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사진가 [email protected]

처음의 인연
약 4년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도미니카에서 이곳 그린빌로 새로 이사오는 가족이었다. 마치 예전의 우리 가족처럼, 주재원 신분인 아빠가 먼저 와서 집과 차를 구해 놓고 다른 가족들은 나중에 올 예정이라고 했다. 비슷한 정착 과정을 겪은 사람으로서 많이 공감하며 내가 아는 만큼 최선을 다해 답을 해드렸다.
그렇게 해서 그 가족은 벌써 4년째 그린빌에 자리잡고 살고 있다. 그런데 그저 주재원 가족이라고만 생각했던 가족의 엄마가 한국화가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린빌에 살고 있는 한국화가 김연희님을 만나보았다.

미국에 대한 기대
먼저 미국에 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남편이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3년간 주재원으로 근무하다가 그린빌로 발령을 받았어요. 우리가 살던곳이 워낙에 낙후된 곳이다보니 가까이에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카리브 해의 아름다운 섬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에 가보고 싶은데, 그들은 미국의 무엇에 기대를 했을까?
“사실 엄마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게 하나도 없었어요. 도미니카는 워낙에 춤추고 놀기 좋아하는 문화, 피에스타로 대표되는 게으른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일단 미국으로 오게 돼서 아이들에게 참 다행이다 싶더라구요.”
와하하…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공감된다.

화가로서의 삶
얼마 전에 지역 공모전에서 두 번이나 입선을 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앤더슨 지역의 Gateway Gallery에서 열린 공모전하고, 그린빌 다운타운 Library 공모전에 입선했어요. 인터넷에서 공모전 공지를 보고 참가해 봤는데…….” 말줄임표에 담긴 의미는 다들 짐작하시리라.
“어릴 때 입시미술을 하다가 부모님의 사업부도로 꿈을 접게 됐죠. 그러다 도미니카에서 살게 됐는데, 그곳이 예술적으로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발전된 나라예요. 그러다보니 제 안에 잠들어 있던 욕구가 꿈틀거리며 깨어난 것 같아요. 그림을 많이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엄마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만스러웠던 나라 도미니카가 화가 김연희에게는 내면의 예술성을 꽃피우게 한 고마운 나라였던 거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그림 외에도 칠보공예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다. 미국에서도 공예 작업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제 어머니가 칠보공예 국가지정 명인이세요. 저는 공예 후계자로 등록이 되어 있구요. 이곳에서는 제대로 작업은 못하고 있지만 제 작업실과 갤러리에 어머니 작품을 놓고 전시하고 있어요. 제 소질의 100%는 어머니에게 물려 받았나 봐요.”

김연희님의 한국화 작품

앞으로의 계획
남편이 주재원이다보니 만약 한국으로 발령을 받으면 귀국을 하실 건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하실지 궁금하다.
“솔직히 영주권을 받고 싶어요. 돌아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그냥 하루 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그때 상황에 맞추서 잘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크게 걱정은 안 하고 살아요.”
예술가로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다.
“학창시절부터 글쓰는 것도 좋아 했어요. 그래서 습작도 많이 했는데 아직도 하나도 안 버리고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동화를 쓰고 있는데 잘 마무리하고 싶어요. 글도 쓰다보니 늘기는 하는 것 같더라구요. 하나씩 하나씩 해가고 싶어요. 순리대로……. 정해 놓고 하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거 잘 마무리하고 다음 일을 찾아야죠.”
그녀는 지난 4. 16 추모행사에서 멋진 자작시를 희생자들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그림에 공예에 멋진 글솜씨까지 다재다능한 예술가다.


요즘 우리 동네는 해가 뜨겁다. 덕분에 잔디도 날마다 쑥쑥 자란다. 김연희 님의 꿈도 나와 다른 모든 이들의 꿈도 5월의 잔디처럼 쑥쑥 푸르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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