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시간 이상 지독하게 연습에 매진한 결과 손을 들 수 없어 밥을 못 먹을 정도였다는 스롱 피아비 선수 ©Sedaily

감자 캐던 소녀
‘캄보디아 청주댁’으로 불리는 스롱 피아비(32)는 당구 여자 3쿠션 한국 랭킹1위, 세계 랭킹 2위의 프로 당구선수다.
피아비는 고향인 캄보디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과 두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장래 희망은 의사였지만 여동생들을 위해 16살에 학업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도와 감자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고향에 있을 땐 희망이 없었어요. 감자, 밀, 땅콩, 참깨 농사를 짓느라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였어요. 가난한 탓에 꿈이 있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20살에 인터넷 국제결혼센터를 통해 28살 연상인 한국인 남편 김만식씨(60)를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를 처음 만난 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만식씨) 어찌나 일을 많이 했던지 손가락 주변에 풀물이 들어서 새카맸어요. 슬리퍼를 신고 선을 보러 왔는데, 꾸밈없고 선해 보이는 모습이 순수해 보이더라고요.”
“(피아비) 저는 국제결혼이 너무 싫었어요. 사랑하는 사람, 제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잖아요. 그렇지만 엄마랑 동생들이 힘든 거 보기 싫어서 다 포기했어요. 그런데 제가 남편을 보니까 눈빛이 착한 사람이었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캄보디아에서는 하얀 걸 좋아해요. 남편은 왕처럼 피부가 하얗고 점잖았어요. 처음엔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법이다. 너는 좋은 사람이니,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일 거야’ 하며 응원해 주셔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요.”

당구 천재
2010년 피아비는 충북 청주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만식씨와 인쇄소 한 켠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만식씨가 저녁이면 자주 당구를 치러 나가서 피아비는 집에 혼자 남겨졌다. 어느 날은 너무 심심해서 남편을 따라 당구장에 구경을 갔는데, 그런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만식씨가 “한번 쳐 볼래?” 하고 권했다. 그리고 그날 피아비의 인생이 바뀌었다.
태어나서 처음 큐대를 잡은 피아비는 자세부터 남달랐고,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들을 처음부터 척척 따라했다. 아내의 재능을 본 만식씨는 이튿날 피아비에게 3만원짜리 큐대를 선물하며 당구 레슨을 받게 해주었다. 그 결과 피아비는 당구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선수등록 1년 반만에 한국 랭킹 1위, 세계 랭킹 3위에 등극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만식씨) 캄보디아의 가난한 사람들이 뉴스 같은 데 나오면 아내가 그걸 보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래서 당신이 당구만 잘 치면 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내가 힘 닿는 데까지 밀어주겠다고 했죠.”
“(피아비) 남편은 당구에 관해서는 모든 걸 잔소리해서 정말 미웠어요. 많이 울었고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엄청 많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느꼈어요.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혼자 계속 연습했어요. 남편도 힘들 때가 많아요. 밥도 못 먹고 저 때문에 일하고, 저를 다 키운 것 같아요.”

피아비의 꿈
피아비와 만식씨는 결혼 12년이 넘었지만 아이가 없다. 피아비의 인생과 선수생활을 배려한 만식씨의 뜻이었다. 대신 피아비는 캄보디아 아이들의 사진과 함께 한글로 ‘나는 이들을 위해 살 것이다’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피아비)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 남편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꼭 우승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당구를 시작했을 때 남편이 ‘당신의 꿈이 뭐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제 고향에 학교를 지어서 당구를 가르치고, 한국어나 영어를 다 공부할 수 있는 스포츠 전문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제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요.”
피아비 부부는 상금을 모두 저축해 캄보디아에 학교 부지 3천평을 사고, 피아비의 모교에 학용품, 컴퓨터, 의약품, 후원금 등을 전달했다. 그리고 피아비의 아버지는 학교 부지를 보더니, “이 땅을 보니 너무 행복하다”며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피아비는 현재 캄보디아에서 한국의 김연아에 버금가는 국민적 영웅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피아비를 위해 당구연맹까지 신설해 그녀가 캄보디아 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지원해 주었다.

‘나는 이들을 위해 살 것이다’라는 결심을 실천하고 있는 피아비의 모습 ©피아비

“(피아비) 한국에 와서 제가 행복했어요. 적어도 제게는 한국은 뭐든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는 나라예요. 당구 선수로 좋은 성적을 거둬서 한국 국민들이 주신 사랑에 보답하고, 고국에도 한국인의 사랑을 전해 양국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김연아 선수를 좋아하는데, 저도 따라서 기부를 많이 하려고 해요. 다른 사람을 돕는 건 참 행복한 일이에요. 바다에 가면 파도가 밀려오잖아요. 그런 벅찬 기분이에요.”
“(만식씨) 평생 일만 하며 살았는데, 캄보디아를 찾아가 사람들을 도우니 그렇게 마음이 좋더라고요. 내가 아내를 도운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나를 도왔어요. 피아비의 학교를 이루어 가는 게 꿈이고 낙입니다.”
피아비와 만식씨 부부의 아름다운 꿈과 행복한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