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이거 꼭 만들어줘
남편과 연애 시절, LA에 있는 갈비집에 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남편이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달달한 계피향이 나는 수정과를 맛본 남편은 대뜸, “이거 만들 수 있어? 결혼하면 이거 꼭 만들어줘.” “으…응… (땀 삐질;;;, 쓴 웃음을 지으며) 만들 수 있어. 만들어 줄게……”
연애 시절에 남자만 하늘의 별도 달도 다 따다 준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닙니다;;; 여자도 합니다.ㅋㅋㅋ
사실 왕년에 수정과에 잣은 좀 띄워 봤지만, 수정과를 만들어본 적은 없는데, 좌뇌 우뇌가 핑크빛 하트로 가득차 있던 시기라 핑크빛 거짓말을 하고 말았죠.
그런데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이 수정과 맛을 기억하고는 정말로 저에게 수정과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겁니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그래도 한국 음식에 애정을 보이고,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점점 늘어가는 남편이 기특하잖아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수정과 만드는 법을 폭풍 검색한 끝에 2시간이나 걸려 수정과 한솥을 끓여내고, 일주일은 두고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흐뭇했지요. 알고 보니 수정과 끓이는 법은 완전 간단하더라고요. 다만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남편도 제가 끓인 수정과를 맛보더니, “그래, 이맛이야!!! 역시 맛있어!!!” 하며 좋아하더라고요.
수정과를 끓인 다음 날, 남편은 한솥 가득하던 수정과를 1.5리터 페트병 2개에 나눠 담더니 직장에 놓아두고 마시겠다며 가져 갔습니다. (마음이 뿌듯뿌듯!!! 만들길 잘했어… 저렇게 좋아할 줄이야;;;)
그런데 그날 저녁, 수정과로 가득 채웠던 페트병들이 빈 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또 만들어 오래
“혼자서 이걸 하루만에 다 마신 거야?” “내가 수정과를 마시니까 다들 이게 뭐냐고 물어서 한국의 시나몬 티라고 했더니, 동료들이 다들 맛보고 싶어하더라고… 그래서 나눠 마셨어. 그리고 또 만들어 오래.”
또 만들어 오래?!!! 또… 또… 또…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2시간이나 불 앞에 서서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만들었는데, 그걸 또 만들라니!!! ㅠ.ㅠ 게다가 남편 동료들과 나눠 먹을 만큼 대량을 끓이라니…ㅠ.ㅠ 눈앞이 깜깜해지더군요.
하지만 이 미국 땅에서 그들에게 낯설기만 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음식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모두들 한국의 수정과를 좋아해주었다고 하니 뿌듯함과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다음날 바로 좌생강, 우계피를 양손에 들고 굳은 의지로 싱크대 앞에 섰답니다.
대형 냄비 안에서 푹푹 끓고 있는 계피를 보고 있자니 제 속도 끓고, 한편으로는 애국심(?)도 끓고, 뭐 복잡미묘한 심경이었습니다. (수정과 두 번만 더 끊였다가는 온갖 인생 철학을 다 논할 기세…)
아무튼 그 이후에도 가끔씩 대량의 수정과를 만들어 남편 직장에 보내곤 했었답니다. 하지만, 남편이 일본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더 이상 남편 직장 동료들을 위해 수정과를 만들지 않게 되었답니다. 다만 수정과를 너무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한국 식료품점에서 꼬박꼬박 주문해서 먹었지요.
시나몬 티가 너무 그리웠어요
그러다 미국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가 일본으로 전근을 오게 되었고,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동료분과 저는 반갑게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 인사가 끝나자마자 그분이 말하기를, “그건 그렇고, 미국에 있는 동안 엘리씨가 만든 한국의 시나몬 티가 너무 그리웠다고요. 저도 일본으로 왔으니, 이제 엘리씨의 시나몬 티를 다시 맛볼 수 있는 건가요?”
이 말을 들은 저는 기뻐해야 되는 거 맞죠??? ㅠ.ㅠ 아~ 기쁘다!!! 아~ 뿌듯해!!! 그런데 왜 자꾸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거지? ㅡ.ㅡ;;; 아, 나의 수정과여!!! 미국인들을 아주 그냥 중독시켜 버렸구나!!!
사실, 그분이 일본으로 오셨을 때 남편이 저한테 얘길 했었어요. “OO가 이번에 일본으로 왔어. 그런데 (제 눈치를 보며;;;) 나한테 시나몬 티가 먹고 싶다고 하더라고.”
이것은 시나몬 티를 만들어 오라는 아주 우회적인 표현이었지만 못 들은 척 할 수는 없기에 그냥 눈치 없는 척을 했는데, 그 동료분을 직접 뙇~ 하고 만나버렸으니;; 게다가 저렇게까지 직접 말씀을 하시니… 저, 큰솥 다시 꺼내야 되는 거겠죠? ㅠ.ㅠ 조만간 좌생강, 우계피를 들고 다시 한번 애국심을 불태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런데 생각만 해도 더워지네요.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mail protected]
간단한 수정과 만들기
▶ 재료: 통계피 100g, 생강 100g, 흑설탕 300g, 물 4리터
▶ 방법
1. 통계피를 칫솔로 깨끗이 씻어 손질한다.
2. 생강 껍질을 벗기고 얇게 편으로 썬다.
3. 냄비 2개에 각각 물을 2리터씩 붓고, 계피와 생강을 따로 강불에서 10분 정도 팔팔 끓인다.
© 유부양 블로그
4. 불을 중불로 줄이고 30분 정도 더 끓인다.
5. 끓인 생강물과 계피물을 체에 걸러 하나로 섞는다.
6. 흑설탕을 넣고 녹인다.
7. 수정과가 식으면 병에 넣어 냉장 보관하며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