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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기] 미국에도 존재하는 고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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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기] 미국에도 존재하는 고부갈등

미국에도 있다
제가 친구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너는 시어머니가 미국 사람이라 고부갈등 같은 건 없어서 좋겠다”라는 말입니다.
물론 저는 감사하게도 고부갈등은 아직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결혼 생활이 아직 길지 않은 탓도 있고, 서로 떨어져 살다보니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절대로 시어머니가 ‘미국 사람’이라서 고부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랍니다. 미국사람과 결혼해 미국인 시어머니가 생겼지만, 고부갈등으로 힘겨워하는 제 친구 얘기 한번 들어보시죠.

시집살이
제 친구는 일본인으로 미국인과 결혼해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분간 집을 구할 때까지는 시어머님과 함께 살기로 하고 임신 7개월 때 시댁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페이스북은 온통 “환영한다” “사랑한다” 등등 시어머니의 메시지로 도배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친구가 남편의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신혼생활을 시작한 줄로 믿고 있었어요.
임신 7개월이었던 그녀. 식욕이 한참 땡기고, 미국 음식에 지쳐갈 때쯤 생선이 너무 먹고 싶어서 생선을 구웠다고 합니다. 물론 굽기 전에 시어머니에게 미리 허락을 받았지요. 그런데 냄새를 맡고 나타난 시어머니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내 부엌에서는 생선은 굽지 말았으면 한다. 냄새 때문에 역겨워서 토할 것 같구나!”
시어머니의 말투가 너무 차갑고, 표현도 직설적이었기 때문에 친구는 모욕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집에 돌아오자 아들 앞에서는, “오늘 먹은 생선 어땠니? 다음에도 니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요리해 먹으렴.”

내 허락도 없이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아기 정기검진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하는데, 남편은 일을 하러 가니 차가 없는 친구는 시어머님께 부탁을 드릴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시어머님은 제 친구가 이혼한 시아버지의 새 아내(새 시어머님)에게 자기 손녀를 안아보게 해줬다는 이유로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내 손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태워주겠지만, 내 전남편의 손녀를 태워줘야 한다면 자동차 가스비를 받아야겠구나.”
그리고 새 시어머니로부터 선물로 받은 포장도 뜯지 않은 아기옷들을 마음대로 버리셨다는군요. 친구가 시어머니에게 왜 자기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버렸냐고 하자, 시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그럼 넌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그 여자한테 받은 것들을 내 집에 가져온 거니?”

시댁에서 최대한 멀리
친구는 이미 시어머니와 갈등의 골이 깊어져서 하루라도 빨리 시댁을 벗어나고자 했지만, 남편이 있을 때는 태도가 180도 바뀌어서 인자하고 다정한 시어머니가 되는 바람에 친구의 남편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네요.
물론 저 역시 친구의 이런 속사정을 깨닫지 못했던 게, 그녀의 페이스북은 매일매일 시어머니의 애정이 듬뿍 담긴 메시지들로 넘쳐나고 있었거든요.
그 메시지에 아래로 “시어머니가 너무 자상하시다” “네가 행복한 것 같아서 기쁘다” 라는 덧글들이 달렸지만, 정작 제 친구는 시어머니의 메시지에 어떤 덧글로 남기지 않았더군요.
나중에 친구의 사정을 듣고 친구가 이사갈 아파트를 인터넷으로 검색해주었습니다. 친구가 제시한 첫번째 조건은 ‘시댁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이었어요. 친구가 남편과 아파트 계약을 마치고 시댁으로 돌아왔을 때, 시어머님이 자신도 아파트를 알아보았다며 시댁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답니다. 이미 계약을 했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 멀리 이사가면 손녀 병원 정기검진 때 태워줄 수도 없고 불편할 거라며 근처의 아파트로 재계약할 것을 종용했지만, 다행히 친구는 계획대로 계약한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언론 플레이
그런데 이사 후, 일가친척이 다 읽어보는 시어머님의 페이스북에 시어머니가 글을 하나 남깁니다.
“나는 내 손녀가 보고 싶어도 자식들이 집 주소도 안 알려주고 이사를 가버려서 보러 갈 수가 없네.”
졸지에 친구네 부부를 온 일가족들에게 불효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죠. 물론 시어머니께 새로 이사한 주소도 알려드렸고, 아파트 위치도 알고 계셨답니다.
사태가 이쯤되자 친구의 남편도 자기 어머니의 이중성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더 이상 어머니의 이간질에 놀아나지 않겠다며 어머니에게 선전포고를 했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친구의 페이스북에서 시어머님이 사라지셨다는군요. 지난 밤까지는 분명히 계셨는데 말이죠. 시어머니가 아들에게까지 외면당하자 페이스북에서 며느리를 차단시켜 버렸던 겁니다.
친구는 자신이 차단당한 줄도 모르고 시어머니가 화가 나셔서 페이스북을 탈퇴하신 건가해서 남편에게 물어봤더니 자신의 페이스북에는 친구로 남아 있으니 아마도 어머니가 너를 차단시킨 것 같다고 알려줘서 알게 됐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시어머니가 친구의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는 이렇게 얘기하셨답니다.
“세상에나! 니 와이프가 페이스북에서 나를 차단시킨 것 같구나!!!”
마침 그때 친구도 남편과 함께 있었는데 시어머니의 연기력은 아카데미 조연상급이었다네요.
자기 어머니지만 그 이중성에 진절머리가 난 남편은 급기야 화를 내며, 어머니가 차단하셔 놓고는 왜 거짓말을 하냐고 했더니 자신은 며느리를 차단시키지 않았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더랍니다.
친구는 오히려 차단당해서 잘 된 것 같다며, 어머니와 연락을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지요.

나도 차단!
그런데 웃긴 건, 시어머니에게 차단당한 이후로 시어머니가 남긴 글 목록이 한밤중이 되면 보이다가 다음날 아침에 보면 귀신같이 사라지고 없더랍니다. 너무 이상하게 여긴 친구가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엄마가 너 염탐하는 거야. 차단시켰는데 손녀 사진이 보고 싶으니까 너한테 안 들키게 한밤중에 차단해제시켜서 보고 다시 차단시켜 놓는 거지.”
친구는 이런 시어머니가 무섭기까지 해서 결국에는 친구가 시어머니를 차단시켜 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를 차단시킨 게 잘한 일인지, 다시 차단을 해제시켜야 할지 매일매일 갈등하며 편치 않은 마음으로 지낸다고 하네요.
미국 시어머니는 다 쿨하고, 자식들 사생활 존중하며,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죠?

안 보면 그만~!
구글에서 ‘시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요(mother in law stresses me out)’로 검색해 봤더니 꽤 많은 고민글들이 나옵니다.

시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미국 며느리들도 많다. ©스마일 엘리 블로그

그리고 미국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와의 고충을 털어놓고 상담도 받는 ‘시어머니 이야기(www.motherinlawstories.com)’라는 사이트 인기가 있다고 하고, 시어머니를 소재로 한 농담도 많이 있습니다.

시어머니 팝니다 ©leakysquid.com

결국 시어머니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는 것보다는, 시어머니 되시는 분의 성격과 인성에 따라 고부갈등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살아온 환경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있고요.
다만 고부갈등이 생겼을 때 미국인의 자식들과 한국인의 자식들의 대처가 조금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경우 일단 갈등이 생기면 그래도 자식들이 아랫사람으로서 어머니의 불편한 심기를 풀어드리려고 하고, 비록 마음이 상했더라도 할 도리는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미국인 친구들의 경우에는 갈등이 생겼을 때 “서로 싫으면 안 보면 그만~!” 더 이상 신경쓰지 않겠다는 걸로 결론이 나더군요.
제 일본인 친구의 경우도 친구 남편이 먼저 친구에게 더 이상 어머니 신경쓰지 말고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다는군요. 그리고 결국 그 친구는 3년 전 남편과 아이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 버렸어요. 아예 만날 수 없는 거리를 택해 버린 거죠.

또 다른 미국인 친구의 경우(부부가 다 미국인),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자신은 아예 연락 안 하고 산다고 합니다. 남편만 시부모님과 가끔 안부 전화하고, 시댁에 갈 때도 남편과 아이들만 보내고 그 친구는 안 가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이해가 좀 안 가서 그러면 남편이 섭섭해 하거나 같이 가자고 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서로 사이가 안 좋고, 보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강요한다고 해서 사이가 좋아질 수도 없고, 오히려 그런 문제로 부부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으니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서로 강요하지 않고 산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어떤 계기가 생겨서 다시 사이가 좋아져 보게 될 수도 있고요.
제 친구들의 사례만으로 미국의 고부갈등에 대해 ‘이렇다~’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미국인 시어머니라서 고부갈등은 없겠다는 건 아니라는 거 이제 아시겠죠?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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