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은 폭포 앞 벤치에 앉아 그의 상실감을 위로하고 있다. ©vice.com
박성윤
캐롤라이나 열린방송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코너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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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Paterson, 2016)
감독: 짐 자무쉬
주연: 아담 드라이버
골쉬프테파라하니

<천국보다 낯선(1984)>과 <데드맨(1998)>, <커피와 담배(2006)> 등으로 알려진 짐 자무쉬는 후기 산업 사회의 인간 소외와 고독을 자기만의 독특한 통찰과 미학으로 1980년대부터 독립영화를 이끌어 온 미국의 대표적인 거장 감독이다.
2016년작 영화 <패터슨>은 청년 시절 시인을 꿈꾸던 자무쉬 감독이 버스 운전사 패터슨을 통해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이 아름다운 시로 승화되는 삶의 기적을 잔잔한 감동과 함께 아름답게 그린 영화이다.

매일 똑같으면서 새로운
시내버스 운전사 패터슨(Paterson)은 미국 뉴저지의 소도시 패터슨(Paterson)에 산다. 이곳은 펑크 락커 이기 팝(Iggy Pop), 코미디언 루 코스텔로(Lou Costello)), 그리고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가들이 살았던 산업도시이다.
패터슨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알람 없이 일어나 아직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키스하고, 자신의 유니폼을 들고 조용히 침실을 나와 씨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버스 발차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자신의 비밀노트를 꺼내 영감이 떠오른 시 한 구절을 적고, 둉료인 도니(Donnie)가 자신의 일상이 얼마나 고달픈지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어준 후 발차 시간이 되면 승객들의 대화를 들으며 패터슨 시내를 돈다.
점심 때가 되면 그는 도시 외곽의 폭포 앞에서 아내 로라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시를 쓰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로라와 저녁식사를 마친 후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시키며 동네 바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돌아온다. 그의 하루는 일주일간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
그러나 패터슨이 관조하는 세상에서는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 속에 크고 작은 변주들이 더해지며 하루하루 매순간에 새로움이 더해진다. 심지어 그는 매일 한번씩 서로 다른 쌍둥이 형제자매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은 겉보기엔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크고 작은 차이를 가진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이는 패터슨의 하루하루가 쌍둥이처럼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새로운 영감과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만남으로 채워진 완전히 새로운 하루임을 상징한다.

무표정하면서 따뜻한
패터슨은 늘 무표정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찰자이기도 하다. 길거리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소녀의 자작시 낭독을 듣고는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얘기해준다. 코인 빨래방에서 랩을 연습하는 아마추어 래퍼의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 좋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이 아마추어 래퍼역은 천재 래퍼 우탱 틀랜의 메소드 맨이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어느 날 버스에서 공사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여자 꼬시기’ 대화에 패터슨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나는데, 이 장면을 통해 자무쉬 감독은 고단한 일상에 자신의 열정을 끼워 맞출 수밖에 없는 노동자 계급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둘이면서 하나인
영화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캐릭터는 패터슨과 대조적인 성향을 가진 그의 아내 로라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활기차며 인테리어, 제빵, 요리, 음악에까지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표출하며 매일매일 열정 가득한 하루를 보낸다.
로라는 최근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흑백 칼라로 온 집안을 칠하고, 흑백 할리퀸 패턴의 기타를 사달라고 조르며, 자신이 곧 컨트리 가수로 성공할 거라고 말하는 망상적인 아마추어 예술가이다.
패터슨은 이런 로라의 예술작품에 담담하고, 그녀의 창조적인 요리에 열광하지 않으며, 로라가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개 마빈에 대한 애정 또한 공유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에게 어떤 불만도 없이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각자 개성의 공간을 허용하면서 삶을 공유한다. 상대방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은 로라가 좋아하는 흑백의 조화처럼 완벽한 조합을 상징하는 듯하다.
어느 날 아침을 먹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파란색 성냥갑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 ”Love Poem”은 ‘우리집에는 성냥이 많다’로 시작해 점심 때 격렬하게 쏟아지는 폭포 앞에서 로라를 떠올리며 완성한 시다. 이 시는 늘 동요가 없는 패터슨의 표정과 대조적으로 매우 원초적이고 정열적이다.
삶의 어떤 특별한 도달점에 닿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지 않는, 마치 득도한 승려 같은 평화로운 그의 삶의 중심에는 로라와의 근본적인 사랑의 감정이 모든 정서적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우울하면서 희망적인
이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패터슨과 로라가 데이트를 즐기는동안 마빈이 패터슨의 비밀노트를 갈기갈기 찢어 놓은 사건이다.
패터슨은 자신의 시를 세상에 내보일 생각이 없었지만, 그의 아름다운 시를 세상 사람들도 읽을 기회를 줘야 한다는 로라의 설득 끝에 출판을 위해 노트를 복사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마빈 때문에 그의 시들이 모두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화를 내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저 잠시 세상과의 내면적 격리를 시도한다. 갑작스러운 상실이나 슬픔에 반응하는 패터슨의 이런 방식에 대해 자무쉬 감독은 그것이 자신과 똑같은 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늘 시를 쓰던 폭포 앞 벤치에 우울하게 앉아 있는 패터슨 옆으로 어떤 일본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는 시인이며,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발자취를 찾아 이곳에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패터슨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떠나면서 그에게 빈 노트를 선물한다. “때론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는 말과 함께.

삶의 예술
문득 평범한 일상에서 매순간 새로움을 보는 패터슨 같은 나의 벗이 생각난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일하는 그녀는 어느 날 순대를 팔며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소복소복 담겨 있는 속이 꽉 찬 순대”
“등이 휜 엄마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눈물 같은 순대”
“시장 좌판에 땀 흘리는 일꾼들에게 한 줌 더 썰어 얹어주는 순대”
“자, 순대 드시고 가세요. 순대!”
시인의 눈으로 자신의 감수성을 표현하고 선함과 부드러움으로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며 자신만의 예술적 경험을 세상과 나누는 이들은 복이 있나니, 지극한 슬픔과 환희가 모두 그들의 것이 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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