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호에 이어 동양 여자 만만하게 본 미국 펜스 업자 참교육 이야기 후편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같은 사진, 다른 문자
연락이 잘 안 되는 펜스 업자에게 화가 난 이웃들이 다른 업자와 펜스 공사를 하게 되자 그 책임을 저에게 묻는 펜스 업체 사장 에디 씨!
그래서 저는 일단 오른쪽 이웃인 존 아저씨네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문자 메세지를 보여주니 존 아저씨가 깜짝 놀라며 자신은 방금 전혀 다른 메세지를 받았다는 겁니다.
“자재가 다 도착했어요. 내일 아침 8시에 인부들과 함께 가서 공사 시작할게요. 내일 봐요~”
그리고 저에게 보냈던 그 자재 사진 두 장을 그대로 첨부해서 보냈더군요. 하, 이건 뭐죠??? 다른 업자를 찾은 건 제가 아니라 존 아저씨인데, 협박 문자를 보내려면 존 아저씨에게 보내거나, 아니면 저와 존 아저씨 둘 다에게 보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똑같은 자재 사진으로 저에게는 협박 문자를, 존 아저씨에게는 내일 공사 시작 안내 문자를 보냈다? 이걸 보니 100% 확신이 들더라고요.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우습게 본 거구나…….
에디 씨의 오해?
그런데 에디 씨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마치 제가 이웃들을 꼬셔서 다른 펜스 업자와 공사를 하려고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왜냐하면 에디 씨의 공사 안내 문자를 받고 존 아저씨가 다른 업자와 계약할 예정이라고 사실대로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펜스 공사를 빨리 시작하고픈 마음에 그냥 “Thank you.”라고만 답을 하셨던 거예요. 그러니 에디 씨 입장에서는 ‘존은 나와 공사를 할 예정이구나. 그런데 엘리 이 여자가 내 고객을 가로채서 다른 업자와 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한 듯 싶었어요.
존 아저씨는 자기가 그냥 “Thank you.”라고만 답을 해서 에디 씨가 저에 대해 오해를 한 것 같다며 내일 아침에 다 같이 얘기를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리고 에디 씨가 저에게 이런 식의 문자를 보낸 것은 옳지 않다고 하셨고요.
어디서 양아치 짓을!
이어서 저는 뒷집 폴 아저씨네 집으로 갔습니다. 소송으로 갈 경우 폴 아저씨가 다른 업자와 계약하게 된 이유와 에디 씨로부터의 공사 컨펌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제가 받은 메세지를 보여줬더니 완전 극대노하심요. 한국식 욕으로 치자면, “썅노무 시키(mother f**ker), 어디서 양아치 짓이야!! 내가 알아봤어, 그 새끼 이렇게 양아치 같은 놈일 줄. 엘리, 걱정하지 말아요. 이 시키는 그럴 권한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어요. 혹시 내일 와서 이 소리 한 번 더 하면 나 불러요. 내가 가서 얘기할 테니. 이건 엘리 씨를 얕잡아보고 수작 부리는 거니까 내가 필요하면 바로 우리집으로 와요.”
참고로 뒷집 폴 아저씨는 경찰관으로 20년간 근무하고 은퇴하신 분이라 일단 우락부락한 체격으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이렇게 제 편이 되어주신다니 겁~나 든든해짐요. 아, 그리고 이때 왼쪽 이웃인 알프레도 씨와 펜스 업자 에디 씨가 서로 친구라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어요. 어쩐지…… 연락도 안 되는 에디 씨와 끝까지 공사를 하겠다고 했던 이유가 다 있었더라고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존 아저씨가 에디에게 내일 저와 함께 얘기를 좀 하자고 메세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며 보내주셨어요. 저에게는 협박 메세지를 보내 놓고, 너무도 태연하게 “그러죠, 문제 없어요.”라며 답을 했더라고요.
아, 그리고 에디 씨가 하도 연락이 없어서 알프레도 씨에게 펜스 공사가 언제 시작되는지 얘기 들은 거 있냐고 지난 2월 24일에 물어봤더니 다음날 이런 답을 보냈어요.
“에디 씨랑 얘기했는데 이웃들한테 펜스 공사 여부 컨펌을 받은 후에 자재를 주문할 거래요.”
아니, 그런데 컨펌은 개뿔, 아무 연락도 없었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컨펌을 받고 자재를 주문한 걸까요? 어쨌든 다음날 아침에 얘기를 하기로 되어 있으니 저는 그날 밤 증거를 모두 모아야 했습니다.
펜스 업자 참교육
그동안 제가 에디 씨와 알프레도 씨와 주고받은 메세지를 출력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에디 씨가 비즈니스 오너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고 그 책임을 고객인 저에게 덮어씌우려고 협박한 사실까지 이 사건의 쟁점을 조목조목 짚어서 내용증명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5부를 출력해 이것을 근거로 에디 씨와 얘기를 한 후,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정말 법정 싸움까지 갈 기세였죠. 이미 변호사도 검색해두었고요. 저는 새벽 3시 반까지 이 작업을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날 아침 8시! 마침내 에디 씨가 나타나고, 존 아저씨와 저, 이렇게 삼자대면을 하게 됐습니다. 일단 굿모닝~ 인사하고 내용증명을 돌렸죠. “이걸 잘 읽어보시고, 잘못된 내용이나 틀린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한 장씩 넘겨보던 에디 씨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내가 새 견적서를 안 보냈던가요? 미안해요, 바빠서 깜빡했나봐요. 지금 당장 견적서 보낼게요.”
“고맙지만 됐어요. 공사 안 할 거예요.”
그러자 존 아저씨의 한 마디.
“이봐요, 잘 알겠지만 이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엘리 씨가 정말 열심히 일해 주었어요.”
“알아요. 잘 알죠.” 하며 에디 씨는 고개도 못 들고 어쩔줄 몰라 하더군요. 이쯤하면 내가 만만히 볼 동양 여자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겠지 싶었죠. 펜스 전투에서 승리했으니 이제 돈을 아껴야지! 하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그래서 못 이기는 척,
“제가 빠지면 이웃들 부담이 커지니 같이 하죠. 하지만 뒷집 폴 아저씨는 에디 씨가 직접 설득하세요.”
그렇게 공사가 시작되었고, 3월 칼바람 부는 날씨에 멕시칸 아저씨 4분과 10살쯤 된 아이가 와서 일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틀 동안 사람 수대로 샌드위치와 음료를 사다 드렸어요. 공사가 끝난 후 에디 씨가 정말 미안하고 인부들 챙겨줘서 너무 고맙다며 진심어린 사과 문자를 보내왔어요. 그래서 저도 기분이 좋아졌지요. 하지만 제가 이 동네 떠나는 날 인터넷에 아주 솔직한 후기를 남겨볼 생각입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