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람이 부자
미국 생활 4년차. 미국에서 부자는 돈 많이 가진 사람보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이 부자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요?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걸요. 게다가 미국에서는 건강을 잃으면 재산 탕진하는 것도 순식간이겠더라고요.
실은 제가 혈변 때문에 한동안 말 못할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지난 번에 한국에 갔을 때부터 이상을 느끼다가 미국으로 오기 일주일 전에 심각성을 깨닫고 한국에서 병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심각한 병이면 곧 미국에 돌아가야 하니 한국에서 치료할 시간도 없고, 보험도 없으니 미국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겠다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의사 보려면 3개월 대기
그런데 증상이 갈수록 나빠져서 병원 예약을 하려니 뭔 전문의들이 다들 예약이 꽉 차서 한 3개월은 기다려야 의사를 볼 수가 있다지 뭡니까? 그 중 한 병원에 제 증상을 얘기하니 3개월 뒤에나 예약이 가능하다던 걸 한 달 뒤로 잡아주더라고요. 진짜 심각한 병이면 의사 보기도 전에 기다리다 죽을 판. (물론 그럴 경우에는 바로 응급실로 달려가면 되긴 합니다만, 진료 결과 응급 상황이 아니면 병원비가 후덜덜하니 판단을 잘하셔야 합니다.ㅠ.ㅠ)
아무튼 의사를 만나기까지 기다리는 한 달 동안 애들 볼 때마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 질질 짜며 ‘이것들이 엄마가 없으면 잘 클 수 있을까? 이 이쁜 것들 고등학교 가는 것까지는 보고 싶은데…….’ 하며 시한부 드라마를 매일 찍었어요. 지금은 웃으며 농담하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나름 심각했고, 증상들도 꽤 심각했더랍니다.
내시경 예약도 빨라야 3주
드디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본 날. 간단한 검사를 한 뒤,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해야 한다며 예약을 잡아주더군요. 한국이었으면 병원 예약부터 내시경까지 일주일 안에 다 해결되었겠죠? 하지만 여기는 미국. 내시경 예약도 병원 예약할 때는 3개월 뒤에나 가능하다고 그랬는데 진료 보고나니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날짜가 3주 뒤라고 해서 그렇게 예약을 하고 다시 3주를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내시경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내시경은 환자가 공복인 상태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전날 오후 2시부터 금식을 한 환자를 고려해 무조건 아침 일찍 진행하느라 환자를 하루에 2명밖에 안 받는대요. (제가 진료받은 의사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다른 의사들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시경 예약 대기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아침 7시에 병원 도착해서 내시경 비용으로 250불을 지불하고 각종 서류에 싸인하고 수술하는 것처럼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있으니 담당 간호사 2명 등장.
자기소개를 하고, 오늘 어떤 진료를 받게 될 것인지 설명하고, 자신들이 도와줄 것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말하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담당의사가 와서 자기소개와 함께 내시경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설명하고 오늘 하루는 일도, 운전도 금지이고, 시술 후의 부작용이 있을 경우의 증상에 대해서 설명한 후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번엔 마취과 의사가 나타나서 또 자기소개와 함께 마취약은 프로포폴을 사용할 것이고 (나 지금 그 우유주사 맞아보는 거임???) 금방 잠들었다가 시술이 끝나면 금방 깨어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주고 사라집니다. 미국에 온 이래로 “I’m Ellie, nice to meet you, too.” 이 말을 제일 많이 한 날이었어요.
프로포폴 마취
잠시 후,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 어두운 수술실에 조명만 켜져 있는 곳으로 간호사들에 의해 옮겨졌습니다. 아까 전에 자기소개 해주신 분들이 다시 한번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마취의가 “지금 프로포폴 주입하니 곧 잠들 거다. 잠시 후에 보자~” 했는데……. “미스 엘리? 미스 엘리?” 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마치 순간이동한 것처럼 다른 장소로 옮겨져서 남편이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남편이 저의 손을 꼭 잡아주며 “드디어 깨어났구나~!!!” 하며 눈물 찔끔… 했다면 그건 드라마지. 현실은 보호자 의자에 앉아서 카메라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찰칵 찰칵!!! 프로포폴에서 깨어나며 비몽사몽하는 모습이 잠에서 깬 모습하고 너무 달라서 사진으로 남겨 놓고 싶었다나 어쨌다나. 그런데 정말 프로포폴 마취는 잠시 잠든 것이었는데도 그 사이에 꿈도 꾸고 너무 푹~ 잔 느낌이었어요. 대신에 깨어날 때 잠에서 깬 것처럼 바로 정신이 차려지지 않고 한 5분 정도 잠에 취한 듯 멍~ 한 상태.
암은 아니래!
내시경 결과를 가지고 나타난 의사 선생님은 “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대장 내시경을 통해 용종 2개를 제거했는데 모양이나 상태를 봤을 때 암은 아니지만 일단 검사를 보냈다. 그리고 궤양성 대장염으로 대장 내에 출혈이 계속되고 있어서 혈변과 복통이 있었던 것이고, 그에 대한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완치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계속 지켜보며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어쨌든 암은 아니었다니!!! 정말 다행이었고, 지난 두 달간 애들 잠든 거 보면서 거의 매일 눈물 흘렸는데, 진짜 새 삶을 얻은 것처럼 기쁜 날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제2의 삶과 함께 얻어온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의료비 청구서!!!
악몽의 시작
사실 내시경 예약하면서도 미국 내시경은 또 얼마나 비쌀까 걱정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내시경하러 간 날, 병원에서 지불한 비용은 250불(한화로 약 28만원) 정도라 ‘의료비 비싼 미국에서 내시경 비용 250불이면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미국은 진료 다 마치고 집에 가야 의료비 청구서가 날아온다는 것을 애 낳은지 2년만에 다 까먹은 거죠. 둘째를 출산하고 몇 달에 걸쳐서 청구서가 날아들었었는데,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693불이 청구된 청구서가 한 장 날아왔습니다.
내가 병원에서 이미 250불을 냈는데, 거기다 693불을 더 내라고??? 내역서를 자세히 살펴보니 청구한 금액은 1,430불이고, 제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737불을 지불하고 제가 693불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일에 지불했던 250을 더하면 무려 1,680불! 미국에서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하려면 180만원이 든다는 얘기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국에서 내시경 하고 올 걸~! 무보험으로 했어도 제가 미국에서 부담해야 하는 100만원보다는 훨씬 더 저렴했을 텐데…… ㅠ.ㅠ
내시경 비용이 2천만원?
새 삶을 얻은 기쁨은 이미 잊었고, 돈 아까운 생각에 다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그 눈물이 마를 때쯤, 또 하나의 우편물이 도착했고, 그것을 본 순간 제 심장은 쿵! 수직강하를 했습니다. 이 우편물은 제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날아온 것이었는데, 병원에서 15,429불(한화로 1,748만원)을 청구했고, 보험사에서 14,123불(한화로 1,600만원)을 지불했으니 나머지 1,306불(한화로 148만원)은 제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라는 안내문이었습니다. 뭐시라??? 위 내시경, 대장 내시경 비용으로 내가 이미 1,000불에 가까운 돈을 지불했거늘!!! 여기에 다시 1,300불을 더 내라고??? 내역서를 보니 이 병원은 제가 프로포폴에 취해 자고 있는 동안 금으로 만든 호스로 장을 검사하고 다이아몬드를 갈아 만든 매스로 용종 두 개를 떼어낸 것도 아닐 텐데, 무슨 내시경 비용이 15,429불(한화로 1,748만원)이나 된다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사에서 14,123불을 지불했으니 저는 1,306불만 내면 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일까요? 병원 가기 전에는 피똥을 쌌는데, 병원에 다녀오니 피눈물이 나네 그려~!!! 미국에서 보험 없이 내시경 받으려면 16,859불(한화로 1,910만원)이나 내야 한다니!!! 그나마 보험에서 커버하고 제가 지불할 위 내시경 + 대장 내시경 비용은 총 2,250불(한화로 255만원)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미국 사는 한국분들이 비행기 타고 한국 가서 보험 없이 진료 받아도 미국에서 진료받는 것보다 싸다고들 하시나 봅니다.
자기부담금도 부담돼
한 달에 보험료로 남편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어가는 돈도 700불(한화로 약 80만원)이 넘는데, 보험이 있어도 자기부담금(Deductable)이 이렇게 높으니 정말 미국 의료비는 적응을 할래야 할 수가 없네요. 그나마 위로를 한다면 자기부담금 일정 한도금액이 넘으면 그 후로는 보험사에서 모든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라 차라리 큰 병에 걸렸을 경우에는 자기부담금만 내고 나머지 비용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그게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네요. 그래서 살펴보니 저의 자기부담금이 2,000불인데, 이번 내시경 진료로 인해서 2,000불을 넘겼으니 이제부터는 제가 병원비를 전혀 내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에헤라디야~~~
그런데 풍악을 울리기도 전에 다시 발견한 사실은 미국 보험은 1년마다 갱신되는데, 저희 보험 갱신 날짜가 10월 1일. (저희 남편의 보험 갱신 날짜는 가입일을 기준으로 해요.) 그래서 10월 1일부로 다시 자기부담금 2,000불이 생성되기 때문에 그 후로 병원에 가면 다시 2,000불을 부담해야 된다는 사실!
그런데 불행은 병원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절초풍할 병원비에 이어 약값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서 미국의 상상초월 의료비에 이은 후덜덜한 약값의 실태, 그리고 비싼 약값의 절약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