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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기] 미국 남편이 반한 한국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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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기] 미국 남편이 반한 한국 아이스크림
바밤바 ©CLEDA

밤은 먹는 게 아니야!
일본에서 남편과 데이트를 할 때 요코하마의 차이나 타운에 간 적이 있어요. 차이나 타운인 만큼 중국색이 가득한 거리에 중국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고, 길거리에서는 중국식 만두와 구운 단밤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차이나 타운 ©스마일 엘리

그런데 제 입맛은, 아주 좋게 표현하자면 ‘클래식’해서, 밤, 홍시, 팥, 떡, 죽 등 주로 할머님들이 좋아하시는 것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 단밤은 양 옆을 살짝 눌러주면 밤이 “오?”하며 입을 벌리고 알맹이가 “쏙!”하고 튀어나오잖아요? 까는 재미도 있고, 먹는 재미도 있고, 맛도 있어서 너무너무 좋아하기에 제가 그 앞을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봉지를 샀습니다. 남편은 밤을 이 때 처음 보았는지 저에게 물어보더라고요.

달콤하고 맛있는 단밤 ©외상닷컴

“그게 뭐야?”

“체스트넛(밤)이야. 나 이거 너무 좋아해!”

“뭐? 밤을 먹는다고? 밤은 먹는거 아니야!”

“밤 먹는 거 맞아. 한국에서도 밤 먹고, 일본 사람들도 밤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한번 먹어봐!”

이렇게 맛있는 밤을 ‘먹는 것’이 아니라니 황당했지만, 분명히 맛을 보면 달달한 밤맛에 좋아할 거라고 확신하고는 남편에게 밤 까는 법까지 알려주며 먹어보게 했죠. 그렇게해서 밤 한 알을 입에 쏙 넣은 남편이 두세 번 우물우물 씹더니 갑자기 오만상을 찡그리며 밤을 삼키지도, 더 이상 씹지도 못한 채 어버버버하며 말하기를,

“나 이거 도저히 못 먹겠어. 뱉어도 돼? 미안해.” 하더라고요. 못 먹겠으면 그냥 뱉으면 되지 뭘 또 허락까지;;; 이런 매너 있는 남자를 봤나 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남편은 밤을 먹어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못 먹고 뱉어냈답니다. 밤은 먹는 게 아니라는 편견을 가지고 먹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먹어보려고 시도는 했고, 안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후로 저는 남편에게 밤을 권하지 않았죠.

이거 뭐야?
그러던 어느 날, 샌디에고에 살 때 한국 슈퍼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남편의 수정과 사랑은 다들 아시겠지만, 남편은 한국 슈퍼에 갈 때마다 반드시 수정과를 사고, 과자는 바나나킥과 마가렛트를 샀어요.

그러다 우연히 아이스크림 코너에 갔는데, 남편이 갑자기 “이거 뭐야?” 하고 집어든 아이스크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밤맛이 나는 바밤바였어요! (메인 사진)

위의 대화에서 짐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단밤밖에 모르고 그냥 밤은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옆에 밤 사진이 떡~ 하니 그려져 있어도 이게 밤이지 모르는 겁니다.ㅋㅋㅋ 저희 남편이 바로 ‘눈뜬 장님 미국인 버전’이었던 거죠.ㅎㅎㅎ

“이게 뭐야? 이거 맛있을 것 같아. 어때? 맛있어?”

순간, 고민합니다. 이거 밤이라고 얘기를 해줄까 말까??? 분명히 제가 밤이라고 하면 지난 번 단밤의 기억을 떠올리며 금방 내려놓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편견 없이 우선 맛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먹여보고 얘기해 주기로 합니다. 그래서 남편의 질문을 교묘히 피해서 이렇게 말했어요.

“이거 정말 맛있어! 이거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야! 한번 먹어봐!”

실제로 저희 친정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거든요. 장모님이 좋아하신다니 저보다 더 믿을 만했던지 덥썩 장바구니에 담더라고요.

미국에서 파는 바밤바는 낱개가 아니라 보냉팩에 6개가 들어 있는데, 그렇게 한 팩을 사서 집에 오자마자 뜯어서 둘이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 먹었답니다. 저는 남편의 눈치를 살폈죠. 한 입을 베어 물고 입 안에서 바밤바의 맛을 음미하던 남편이 말했습니다.

“오~ 이거 꽤 맛있는데? 나 이거 좋아!!! ”

“그래? 그 아이스크림 무슨 맛 나는데?”

“바나나맛! 이거 바나나맛 아이스크림 아냐?”


해맑게 웃고 있는 이 귀여운 밤들의 존재는 깡그리 무시한 채, 너무나 태연하게 바나나맛 아이스크림이랍니다. 참 내~

밤맛 아이스크림이야!
“이거 밤맛이야. 맛있지? 지난번에 먹었던 단밤이랑 맛이 다르지? 그치??”

“거짓말!!! 이거 바나나야. 바나나 과육도 씹혀!”

“그거 밤이야. 그리고 포장지를 봐. 얘네가 바나나야? 한국인 바보야? 바나나 넣어서 만든 아이스크림 포장지에 밤 사진을 그려 놓게? 이거 밤 사진이야!”

제가 바밤바 포장지를 남편 눈앞에 들이대고 흔들며 목소리를 높이니 자기도 무안한지

“알았어! 알았다고! 좀 진정해!!!”

하더니만 밤은 사람이 먹는 게 아니라던 편견과 밤은 맛없다는 옛 기억을 버리고 마지못해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습니다.

미안, 내가 다 먹었어…
그리고 다음 날. 저는 마침 저희 동네에 살고 있던 일본인 친구가 생겨서 그녀와 커피를 마시기로 하고 외출을 했지요. 그때가 토요일이라 남편은 집에 있었어요. 친구와 네 시간 정도 신나게 수다를 떨고 집에 왔더니 남편이 제 눈치를 자꾸 살피는 겁니다. 그러더니 저한테 어제 한국 슈퍼에서 뭐 빠뜨리고 안 사온거 없냐며, 살 거 있으면 가서 사오자는 거예요. 한국 슈퍼는 제가 가자고 하지 않은 이상 남편이 먼저 가자고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남편이 뭔가 사고 싶은 게 있다는 의미였죠.

“난 살 거 없는데??? 왜? 뭐 살거 있어?”

그랬더니 제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더니 갑자기 제 마음 약해지게 만드는 애교 필살기인 입술 내밀고 고개 푹 떨구기를 보여줍니다.

“자기야… (한숨 푹~~~) 진짜 미안한데, 내가 바밤바 4개를 다 먹어서 냉장고에 하나도 없어.ㅠ.ㅠ 진~짜 미안해.”

하며 기가 푹 죽어서 죽을 죄를 진 사람마냥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일부러 더 오버해서

“뭐? 그걸 혼자서 다 먹었다고?? 내 꺼도 안 남겨 놓고??? 어떻게 감히 그럴 수가 있어? 자기는 밤 안좋아한다고 그랬잖아! 밤은 먹는 거 아니라고 그랬잖아! 그런데 4개를 다 먹었다고???”

그랬더니 막 입술을 삐죽삐죽거리면서

“너무 맛있어서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두 개만 먹고 두 개는 남겨 놓으려고 했어. 그런데 스낵을 찾으려고 냉장고 앞에 갔다가 바밤바를 보니까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고!!! 그래서 정말 마지막 남은 하나는 절대로 안 먹으려고 했어. 내가 얼마나 노력했다고…… 그런데 자기가 너무 늦게 왔잖아. 자기가 3시간만 놀다 왔으면 마지막 꺼는 안 먹을 수 있었어!!!”

푸하하하하하하… 제가 막 몰아붙이니까 급기야 바밤바 다 먹은 걸 제 탓으로 돌리는 이 영악함!!! 그리고 밤이 맛있다고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며 인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일부러 그걸 다 먹었냐며 나무라기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정말 뿌듯했어요. 어쨌든 먹을 수 없다고 하던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고 그 음식의 참맛을 알았으니까요. 그 이후로 남편은 한국 마트에 갈 때마다 수정과와 함께 바밤바도 장바구니에 담곤 했어요.

미국 사람들은 거의 밤을 먹지 않음 ©스마일 엘리 블로그

제가 이 글을 포스팅하기 전에 궁금해서 구글에 검색을 해봤더니 미국인들은 거의 밤을 안 먹는대요. 뉴욕의 맨하탄에서는 군밤을 팔기도 하는데 아마도 그건 뉴욕에 다민족이 밀집해 있어서인 것 같아요. 심지어 밤을 먹어도 안전하냐는 질문까지 봤네요.^^ 군밤 생각나는 겨울, 모두들 따뜻하게 보내세요.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