
봄에 피는 꽃년들은
모조리 궁딩이를
들썩 대는디
아랫말은
난리가 났당께요
키만 삐쩡큰 목련부터
대그빡 피도 안마른
제비꽃 년들 까정
난리도 아녀라

워매 워매 ~
쩌그
진달래 년 주딩이 좀보소?
삘겋게 루즈까정 칠했네
워째야 쓰까이~

참말로
수상한 시절이여
여그 저그 온 천지가
난리도 아니구만
그려 ~
워쩔수 없제
잡는다고 되것어
말린다고 되것어
암만 고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안혀라

보소
시방 이라고
있을때가 아니랑게
바람난 꽃년들
밴질밴질 한
낮짝 이라도
귀경할라믄

우리도 싸게
나가 보드라고…

▶ 시 해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상상력은 아마도 사물을 의인화하는 데서 싹트지 않았을까요? 이 시는 의인법과 토속 사투리의 맛이 찰떡궁합으로 어우러진 시입니다.
매화, 목련, 제비꽃, 진달래 같은 봄꽃들을 꽃년들에 비유하고, 처녀 귓가에 속삭대는 봄바람을 사내놈으로 보았지요. 저 남쪽 아랫말에서부터 전해온 꽃년들 바람난 얘기를 능청스러운 화자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시침 뚝 떼고 천연덕스럽게 읊어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예전에 시골 처녀 봄바람 났다는 얘기 많이 들어보셨지요?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하는 노래도 있구요. 워매 워매~ 워째야 쓰까이~ 모조리 궁딩이를 들썩대고, 주딩이에 뻘겋게 루즈까정 칠한 년들이 난리도 아닌데.
봄은 이렇게 왕성한 생명력이 꽃피어나는 계절입니다. 잡는다고 되지도 않고, 말린다고 말려질 일도 아닙니다. 이걸 누가 막겠습니까!

봄에 꽃 피는 이야기, 생명들이 약동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하니까 참 새롭고 맛깔나고 재미지지요?

어떠신가요, 한창 피어오른 처녀들 얼굴처럼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봄꽃들 구경 하려거든 꾸물거리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우리 싸게 나가 보지 않으시렵니까?

▶ 권나현 (19~ ). 경북 영주 출생. 2016년 한국문학정신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으로『입술 』이 있다. 한국문학정신 여성작가위원장. 2017년 펜 타임즈 올해의 인물상, 2018년 들뫼 문학상 수상.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