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귀
뾰족한 송곳을 바늘이라 하지 않는다
바늘귀가 없으면 바늘이 될 수 없다
바늘은 찌르기도 하지만 아픈 곳 꿰매준다
나는 누구의 상처 꿰맨 일 있었던가
찌르고 헤집으며 상처 덧나게 했지
손끝에 바늘귀 달아 아픈 너 여미고 싶다
▶ 김영재 (1948~ ) 시인. 전남 순천 출생. 197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목련꽃 벙그는 밤』, 『녹피 경전』 등 10여 권. 고산문학대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 시조 해설
어느덧 12월을 맞이합니다. 또 한 해가 지나가는군요. 연말이 되면 우리는 대부분 한 해를 돌아보며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이번 연말에 자기성찰과 반성을 주제로 한 시조 한 편을 소개합니다.
이 작품은 2019년 유심작품상 시조부문 수상작인데, 송곳과 바늘을 대비하면서 삶의 비의를 짚어낸 솜씨가 일품입니다.
송곳과 바늘은 둘 다 그 끝이 뾰족하지만 ‘귀’가 있고 없음으로 해서 명칭이 갈리게 됩니다. 바늘처럼 뾰족한 송곳을 바늘이라 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귀가 있는 “바늘은 찌르기도 하지만 아픈 곳 꿰매준다”는 데에 화자의 생각이 모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누구의 상처 꿰맨 일 있었던가”라고 자문하기에 이릅니다.
“찌르고 헤집으며 상처 덧나게”한 이제까지의 못난 행동들 돌아보고, 마침내 “손끝에 바늘귀 달아 아픈 너 여미고 싶다”는 늦은 깨우침 끝에 간곡한 바람을 담게 됩니다.(심사평 참조)
애독자 여러분도 남은 올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더 알찬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