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인간이란…
얼마 전 남편의 말 한마디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남편이 평소에 나를 아끼는 말과 행동을 해왔지만, 근본적으로 나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나는 안중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굉장히 큰 배신으로 다가왔고, ‘결국 인간에게 내가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하는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졌다. 남편과 말하기도 싫고, 이 결혼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심각한 회의와 우울감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할 마음이 나지 않아 며칠을 무기력하게 보냈지만, 슬픔과 절망이 원망과 분노로 바뀌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친한 친구의 배신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내다 뭐라도 볼까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집어들었는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영상을 틀어 놓고 가만히 누워서 듣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의 어떤 여학생이 법륜 스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저는 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가 어느 날 제 물건을 훔쳐간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잃어버린 물건이 그 친구에게 있는 것을 보고, 내 친구라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을까 하는 배신감이 들어서 이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그리고 이 친구와 인연을 끊고 싶은데, 이 친구를 끊으면 저는 다른 친구가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이 친구와 인연을 끊는 게 좋을지,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하고 계속 친구로 지내는 게 좋을지 현명한 답을 얻고 싶습니다.”
장사를 했네!
그러자 법륜스님이 “그 친구 안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셨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씀. “학생은 그 친구를 친한 친구로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 친구를 위해서라도 안 만나는 게 좋겠다, 이 말이야.”
그 여학생은 물론, 청중과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학생은 그 친구를 친한 친구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친구를 놓고 장사를 하고 있어. 나에게 이익을 주면 친한 친구고, 나에게 손해를 주면 배신감을 느끼고 인연을 끊어야 할지 고민하잖아. 그리고 그 친구와 인연을 끊는 것과 안 끊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에게 이익이 되나, 이렇게 접근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학생은 그 친구와 ‘신뢰관계’가 아니라 ‘이해관계’로 접근하고 있다 이 말이야. 그게 무슨 친한 친구야, 장사꾼이지!
학생이 진짜 그 친구의 절친이라면 그 친구가 내 물건을 훔쳐갔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저게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몰래 훔쳐갔을까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 물건 다섯 개사서 선물해주고 싶지 않을까?
사람들이 우정이니 사랑이니 좋은 말로 포장한 관계들을 잘 보면 진짜 우정이나 사랑은 별로 없고 다 장사하고 있어. 그래서 사랑한다고 결혼하지만, 내가 조금만 손해보는 것 같으면 결혼을 쉽게 깨버리고 이혼하잖아. 이럴 거면 나 혼자 살지 뭐하러 결혼해서 사냐고. 왜 그러겠어? 내가 손해보는 장사 안 하겠다는 거 아니야? 진짜 사랑하면 내가 손해볼 때 어떻게 할까? …후략…”
아, 내가 장사하고 있었구나…
법륜스님 얘기를 듣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생활에서 손해보는 것 같은 생각이 자주 들었고, 이럴 거였으면 혼자 살지 뭐하러 결혼을 해서 이 고생을 하나 싶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남편이 내 기대를 채워주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비난하고 원망하다가 결국 말로 상처를 주었다.
내가 남편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결혼한 줄 알았는데, 늘 이해관계를 따지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가 남편에게 헌신했던 일도, ‘내가 당신한테 이만큼 해줬으니 당신도 나한테 이 정도는 해줘야 돼.’ 하며 무언의 보상을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남편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자기부터 챙겼지만, 나는 평소에 늘 나부터 챙겼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내가 남편을 진짜 사랑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장사해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