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
코로나 시대가 길어지다보니 마음이 점점 안일해지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누군가에게는 위험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독감처럼 지나가다보니, 안 걸리면 제일 좋겠지만, 혹시 걸리더라도 감기처럼 며칠 앓고 지나가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사실 저희 시댁쪽 식구들은 코로나가 한 번 휩쓸고 지나갔답니다. 남편 사촌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그 덕에 조용하던 시골 마을은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검사 결과 사촌은 물론이고, 함께 사는 이모와 시외할아버지 등 그 가족 전체가 다 양성이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코로나로 시부모님도 영향을 받으셨고, 한 2주간 독감처럼 고열과 몸살을 앓으셨지만 잘 이겨 내셨어요.
그런데 시댁 식구들이 코로나에 걸렸다가 무사히 회복되는 걸 보고 긴장이 좀 풀어진 감도 있었어요. 물론, 그렇다고 조심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또 너무 조심하는 것도 아닌… 그냥 적.당.히. 조심하면서 지냈던 거죠. 마트에 가거나 외출할 때 마스크 쓰고, 손 소독 열심히 하고,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하는 정도로요.
말 안 듣는 인간들
그런데, 언젠가 한번은 걸려도 걸리고 말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던 곳이… 바로 남편의 직장이었어요. 그 회사에서는 아무도 마스크를 안 쓴다고 하더라고요. 마스크를 쓰라고, 쓰라고 아무리 해도 안 쓰는, 말 안 듣는 미국인들이 거기 다 모여 있나봐요.
남편도 외출할 때는 꼬박꼬박 마스크를 쓰지만, 회사에서는 마스크를 안 쓴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도 안 쓰는데 자기만 쓰는 것도 눈치 보이고 (특히나 지금 남편은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은 굴러온 돌이라, 박힌 돌 사이에서 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요), 어차피 자기는 방이 따로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일도 없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니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코로나 안 걸리려고 외출도 자제하고, 어디를 가든 꼬박꼬박 마스크 쓰고 다니는 아이들과 저의 노력은 뭐가 되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러다가 남편의 직장에서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이 나오게 되었고, 코로나 검사를 받았어요.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지만, 양성 확진자와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으니 일단 2주간 격리하라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고, 회사에서도 휴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회사 사람들의 분위기가, “코로나 걸리면 2주 유급휴가??? YAY~~~!!!!” 이런 느낌으로 흘러가게 되었답니다. 하아~ 정말 이런 똥멍청이들!!! 그래서 회사 안에서 마스크를 쓸 이유가 더 없어졌고, “코로나에 안 걸리면 좋겠지만, 걸려도 좋아~” 이런 분위기가 생겨나게 되었답니다.
왔네, 왔어!!!
그러던 어느 날, 출근했던 남편이 오전 근무만 하고 집으로 돌아온 거예요.
“누…구… 세요? 우리 남편은 회사에 있는데…”
“코로나 검사 받고 왔어.”
“뭐???”
바로 사회적 거리 6피트를 유지하며 물었습니다.
“왜? 왜? 왜? 설마 확진자야? 내 그럴 줄 알았어. 회사에서 마스크 안 쓰더니!!! 나랑 애들은 어쩌라고!!!”
“확진은 아니고, 일단 검사만 받았어. 어제 본사에서 보스가 와서 같이 미팅을 했는데, 보스가 확진 판정을 받았대. 그래서 결과 나올 때까지 회사 출근 못하고 재택근무해야 해.”
아휴~ 이런 젠장~!!! 남편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고 하니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코로나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우리는 감기처럼 앓고 지나갈 거야~’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막상 남편이 코로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치명적일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만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일단 남편은 오피스룸에 감금시키고 레몬생강차를 끓여서 수시로 마시게 하고, 비타민제도 챙겨줬어요. 솔직히 남편이 양성이면 저도 빼박 양성일 거라는 두려움에, 저도 주방에서 레몬생강차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온몸의 떨끝만한 반응도 놓칠세라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이 목욕가운으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기침을 콜록콜록 하는 겁니다. 아… 왔네! 왔어!!!
애들도 아빠와 접촉 금지!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서워하는 와플이는 아빠가 코로나에 걸린 거냐며, 그럼 이제 죽는 거냐며, 눈물을 줄줄~~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저도 그날부터 머리가 띵~ 한 것이 몸이 무겁고, 가끔 기침도 나더라고요. 미열이 약간 있긴 했지만 심하진 않았고요. 이거 기분 탓인가? 아니면 진짜 증상이 오는 건가? 아, 빨리 검사 결과가 나와야 나도 검사를 하러 가고, 이 불안함에서 벗어날 텐데, 뭔놈의 결과는 이틀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겨~
마스크를 써야죠!
코로나가 남 이야기일 때는 공포감이 막연했는데, 내 얘기가 되고 보니 정말 너무 걱정되고 무섭더라고요.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안심할 수가 없고… 그래서 급하게 산소 포화도 측정기를 주문해서 수시로 산소 포화도 확인하고, 따뜻한 레몬생강차 마시고, 비타민 챙겨 먹고, 그 외에 딱히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인터넷으로 코로나 투병기 검색해서 찾아 읽었어요.
그리고 생각할수록 남편 보스가 너무 원망스럽더라고요. 텍사스에서 비행기 타고 씨애틀로 왔는데, 그 다음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면 그 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는 건데, 그럼 출장을 오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마스크도 썼어야죠. 똥멍청이 같으니라고!!!
그렇게 불안하게 이틀을 보내고 3일째 되는 날 아침, 두통이 사라지고, 기침은 아주 가끔씩 나오기는 했지만 전날보다는 몸이 좀 가벼워진 느낌이었어요. 남편은 콧물이 좀 난다고 했지만 역시나 두통은 가시고, 기침만 약간 나올 뿐이라고 하더라고요.
코로나 확진자들의 공통적인 증상이 미각과 후각을 잃는다는데, 꾸리꾸리한 방귀냄새가 잘 맡아지는 걸로 봐선 후각은 이상 없고, 배달시킨 피자도 잘 먹었으니 미각도 이상 무!
이쯤 되니… ‘우린 아닌 것 같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던 남편이 폰을 냅다 팽개치며 마스크를 벗어 젖히더니,
“휴~ 음성이래!!! 자, 이제 됐지?”
그 말과 동시에 저도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씌원하고 상쾌한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내쉬며 그간의 걱정도 함께 내려 놓았습니다.
코로나의 문턱까지 다녀온 느낌인데, 그게 막상 내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 공포감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왜 미국의 코로나 환자 수가 줄지 않는지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테스트를 하고도 비행기 타고 다른 주를 넘나들고, 코로나 걸리면 2주 유급휴가라며 오히려 걸리면 땡잡은 것 같은 분위기, 심지어 코로나 걸린 사람을 부러워하는 분위기까지 있으니 말해 뭐하겠어요.ㅜ.ㅜ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