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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고난이 내게 유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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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고난이 내게 유익이었다
인생에는 늘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신다. ©남미문화선교원
이지용 목사
뉴욕겟세마네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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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요?

2019년 새해가 밝은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새해를 맞으며 우리가 서로에게 주고받은 덕담처럼, 올 한 해 동안 기쁜 일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새해 첫 달이 지나가기도 전에 우리는 각자의 앞에 놓인 고난과 마주하게 된다.

며칠 전 어느 성도의 가게에 심방을 갔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요?” 하시며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셨다.

그 성도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왜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제 너희의 앞길에 탄탄대로가 열리게 될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절).”라고 말씀하셨을까 생각하며 우리 앞에 놓인 고난에 대해 묵상해보게 되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인생을 살다보면 생각지 못한 어려움과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난의 경중은 다르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는 없다.

고난은 때로 회오리 바람처럼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지나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열심히 살았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고난 그 자체보다,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피할 수 없는 고난을 피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큰 고난을 겪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난을 지나가는 4단계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고난을 만났을 때 우리는 보통 ‘부정 ⇒ 분노 ⇒ 도피 ⇒ 수용’의 4단계를 거치게 된다. 과거에 또는 현재 내가 겪은 고난을 생각하며 내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고난에 대한 일반적인 첫 반응은 ‘부정’ 혹은 ‘부인’이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대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거야.”

그러나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되면 분노하고 절규하게 된다. “하나님,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길래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겁니까? 제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느냐고요?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분노와 절망 속에 소리를 지르거나, 몸과 마음에 병이 나기도 한다. 이때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심리학자들은 조언한다. 마음의 고통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으면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마음을 추스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 중에 울고 있는 사람을 위로할 때, 무작정 울지 말라고 하거나 혹은 고난을 미화하고 왜곡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결국 고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고난을 나의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건강한 자아가 필요하고, 더불어 가까운 사람들의 균형잡힌 지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고난을 극복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내게 닥친 고난을 부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고 절규하다가 도피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결국 이 고난을 수용하기까지 각자의 속도로 4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렇게 일정한 과정을 거치며 현실을 받아들이고나면 감정이 정리되면서 고난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 질병, 죽음, 배신 등 고난의 종류는 다르지만 대개는 준비 없이 갑자기 닥치기 때문에 충격이 크고 두려움도 크다.

그러나 고난이라는 외롭고 슬픈 강을 잘 건너고 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완숙미가 흐르는 더 의연해진 자신과 만나게 된다.

알 수 없는 고난, 알 수 없는 은총

우리 삶에 고난이 없기를 바라거나, 고난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더 큰 역풍과 마주하게 된다. 고난을 거부하는 태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고난의 풍랑도 거세진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배가 만들어진 목적은 안전한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이미 항구를 떠난 배와 같다. 항해가 시작된 이상 바다에 풍랑이 없기를 바라기보다는, 날씨를 살피며 풍랑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노련한 뱃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난 속에는 늘 또 다른 선물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고난을 잘 겪으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반면, 잘못 겪으면 삶이 파괴되기도 한다. 신앙인들에게 고난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가 되고,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내가 받은 은혜를 묵상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편 119:67)”,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우리의 신앙과 인격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 성숙해진다. 고난의 무게를 견디며 우리의 영적인 힘이 길러진다. 고난이 삶을 짓누를 때 우리의 영혼이 휘어지지 않도록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신다.

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듯이, 고난과 슬픔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고난은 반드시 지나가고 우리는 온전하게 구비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된다.

알 수 없는 고난 속에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