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선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 새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생활한지도 벌써 3개월이 되어갑니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러워 눈앞에 있는 것만 보기에도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환경에 놓여진 이방인으로서 눈앞에 보이는 일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손 들고 발표하는 학생들
저는 정식 대학생은 아니지만 대학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미국 대학생들과 함께 전공 관련된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학기 중반에 접어드니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주변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미국 대학의 수업 방식, 교수의 강의 방식, 그리고 수업 중 교수와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 등에서 한국과는 다른 점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수업 중에 학생들이 서슴없이 손을 들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발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한국의 초등학교 교실처럼, 교수가 질문을 하면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고 질문에 답하는 모습이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학생들이 때로는 좀 유치해 보이는 답을 하기도 하고,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발표하는 모습에서 커다란 문화충격을 느꼈습니다.
교수 역시 학생들의 답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틀린 부분을 고쳐주려고 하기보다는, “정확하다”, “그럴 수 있다” 또는 “가능하다” 등의 긍정적이고 객관적인 반응을 보인 후 학생들의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추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좀 생소하고 낯선 광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수업시간에 교수와 학생들이 이렇게 자신감 있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의사소통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토론하는 학생들
대학 수업을 들으며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점은 수업 중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수업 중 5분 정도의 짧은 토론 시간이 주어지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4~5명의 토론 그룹을 만들고 차례로 의견을 말하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룹 내의 모든 학생들이 골고루 발언 기회를 갖도록 스스로 시간을 조절하였고, 기록자를 특별히 지정하지 않아도 누군가 자발적으로 토론 내용을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미국 학생들에게는 토론이 매우 익숙하고도 자연스러운 수업의 일부로 여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수업에서 처음 토론 상황을 접하게 되었을 때는 아직 부족한 영어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사실은 토론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토론은 다소 무겁고 부담스러워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토론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대화’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소통하는 학생들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 것이 의사소통의 기본이라는 사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얼마나 잘 경청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우선은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그 다음엔 다른 이의 의견을 귀기울여 잘 듣고, 마지막으로 이런 대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원활한 소통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미국 학생들을 보며 온몸과 마음으로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위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내 생각과 느낌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 그리고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는 망설임 없이 다시 질문하여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 이것이 영어 의사소통의 시작점일 것입니다. 오늘도 이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