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트럼프 대통령을 ‘evil (악마)’ 또는 ‘idiot (멍청이)’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면 한미간의 외교와 무역 문제는 물론, 북한 핵문제와 남북평화, 중국과의 무역 문제 등에 있어 국익에 큰 해가 된다는 판단 아래,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에 쓴 『트럼프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전문을 연재한다.

트럼프의 트윗을 믿지 마라
트럼프가 30년 이상 언론 및 방송계에서 기량을 닦아온 언론 플레이의 달인이기 때문에 그의 트윗을 읽을 때는 특히 행간의 의미를 정확히 읽는 안목이 필요하다.

실제로 트럼프의 취임 직전 그를 인터뷰한 중립 성향의 언론인 마이클 굿윈(Michael Goodwin)은 “트럼프의 트윗을 믿지 마라. 그는 차분한 사람이다.(Don’t believe the tweets-Trump is one cool customer.)”라는 기사에서, 트럼프의 트윗을 보면 그가 늘 화난 사람 같지만, 실제로 그를 만나보면 트위터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와는 대조적으로 차분하고 평온하면서도 자신감 있고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첫 번째 작전
대선 후보로서 트럼프가 언론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계획한 첫번째 작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트럼프가 공화당의 전쟁 영웅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의원에게 돌을 던졌기 때문이다.

매케인은 베트남 전에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1967년 10월 폭격 활동 중 피격을 당해 중상을 입은 채 붙잡혀 1973년 미국에 송환될 때까지 무려 6년 동안 포로생활을 한 전쟁 영웅이었다. 또한 그는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서 오바마를 상대로 패배한 후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출사표를 던지고 딱 한 달 후인 2015년 7월 18일, 아이오와주립대 강당에서 기독교 단체가 개최한 가족 리더쉽 모임(Family Leadership Summit)에서 매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쟁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영웅이 된 것입니다. 저는 포로로 잡히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트럼프가 이 발언을 하자 언론들이 벌떼처럼 트럼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경선 주자들과 유권자들까지 들고 일어났다. 나중에는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가 진정한 보수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고, 진정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결집하여 반트럼프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트럼프의 첫번째 목표는 17명이나 되는 공화당 대선 후보들 중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방법은 노이즈 마케팅이 최고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공화당원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이슈를 떠트렸던 것이다. 바로 널리 존경받는 전쟁영웅 존 매케인을 걸고 넘어진 것이었다.

매케인 사건 하나로 트럼프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대선 후보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그날 이후 대선 기간 내내 주류 언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트럼프의 말을 빌자면, 언론이 그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의 이름이 매일 언론에 나오면 확실히 손해보다 이익이 많았던 것이다.

두 번째 작전
매케인 사건으로 공화당의 대선 후보 17명 중 확실한 차별화에 성공한 트럼프는 이제 두 번째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공화당 대선 후보들 중 가장 유력한 경쟁자인 젭 부시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젭 부시와 정면대결을 벌이기 전까지 미국 국민들 사이에 한 집안이 대를 이어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민주당 클린턴 가문의 힐러리 후보를 누를 사람은 부시 가문의 젭 부시밖에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젭 부시와 정면승부를 시작하면서 정치 명문가의 세습에 대해 다른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미국 역사 초기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유럽의 왕정 이나 유력한 한 가문의 정권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함께 가지고 왔다.

그러나 점차 세월이 흘러 미국에도 정치 명문가가 등장하면서 한 집안 사람들이 대를 이어 정치를 하는 경우가 생겼고 사람들은 그런 집안을 존경했다. 특히 2016년 대선에서 부시 집안과 클린턴 집안에서 후보가 나오자 이런 점이 더욱 부각되었다. 젭 부시의 경우, 할아버지가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이었고, 아버지와 형이 대통령을 역임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이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힐러리와 버니 샌더스의 대결에서 보듯이 정치 명문가들은 기득권들끼리 연결된 현대판 ‘왕족’같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특권층은 그들만의 ‘이너 써클(inner circle)’ 안에서 다음 대통령 후보를 정했다. 겉으로는 선거라는 민주주의의의 형식을 따르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악용한 특권층의 왕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에서 아버지, 형, 동생이 연달아 대통령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특히 젭 부시는 매우 무능한 인물이라며 노골적인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젭 부시의 지지기반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

 

이준길 법학박사(SJD, 금융법전공), 변호사(미국 North Carol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