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들의 관심사
몇십 년 전, 매주 독서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책의 저자, CEO,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강의를 했다. 그런데 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누가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으면, 어떤 전략으로 성공했고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핵심 관심사일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그 모임의 사람들은 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 민족의 앞날을 이야기했다. 여성이 사회의 주체로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강조했다.
나는 내심 놀랐다. 성공하면 모두 애국자가 되는 건가? 솔직히 그때는 거대 담론으로 포장된 고상한 얘기처럼 들렸다. 속으로는 이익을 따지면서 겉으로는 좋은 말을 하는 허세가 아닌가 의심했다. 심지어 나는 해양업에서 큰 사업을 일으킨 분에게 손을 들고 이런 질문을 했다. “사업가로 성공하셨는데, 자신의 사업보다 국가와 민족을 더 고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의식과 관심사
그런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고상한 허세로 들렸던 것은 그때 내 의식 수준이 딱 그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친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중세 때도 궁정의 어젠다와 시장 골목의 어젠다는 달랐지”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흠……, 내 의식 수준이 시장 골목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와 같다는 거지?’
그때 나는 무엇에 몰입하고 있었던가? 한 기업의 본부장으로서 나는 어떻게 하면 매출을 늘릴까, 좀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거기에 날카롭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음은 분명하다.
성인의 발달 단계
사람은 의식의 발달 수준에 따라 다룰 수 있는 복잡도가 다르다. 코칭 슈퍼비전을 공부하다 보면 성인 발달 이론이 나온다. 인간은 아동기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의식 수준의 발달을 계속해 나가기 때문이다. 톨버트(Tolbert)는 성인 발달 단계를 7단계로 설명한다. (Seven Transformations of Leadership,
Tolbert & Rooke, Harvard Business Review, 2005)
1단계는 기회주의자다(Opportunist). 이들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자신의 성공이다. 따라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내가 이겨야 하고, 나에게 좋은 것이 곧 선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한다.
2단계는 외교관이다(Diplomat).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갈등을 회피하고, 조직에서 소외될까봐 두려워 집단의 논리를 따르며, 그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지상과제다.
3단계는 전문가다(Expert). 지식과 논리, 전문성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자기보다 경험이 적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4단계는 성취가다(Achiever). 이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몰입하고, 성취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팀워크를 촉진한다. 4단계에 도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을 멈춘다. 업무 효율성이 높아 더 이상 혁신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5단계는 개인주의자다(Individualist).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다.
6단계는 전략가다(Strategist). 비로소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게 되고, 기존 관념에 도전하며 사람과 조직을 혁신하는 역할을 한다.
7단계는 연금술사다(Alchemist). 이들은 사회 전반에 변혁을 가져오며, 복잡한 이해관계를 흑백논리를 넘어 더 고차원적인 사고의 틀에서 해결할 수 있다.
나의 의식과 과업
성인 발달 이론의 핵심은 발달 단계에 따라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복잡도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1단계인 기회주의자는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을 책임을 질 수 없다. 따라서 하나의 팀을 이끌려면 최소한 4단계 성취가 수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지속가능성과 브랜드에 대한 책임은 6단계 전략가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하다.
복잡도로 따지자면 정치는 7단계 연금술사 수준의 성숙도가 요구된다. 진정한 정치는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고차원적인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대선 전야의 상황을 보고 있자면, 정치인들이 그만한 의식 수준을 갖췄는지 반문하게 된다. 성취가나 개인주의자, 심지어 기회주의자의 언행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왜 사업을 하는가?
최근 이나모리 가즈오의 신간 < 왜 사업하는가>를 읽었다. 그는 교세라(Kyocera)의 성공 신화와 뚜렷한 경영철학 덕분에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경영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경영자의 자세, 즉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그가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일본항공(JAL)의 무보수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경영철학의 전파였다. 일체감이 없고 패배감이 팽배한 조직의 분위기 속에서 회사가 도산했다는 현실을 깨닫게 하고 반성하고 용기를 내어 개혁에 나서게 한 것은 인센티브 제도가 아니라 그의 경영철학이었다. 공항 카운터의 고객상담 직원, 객실 승무원, 기장과 부기장, 정비사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직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며 불요불굴(不撓不屈), 즉 흔들리지 않고 굴하지 않는 마음을 갖도록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녹아내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항공 직원들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냈다. 승무원들은 기내에 갇힌 승객들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제공하고, 라운지에 갇힌 고객들에게는 사비를 들여 초콜릿을 사다 주며 허기를 달래게 했다. 또한 재난 지역으로 달려가는 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위로 방송과 격려 편지를 건네고, 자식에게 가는 길이 끊긴 노모를 직접 모셔다 드리는 등 참으로 감동적인 일들을 조용히 해냈다. “뜻을 높이고 경영을 발전시킨다”는 그의 일관되고 이타심을 강조한 경영철학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자기 성찰
나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나 자신의 성공과 조직의 이익만 생각하는 단계를 벗어나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영자의 자세를 깊이 생각해본다. 또한 다른 이들의 언행을 관찰하며 그들에게 적합한 업무와 발전 포인트도 함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