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육체로만 판단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과 열정에 충실하라. ©Discogs
박성윤
미주 우리 사는 세상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코너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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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Youth, 2015)
감독 : 파올로 소렌티노
주연: 마이클 케인, 하비 케이틀, 레이첼 와이즈, 폴 다노, 제인 폰다

젊음에 대한 성찰
2014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The Great Beauty(2014)>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다음 작품인 영화 <Youth(2015)>를 통해 인생의 황혼기를 살아가는 노인의 눈으로 젊음과 사랑, 열정을 바라보며 진정한 ‘젊음’에 대한 또 하나의 성찰을 시도한다.
영화 <Youth>는 2015년 칸 영화제 경쟁부분 초청작이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른 주제곡 ‘Simple Songs’가 2016년 아카데미 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우리에게는 조금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젊음을 지나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인 작곡가 겸 지휘자 프레드는 자신의 비서이자 딸인 레나, 그리고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노장 감독인 믹 보일과 함께 알프스의 한적한 휴양지에서 하루하루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영국 왕실에서 여왕의 특사가 찾아와 왕자의 생일에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그의 작품 ‘심플송(Simple Songs)’을 직접 지휘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만 프레드는 자신은 이미 은퇴를 했다며 거절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온 자신의 회고록 출판 의뢰마저 거절해 버린다.
“아니, 그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프라노 조수미를 섭외했는데도 거절하실 겁니까?”라는 특사의 말을 들으며 아마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미소를 지었으리라!
한편 프레드와 달리 열정적인 믹은 젊은 스탭들과 자신의 유작이 될 마지막 영화의 각본 작업에 매진하며 엔딩 장면에 대한 영감을 얻으려 열심이다. 프레드와 믹은 늘 서로의 아침 소변양을 체크하며 전립선의 안부를 묻고, 십대 때 둘이 같이 짝사랑했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억과 농담을 나눈다.

편견을 깨다
그들 외에도 이 리조트에는 여러 명의 흥미로운 인물들이 있다. 헐리우드 출신의 젊은 영화배우 지미 트리는 다음 영화의 캐릭터 연구를 위해 이곳에 와 있었다. 그는 대중들에게 가장 성공한 영화 속의 로봇 캐릭터 ‘미스터 Q’로만 기억되는 자신이 다른 캐릭터를 소화해낼 수 있을지 고민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지미가 아닌 미스터 Q로만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늘 불만스러워한다.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던 미스 유니버스가 그곳에 도착해 지미에게 인사를 건네며 미스터 Q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그는 냉소하며 ‘미인은 멍청하다’는 투로 비아냥거린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녀가 미스터 Q가 아닌 다른 영화에서 “난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한 적이 없어.”라는 그의 대사가 감명깊었다고 말하자, 지미는 비로소 이 세상에 다 준비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래서 두려워할 것 또한 없음을 깨닫고 자신만의 연기를 시작한다.
이 외에도 휴양지에는 다채로운 인물들이 모여 있다. 공중부양을 하기 위해 오랜 세월 수행해온 라마승이 결국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기괴하리만큼 뚱뚱한 왕년의 축구스타가 평소엔 지팡이를 짚고 걷다가 공을 보자 아이처럼 신나게 왼발로 리프팅을 하며 즐거워한다.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이 교차하며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뜨리고, 젊음과 늙음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진정한 젊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열정이 떠나간 자리
한편, 영국 여왕이 프레드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아 다시 프레드를 찾아온 특사는 계속 그를 설득하며 그가 거절하는 이유를 물고 늘어진다. 그러자 프레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심플송은 자신의 아내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젊은 시절 아름답던 프레드의 아내는 그의 열정이자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아내를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늙고 병들어 흉측하게 변해버린 아내의 모습은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결국 그는 은퇴를 선언하고 이곳으로 와서 죽은 듯이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은퇴선언과 함께 그의 음악적 열정마저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무의식 중에 사탕 껍질을 리드미컬하게 비비고, 들판에서 소의 워낭소리와 어우러진 자연의 소리를 지휘하는 그의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몸짓은 그의 내면에 여전히 살아 숨쉬는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의 표현이었다.

끝과 시작
어느 날 믹의 새 영화 주인공인 브렌다 모렐이 갑자기 믹을 찾아온다. 지난 53년간 함께 영화를 만들어온 믹의 뮤즈 브렌다 모렐은 믹에게 그의 새 영화에 출연하지 않을 것이며, 이젠 늙어서 감각도 없는 상태에서 쓰레기 같은 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말라며 일침을 놓고 떠난다.
믹의 영화는 브렌다의 명성으로 제작되는 영화였기에 영화 제작은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믹은 허망하게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만다. 그가 죽기 전 자신의 영화 속 주인공들과 애틋하게 인사를 나누는 환상은 믹의 욕망과 열정이 종료되고 이제 죽음을 맞이할 것임을 암시한다.
믹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프레드는 마침내 아내를 찾아간다.
“애들은 모를 거야. 모든 고통의 순간 속에서도 우리가 늘 함께였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늘 서로를 생각한다는 것을. 심플송을 통해서 말이야.”

나의 열정을 따라
젊음은 지나갔지만 프레드는 다시 자신의 열정을 따라 지휘봉을 잡고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버킹엄 궁전 무대에 선다. 믹과 프레드가 그 옛날 첫사랑을 떠올리며 “행복감은 브레이크 밟는 것을 잊게 하지”라고 했던 말처럼, 심플송의 가사 ‘I lost all control….’이 조수미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울려퍼질 때 우리는 젊은 날 우리가 사랑했던 그 찬란한 아름다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삶이란 연두빛 봄과 짙푸른 여름을 지나 각기 본연의 색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가을을 넘어 다음 생을 기약하는 씨앗으로 영그는 겨울을 맞이하는 숭고함이 아닐까. 그래서 늙음은 지혜와 추억으로 더욱 풍성해진 나를 발견하는 기적 같은 사건이 아닐까.
영화의 피날레 심플송과 함께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 한 구절이 겹쳐진다.

한때는 그리도 찬란한 빛이었건만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강한 힘으로 남으리.
존재의 영원함을 티없는 가슴으로 믿으리.

삶의 고통을 사색으로 만지고
죽음마저 꿰뚫는 명철한 믿음이라는 세월의 선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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