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 갈등에 차분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며느리의 모습 ©MBC

혼자 잘 자란 아들
결혼 10년차 부부입니다. 먼저 저는 친정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부모님께서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고, 당시 유산으로 5억 정도를 받았습니다. 저는 원래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유산 때문에 친지들과 갈등을 겪으며 어른들과 분쟁을 하는 동안 조용한 싸움닭이 되었습니다. 마음고생 많이 하며 싸운 결과로 유산은 저와 형제들이 1/3씩 무사히 상속을 받았습니다.
저희 남편은 외동 아들인데 대학 때부터 장학금과 알바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들었고, 결혼할 때도 부모님께 1원도 안 받았습니다.
시부모님은 지방에 빌라 한 채를 소유하고 계시고 노후 계획은 없으셨습니다. 시아버지는 인성은 좋으시나 가부장적이고 경제적 능력이 없으셨고, 시어머니는 평생 일해본 적이 없는데 허세나 허영이 심하고, 남의 자식들은 뭘 해줬네를 입에 달고 사시는 분입니다.
남편과는 같은 회사에서 만났고, 남편이 결혼하자고 쫓아다녀서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전에 시부모님의 상태를 전혀 몰랐습니다. 남편이 평소에 부모님과 데면데면한 사이여서 서로 잘 몰랐던 거죠.
시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친정이 없어 본인 아들이 장인 장모의 사랑을 못 받으니 서운하지만, 동시에 처가가 없으니 명절이건 어버이날이건 아들을 독차지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른한테 물어봐야지!
결혼 후 남편과 상의한 후 부모님 생활비와 집안 대소사비는 꼬박꼬박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시부모님과의 첫 갈등은 휴가와 외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휴가 계획을 아시고는 엄청 화를 내시더라고요.
“결혼을 했으면 휴가 때 시부모에게 같이 갈 거냐고 먼저 물어봐야지, 아무 의논도 없이 너희 외국여행 다녀온다고 통보하는 거냐? 물론 너희가 같이 가자고 해도 너희 불편할까 싶어 안 갈 거지만, 그래도 순서가 틀렸다!”
그리고 평소에 저희끼리 외식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며, 외식을 할 때는 먼저 어른들께 물어보고 거절하면 둘이 외식하는 거라는 훈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외식이나 휴가는 저희가 쉬고 싶을 때 먹고 싶을 때 정하는 건데, 왜 어머님께 허락을 구해야 하나요? 정 그렇게 원하시면 앞으로 어머니는 아들이랑 오붓하게 휴가든 외식이든 다녀오세요. 저는 친구들과 따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본인 부모는 본인이 챙기라고 얘기했습니다. 남편은 자기가 쫓아다녀서 한 결혼이라 저에게 미안해 했고, 엄마가 저렇게 나올 줄 몰랐다며 사과하고는 어머님과 약간 다투는 듯했습니다.
그 후로도 어머니는 저희 집에 가전제품을 사는 것도 말 안 하고 샀다고 서운해 하셨고, 미역국도 홍합을 안 넣고 소고기를 넣었다며 남편 입맛도 모른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소고기파였고, 홍합이나 해산물은 질색인 사람이었습니다. 홍합이 싫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엄마가 계속 홍합 미역국만 끓여줬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네 며느리는~
또 하나 잦은 갈등의 원인은 남의 집 며느리 타령. 누구네 며느리는 서울대 박사 출신이라더라, 누구네 며느리는 영국에서 최고 대학을 나왔다더라, 누구네 며느리는 이번에 차를 바꿔줬다더라, 해외여행도 보내주고 명품백도 사줬다더라, 돈 뭉치를 줬다더라, 부엌을 통째로 갈아줬다더라 등등 결혼 직후부터 몇 년 동안 정말 열심히 시전하시더군요. 그러면 저는 또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 부러우세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제가 지금 서울대나 유학을 갈 수도 없고, 저희 집 대출금 때문에 제 코가 석 자라 다른 며느리들처럼 뭘 해드릴 수도 없네요. 그리고 저희 대출금 있는 거 뻔히 아시면서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으시면 그런 말씀 못하실 텐데요.”
그러자 시어머니는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극대노를 하셨습니다. 니가 시어머니를 우습게 여긴다며, 친정이 없어서 순종적일 줄 알았는데 따박따박 대드는 걸 보니 내가 사람을 잘못봤다고 하시더라고요.
명절과 어버이날에는 일부러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려 “우리 아들 명절 내내 있을 거야. 얼굴 보러 와. 며느리 친정이 없어서 내내 여기 있을 거야.” 하시며 친척들을 불러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여기 내내 있으면서 친지들도 만나. 나는 먼저 갈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 안 하면 그것도 불효지. 명절 당일 아침 먹고 나는 산소 갔다가 집에 갈테니 잘 지내다 와.” 하고, 시부모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집에 손님들이 올 텐데 너도 명절 때 봐야 친해지지” 하시기에, “직계도 아니고 사촌들인데요, 뭘. 그분들보다 제 부모님 산소가 저에게는 우선순위잖아요.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잘난 우리 아들
그리고 저희 집 이사 때마다 시어머니 친척들이 몰려와 집들이를 했습니다. 두 번째 집을 살 때는 부동산 시세가 심상치 않아 아파트 매매할 때 부모님 유산까지 보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사 후에 시어머니가 집에 오셔서는 “내 아들이 잘나서 서울 한복판에 집을 마련해서 기분 좋게 왔다.” 하시며 여기저기 전화해서 친척들을 저희 집으로 소환하셨습니다. 미리 상의도 안 하고 갑자기, “누구누구 온다고 하는데 오지 말라고 하면 실례다.” 하시며 저에게 음식을 준비하라고 시키셨습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용히 말씀드렸지요.
“어머님, 저는 연락받은 적이 없고, 선약이 있어서 음식 준비는 못하니 남편하고 상의하세요.” 하고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시며 어머니는, “아니, 집안에 손님이 오면 며느리가 맞이해야지 어딜 가냐? 며느리가 없으면 내 위신이 뭐가 되냐?” 하며 버럭 화를 내셨어요. 저는 또 조용히 말씀드렸죠.
“어머님, 어차피 다 어머님 손님이잖아요. 집도 안 내어 드리고 싶은데 어머님 위신 생각해서 집은 내어드리니 집들이 잘하세요.” 하고 그냥 나와 버렸습니다.
그날 반나절은 참 더디게 갔던 것 같아요. 한강을 계속 걸으며 이 결혼을 유지해야 하나 고민했고, 평소에 생각나지 않던 친정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한참 방황하다 집에 들어가니 시아버지께서 오늘은 한마디 해야겠다고 하시더군요.
“시어머니가 실수한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찌 됐든 웃어른이 마음 상해하니 니가 한 번만 숙여라.”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차분히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서운합니다. 그동안 한 번도 어머님을 말려주지 않으셨잖아요. 제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고개 숙이며 잘못했다고 하라는 부탁은 안 하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고개 숙일 만큼 잘못한 일이 없고, 언제나 선을 넘으신 건 어머님이시죠.”
그날 남편이 처음으로 저에게 질린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화가 나서, “중간에서 당신이 잘했으면 나도 이렇게 인정머리 없는 며느리는 아니었을 거야.” 하고 쏘아 붙였습니다.

고부간의 평행선
그후 2년 동안 남편만 시댁에 왕래했고, 이혼 직전까지 갔던 부부 사이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남편이 엄청 노력하고 사과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제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됐고, 아이 계획은 없었지만 이미 온 생명이니 하나 낳아서 잘 키워보자 하고 남편이 시댁에 알렸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께서 기쁘셨는지 카톡과 문자를 보내오셨어요. “손주 낳을 귀한 너인데 함부로 한 거 후회 중이다. 출산하면 병원에서 아기 얼굴만 보고 가겠다.”
그렇게 출산 후에 시어머니께서 오셨고, 백일, 돌 때도 서로 건드리지 않고 조심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아들이 7살인데, 그간 저에게 큰 말실수는 없으셨습니다. 지난 일을 서로 잊지는 않았지만, 아들 하나에 손자 하나뿐이니 그들을 위해 오늘도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출처 : 네이트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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