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 아가서 2:15
구약의 <아가서>는 표면적으로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연애시입니다. 그런데 그 연인들간의 사랑 노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삶의 중요한 지혜를 내포하고 있다는 면에서 아가서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지혜’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작은 여우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꽃이 핀 아름다운 포도원에 작은 여우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그 여우가 그동안 연인들이 정성들여 가꿔 놓은 포도원을 망쳐 놓을 수 있으니 그 작은 여우를 잡아서 아름다운 포도원을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같습니다.
우리의 포도원
이 이야기에 담긴 지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단어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포도원입니다. 문자적 의미는 ‘포도 농장’을 뜻하지만, 이것의 영적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공간’을 말합니다. 본문에 보시면, ‘우리의 포도원’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표현은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친밀한 공간, 즉 사랑이 시작되고 완성되고 보호되는 둘만의 공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꽃이 핀 포도원은 사랑의 결실이 풍성하게 맺힌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마치 꽃이 만발한 포도원을 가꾸듯 그렇게 사랑하고 보호하신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작은’ 여우
두 번째 단어는 작은 여우입니다. 성경에서 여우는 그다지 좋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구약의 <사사기>에 보면, 삼손이 블레셋과 싸울 때 여우 300마리를 잡아 꼬리에 불을 붙이고는 그 여우들을 풀어 놓습니다. 그러자 불붙은 꼬리에 여우들이 놀라서 곡식이 있는 밭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밭을 모조리 불태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삼손이 블레셋에 복수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여우를 사용한 것입니다. 또한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도 간교한 헤롯을 ‘여우’라고 표현하셨습니다.(눅 13:31-32)
오늘 <아가서>에 나오는 여우도 포도원을 허무는 부정적인 존재로 등장합니다. 포도원이 사랑하는 연인과의 친밀한 공간이라면, 여우는 그 사랑의 공간을 허무는 ‘적’으로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균열을 내는 ‘어떤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여우가 덩치가 큰 놈이 아니라 ‘작은 여우’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은 여우 한 마리는 사실 별로 보잘것 없는 존재입니다. 큰 포도원에 들어온 작은 여우는 눈에 잘 띄지도 않아 포도원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방심하는 사이, 그 작은 여우가 포도원 담장을 여기저기 허물고 결국 포도원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내 안의 작은 여우
이 이야기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허무는 것은 큰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큰 죄를 지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남의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거나, 묻지마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렇게 극단적인 사회 범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정작 그리스도인들이 무너지는 것은 작고 사소한 것들 때문입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들 때문에 신앙의 삶이 무너지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허물어집니다. 작은 욕심, 사소한 영적 게으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분노나 혈기, 부정적인 말과 행동 등 이런 것들이 바로 나의 작은 여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당장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당장 영향을 주지 않지만, 조금만 못이 타이어의 바람을 서서히 빠지게 하듯이, ‘작은 여우’ 때문에 하나님과 내가 가꾸어온 아름답고 풍성한 포도원의 담장에 균열이 생기고 결국 망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포도원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우리 안의 작은 여우를 잡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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