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촬영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왼쪽)과 복원된 현재의 모습(오른쪽) ©해외문화홍보원

 

워싱턴 DC에 가면 꼭 들러 봐야 할 곳이 하나 더 생겼다. 지난 5월 22일에 개관한 옛 대한제국의 주미공사관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개관식에 참석한다고 하여 KOREAN LIFE 취재팀이 직접 워싱턴에 다녀왔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양 국가에 설치한 외교 공관이었다. 원래 이 건물은 미국 남북전쟁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세스 펠프스(Seth L. Phelps)의 저택으로 지어졌다. 1882년에 조선이 미국과 수교한 후 고종은 박정양을 최초의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해 워싱턴으로 보내 공사관을 매입하게 했다. 이는 조선 후기 당시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더 큰 외교적 지평을 열고자 했던 고종의 자주외교 정신을 담은 결정이었다.

이 건물은 백악관에서 1.5km 떨어진 로건 서클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고종은 당시 궁궐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금 2만 5천 달러를 주고 이 건물을 사들여 1889년 2월부터 공사관으로 사용하였다. 초대 주미 공사 박정양을 비롯해, 초대 서기관 월남 이상재 선생 등이 이곳을 거쳐가며 대미 외교활동의 중심지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공사관의 역할도 멈추게 되었고, 1910년 한일강제병합 직후 일제가 이 건물을 단돈 5달러에 강제매입해 10달러에 미국인에게 팔아 넘기고 말았다. 이후 공사관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아프리카계 군인들의 휴양시설과 화물운수노조 사무실, 개인주택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후반부터 교민사회와 역사학자, 언론인들의 노력으로 이 건물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고, 이민 100주년을 맞아 2003년에 재미동포사회에서 한 차례 공사관 매입 움직임이 있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이어서 문화재청에서 나서 정부차원에서 건물의 전(前) 소유주인 젠킨스 부부와의 협상을 통해 2012년 10월 350만 달러(39억 5000만원)에 매입하였다. 이로써 공사관을 빼앗긴 지 102년 만에 다시 소유권을 되찾아오게 된 것이다. 젠키스 부부는 본인들이 역사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으며, 이 건물의 전 소유주가 태극기가 걸린 내부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어 이 건물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매우 의미가 있는 건물이라는 점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국내외 각종 문헌과 사진자료 등을 바탕으로 복원 공사를 마치고 지난 3월 12일 최종 준공하였다.

공사관을 둘러보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왼쪽, ©연합뉴스)와 방명록(오른쪽)

 

공사관 개관식 날짜는 1882년 5월 22일에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 날짜에 맞춰졌다. 이날 공사관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우리나라가 자주적으로 체결한 첫 조약으로, 나라의 위세가 기울 때 외교를 통해 힘을 세우려고 없던 살림에 큰 일을 한 것이며, 이런 이야기들이 제대로 기록으로 남아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관식에서는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박탈당한 후 113년 만에 다시 태극기를 게양하는 행사가 특별히 마련되었다. 문 대통령 부부는 박정양 초대공사 등 공관원의 후손들과 함께 공사관 시설을 둘러보고 “자주외교와 한미우호의 상징,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라고 방명록을 남겼다.

이날 공사관 밖에서는 폭우 속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하는 교민들이 현수막을 들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경호 때문에 문 대통령과 직접 악수를 나눌 수는 없어 아쉬워했다.

폭우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하는 교민들(왼쪽, ©청와대)과 현수막(오른쪽)

 

113년만에 다시 개관한 공사관 건물은 현존하는 대한제국 외교 공관을 통틀어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단독건물이며, 또한 미국 워싱턴 D.C. 안에 있는 19세기 외교 공관 30여개 가운데 내외부의 원형이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로 확인되어 미국의 외교사적 측면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큰 문화재이다. 앞으로 공사관은 대한민국 역사와 한미관계사를 알리는 역사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건물의 주차장으로 쓰이던 공간에는 불로문(不老門)과 박석(薄石)을 갖춘 작은 한국 정원을 마련되었고, 1층에는 접견실인 객당(客堂)과 사교장 기능을 하는 식당(食堂), 중앙 홀이 시카고 만국박람회가 열린 1893년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업무공간인 2층에서는 공사 집무실, 서재, 침실, 욕실이 있고, 3층은 공사관 설치와 변천 과정, 주재원 일상생활 등을 보여주는 자료와 유물로 꾸며져 있다. 2층 화장실에 가면 그 당시 수세식 화장실을 직접 사용해 볼 수도 있다.

공사관 개관 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관람료는 없다. 한국어와 영어 해설사가 있으며, 예약은 공사관 누리집(www.oldkoreanlegation.org)에서 할 수 있다. 자녀들과 함께 관람을 가실 분들은 KBS 광복 70년 특집 ‘되살아난 역사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보고 가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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