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

편집자주 – 트럼프 대통령을 ‘evil (악마)’ 또는 ‘idiot (멍청이)’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면 한미간의 외교와 무역 문제는 물론, 북한 핵문제와 남북평화, 중국과의 무역 문제 등에 있어 국익에 큰 해가 된다는 판단 아래,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에 쓴 『트럼프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전문을 연재한다.

부패한 정치 기득권에 대한 불만
트럼프는 대선에 도전하기 전에 먼저 여론을 주도면밀하게 살폈다.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은 물론, 미국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트럼프의 출사표에서 보았듯이 트럼프는 지금의 기득권으로는 미국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미국의 국익에 직결되는 사안도 이익단체와 로비스트들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이른바 ‘나라도 팔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으며, 국민들이 이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트럼프는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트럼프의 대선 전략은 ‘워싱턴의 부패한 정치 기득권 세력’을 공공의 적으로 부각시키고 그들의 권력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런 전략 덕분에 트럼프가 2015년 6월 16일에 출사표를 던진 후, 언론들은 트럼프에 대해 하나둘씩 “반 기득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기득권 vs 반(反)기득권’이 미국 대선에서 키워드로 떠올랐다.

미국 국민들 사이에 워싱턴의 정치 기득권에 대한 불만은 매우 높았다. 그리고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은 오바마가 두 번에 걸쳐 공화당 후보인 존 매케인과 밋 람니를 연달아 패배시키자, 이번에는 반드시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매우 강하게 갖고 있었다.

반면, 여당인 민주당은 두 번에 걸쳐 오바마가 대통령을 했기 때문에 대선에 대한 열의가 공화당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했다. 그리고 대선 결과에서도 보듯이 이전 대선에서는 오바마에게 올인했던 흑인 유권자들이 백인 후보인 힐러리에 대해서는 그렇게 열광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최고의 지원군
트럼프의 반기득권 전략이 서서히 바람을 타기 시작하자 여기에 기름을 붓고 부채질을 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미국 최대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이며 공화당 보수 언론의 아이콘인 러쉬 림보(Rush Limbaugh), 공화당 TV뉴스 채널 팍스 뉴스(Fox News) 진행자 숀 해네디(Sean Hannity)와 로라 잉그램(Laura Ingraham)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날마다 트럼프를 그야말로 열렬히 지지하고 지원하였다.

특히 러쉬 림보는 앞으로 한국에서 꼭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그는 미국 보수 언론의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인이자 정치평론가인데, 특히 오바마가 집권 초기부터 대통령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발 러쉬 림보의 방송을 듣지 마라. 그 때문에 내가 발목을 잡힌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러쉬 림보는 “공화당의 배후의 목소리, 공화당의 지적 힘이자 에너지”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무려 600명의 스탭을 거느리고 엄청난 정보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예리한 정치 평론을 해왔다. 따라서 미국의 중도 및 보수 성향의 국민들은 어떤 이슈가 발생하면 림보가 뭐라고 말하는지 기다렸다가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결정할 정도다. 나아가 당시 죽어가던 AM 라디오가 러쉬 림보 덕분에 부활했을 만큼 러시 림보의 존재감은 매우 독보적이다.

대통령 자리는 임기가 끝나면 바뀌지만 러쉬 림보는 30년이 넘도록 자신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매일 3시간씩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대통령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을 이용하라!”
공화당원들은 특히 공화당 국회의원들의 무능에 대해 불만이 높았는데, 공화당 의원들은 다수당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정책마다 힘없이 언론에 끌려만 다닐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힐러리를 이길 후보는 공화당의 정치 명문가인 부시 집안의 젭 부시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며 거침없는 막말을 쏟아내는 트럼프가 등장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10여 년간 TV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언론과 대중의 생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언론이 관심을 갖고, 자신이 언론의 1면을 계속 차지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실제로 트럼프가 대중을 다루는 언론 플레이에 얼마나 능한가는 1987년에 나온 그의 책 『아트 오브 딜(The Art of the Deal)』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자신이 사업에 성공한 11가지 방법을 설명하면서 ‘언론을 이용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책 내용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언론은 항상 좋은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고, 소재가 좋을수록 대서특필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중략) 따라서 나는 일을 조금 색다르게 처리했으며, 논쟁이 빚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내가 관여한 거래는 다소 허황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성격 덕분에 나는 아주 젊어서부터 꽤 사업 수완을 보였다. 신문이 나를 주목하게 되어 내 기사를 쓰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됐다.

언론이 항상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때는 긍정적인 기사를 쓰지만 어떤 경우에는 헐뜯는 기사가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순전히 사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사가 나가면 항상 손해보다는 이익이 많기 마련이다.

수치상으로 보아도 명백하다. <뉴욕 타임스>에 1쪽짜리 전면광고를 내려면 4만 달러가 든다. 그래도 독자들은 광고 내용을 의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가 내 사업에 관해 다소 호의적인 기사를 한 줄이라도 쓰면 돈 한 푼 들지 않았지만 그 효과는 4만 달러 이상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비판적인 기사일지라도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p. 81-82)”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

현재 연재되고 있는 『트럼프와 대한민국』을 책으로 구입하고 싶으신 분은 [email protected]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종이책으로 출판할 예정입니다.

이준길 법학박사(SJD, 금융법전공), 변호사(미국 North Carol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