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물
– 임문혁
스무 살 출렁이는 잎새
푸른 가슴으로 맞는 가시 철조망
높은포복 낮은포복
뜨거운 땀방울로 빠져나갈 때
언제나 아파오던 허리 근처
가슴 속 갈구리 몇 개
겨냥한 가늠자 사이로
북한강이 보이고, 철조망 밑을
그저 알몸으로 가슴 허리 잘리며
흐르는 강물
아카시 숲속을 찢긴 등허리가 달리고
맴을 도는 긴긴 신음의 흐름
끊긴 수 없는 물
알몸으로 가슴으로 밀며
아프게 아프게 흐르면서
▶ 작가의 말
이 시는 제가 스무 살 청년이던 시절 군복무를 하던 아픈 경험을 쓴 시입니다.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한 상태에서 철조망 밑을 가슴 허리 잘리며 흐르는 북한강을 보았습니다. 그 강물이 우리의 맨몸처럼 느껴졌습니다.
물은 원래 끊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한 핏줄 한 민족은 끊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물은 아직도 끊기며 흐르고, 우리 한민족은 허리가 끊긴 채 신음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한반도에 서서히 평화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비극의 역사를 딛고 하나된 몸, 하나된 마음으로 세계 평화와 번영의 새 로운 시대를 열어 가기를 기원합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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