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소년 아메드의 광신적 신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insight.co.kr
박성윤
미주 우리 사는 세상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코너 진행 [email protected]

소년 아메드 (Young Ahmed, 2019)
감독 :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주연 : 이디르 벤 아디

테러의 중심지 벨기에
노동자 계층의 빈곤한 삶과 사회적 부조리 그리고 절망적 상황에 놓인 인간의 윤리적 갈등을 심층적으로 다룬 영화를 만들어 온 벨기에의 거장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의 2019년작 영화 <소년 아메드>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13살 소년을 통해 인간의 신념과 광기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디아스포라의 중심에 있는 무슬림 난민 2세의 혼란스러운 이데올로기를 담은 이 영화는 다르덴 형제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고,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13살 소년 아메드
벨기에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무슬림 이민자 가정의 13살 소년 아메드. 그는 엄마와 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소년이다. 비디오 게임을 하며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이 지내던 아메드가 이슬람 기도원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의 지도자 이맘을 만나면서부터 점점 이슬람 전사로 세뇌되어간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맘으로 인해 아메드는 지하드(전쟁이나 테러)에서 죽은 자신의 사촌을 롤모델로 삼고, 의로운 순교와 무장 투쟁의 영광을 찬양하는 영상을 보며 자신도 진정한 무슬림이 되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율법에 따라 하루 5번 기도하고 손을 깨끗이 씻고 입안을 헹군다. 반대로 술을 마시고 히잡을 쓰지 않는 어머니를 경멸하며,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누나의 행실을 비난하고, 심지어 여자와는 악수조차 하지 않는다.

이슬람 전사 아메드
5살 때부터 아메드를 가르쳐온 무슬림 공동체의 교사 이네스가 아랍어 교육을 위해 아랍어로 노래하는 아이디어를 내자, 이맘은 이네스에 대해 아랍어를 서구화하는 배교자이고 심지어 남자친구가 유대인이라며 처단 대상이라고 말한다.
아메드가 이네스에게 남자친구가 정말 유대인인지 묻자, 이네스는 종교는 서로 교류가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아메드는 코란에는 유대교와 기독교는 우리의 적이라고 나와 있다며 과도를 들고 “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직접 이네스를 처단하려고 한다. 이네스는 가까스로 위험을 피했지만, 아메드는 살인미수로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첫사랑에 눈뜬 아메드
벨기에의 소년원은 사회복지사, 심리치료사, 법조인 등이 아메드처럼 어린 죄수들을 돕기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분위기도 매우 포용적이다. 아메드는 과연 이곳에서 변화될 수 있을까? 아메드는 소년원 생활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늘 무표정하고 말이 없어 관객들은 그의 속내를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치료 활동의 하나로 농장일을 하던 아메드는 목장주의 딸 루이즈를 만나게 된다. 아메드에게 관심을 보이던 루이즈가 어느 날 아메드에게 안경을 벗어보라고 한다. 그리고 너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루이즈의 말에 풋 웃어버리는 아메드는 잠시 수줍고 순진한 13살 소년이 된다.
다르덴 형제는 이 장면에서 여느 아이들처럼 사랑의 감정에 눈뜨는 순간을 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아메드를 종교적 광기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인간 내면 깊숙히 파고든 광기는 첫사랑조차 구제해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락하는 아메드
이네스 선생님은 아메드를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농장에서 칫솔을 훔쳐온 아메드는 밤마다 칫솔 끝을 날카롭게 갈아 이네스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그가 달리는 차에서 탈출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라며 흐느끼는 엄마에게 조용히 티슈를 건네지만 자신의 사명을 놓지 않는다. 그의 신념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엄마, 친절한 사회복지사들, 자신을 용서한 이네스 선생님, 그리고 첫사랑 소녀 루이즈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다시 한번 이네스 선생님을 해치려고 달려가는 아메드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카메라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교실 뒷뜰의 3층 창문으로 기어올라가던 아메드가 갑자기 추락하고 만다. 큰 부상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아메드. 광신적인 신앙심과 자신의 목숨 사이에서 아메드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아메드는 이네스 선생님을 찌르려고 준비한 쇠꼬챙이를 힘껏 두드려 구조 요청을 한다. 그리고 그를 구하러 온 이네스 선생님에게 울먹이며 용서를 구한다.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아메드의 얼굴 위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비장하면서도 애절하고 부드러운 이 선율은 아메드의 마지막 얼굴과 함께 관객의 마음 속에도 한동안 긴 여운을 남기며 머무를 것이다.

회심한 아메드
다르덴 형제는 어린 주인공이 삶의 의욕과 활기를 되찾는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뇌된 광신자를 되돌릴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메드 스스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스스로 자살폭탄이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회심한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아메드가 죽음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 것은 아마도 그가 괴물 같은 어른이 아니라 아직은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이 가진 아이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아메드가 추락한 순간 튀어나온 첫 마디가 자신이 맹신하던 ‘신’이 아니라 따뜻한 품을 가진 ‘엄마’였던 것과,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하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삶의 의지와 변화의 희망을 감지하게 된다.

죄의식과 불안, 공포 앞에서 인간은 주체적인 생각과 판단 능력, 그리고 본연의 감정마저 마비된다. 불확실한 두려움의 근원을 마주할 의지를 잃어버리고 어떤 집단이나 개인을 신봉하는 특정한 가치 체계에 세뇌당하게 된다. 공포를 이용한 세뇌와 그로 인한 맹신은 독재자의 통치 메커니즘으로 인류의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왔고, 현대에 와서는 더욱 더 치밀하고 고도화된 방법으로 세상 곳곳에 독버섯처럼 퍼져 사회악을 낳고 있다.
오늘날 사회의 가장 폐쇄적인 시스템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며, 의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탐구하는 다르덴 형제는 이 영화 <소년 아메드>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삶의 의지’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명실상부 이 시대의 빛과 소금 같은 감독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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