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사진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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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다른 계획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라는 노래가 있다. 복음성가이지만 한국사람이라면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노래일 것이다. 오늘 제롬이 만난 사람은 이 노랫말을 삶에서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그린빌 한글학교의 이정미 선생님이다.
1985년, 이정미 선생님은 남편과 함께 로드 아일랜드 주립대로 로보트 공학 박사학위와 영문학 석사학위를 위해 유학을 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정미 선생님은 교통사고로 남편을 먼저 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얼마나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까?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정미 선생님은 그 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마도 하나님이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나봐요. 우리가 준비했던 대로는 인도를 안 해 주시더라구요.”

새로운 삶
하늘이 너무 원망스럽기도 했을 텐데 이제는 차분하고 평온한 모습에서 신앙인의 깊은 연륜이 느껴졌다. 그 후로 이정미 선생님의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시간이 좀 지나고 교회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그리고 로드 아일랜드에서 22년을 살았네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는데, 두아이 모두 그린빌 밥 존스 대학으로 왔어요. 그리고 2007년도에 남편이 이사를 가자고 하더라구요. 남편이 무려 27년이나 운영하던 레스토랑을 접고, 저도 First Baptist Christian School 교직을 그만두고 이곳으로 왔죠. 여기서 아이들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싶었어요.“
학교에서는 주로 몇 학년을 가르치셨을까? “주로 5~6학년을 맡았었어요.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 즐거웠어요.”
로드 아일랜드에는 한국 교민이 얼마나 있을까? “한국 사람은 거의 없었죠. 오히려 이곳으로 이사오니 한국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구나 느낄 정도예요.”

그러면 학교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으로서 동료 교사나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따돌림이나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으셨을까?
“원래 우리 가족이 다니던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이고, 서로 다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어요. 단지, 내가 이방인이다보니 한국 친구가 한 명 정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우리 교회에 한국 가족이 찾아왔어요. 원래는 절에 가고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절이 없더래요. 그러다 우연히 여기를 지나는 길에 교회가 이뻐서 들어왔다가 저를 만난 거죠. 그 가족과 몇 년간 같은 동네에 살다가 헤어졌는데, 사목공부를 하러 보스턴으로 떠났고 지금은 캘리포니아에서 목회하고 계세요.” 한국인의 정이 종교까지 바꾸게 만든 흥미로운 에피소드다.

아이들은 많이 사랑받아야
이정미 선생님은 그린빌 한국문화원 한글학교 막내반을 맞고 계신다. 마침 필자의 막내아들도 이 선생님반 학생이다.
“저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요. 사실 손주뻘이죠. 어린 아이들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 해요. ‘아,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하죠.
물론, 무조건 오냐오냐 하는 것은 사랑은 아니예요. 혼낼 줄도 알아야 하고 혼도 나봐야 하지요. 그런데, 반드시 설명이 필요해요. 왜 자신이 혼나는지 알아야 하죠. 그래야 원망을 안 하고, 형식적인 사과를 하거나 불신의 벽을 쌓지 않아요.”
문득 이제 열한 살이 되어 사춘기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필자의 딸이 떠올랐다. 더불어 한국 아이들이 커가면서 겪는 정체성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었다.
“우리집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커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더군다나 우리 애들은 아빠는 미국 사람이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니까 어느 나라 사람인지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겠죠. ‘차라리 한쪽 나라 사람이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래요. 아이들이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은 인정해야만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그 대신 자존감과 자신감을 심어줘야 하죠.
제가 크리스찬이라 그런지 성경에 있는 비유를 자주 이야기해요. 세상 사람들이 보는 얼굴은 인종, 언어, 피부색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선 다 똑같은 자녀일 뿐이라고요. 또 옥수수 비유도 해주죠. 알맹이가 덜 익었을 때는 옥수수 열매가 꼿꼿이 서 있지만, 익은 옥수수는 머리를 숙이죠. 그래서 옥수수처럼, 당당하되 겸손하라고 말해줘요. 내가 누군가를 깨닫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자녀임을 안다면 어떤 상황도 극복하리라 믿어요.”

성숙한 한인 공동체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공동체 성향도 바뀌어야 해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특히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험담은 삼가야 해요. 서로를 존중하고 정중하게 대하는 태도가 중요해요. 아이들이 보고 배우니까요. “
이정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해답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된다.
이정미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왔지만, 마음은 상쾌하고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