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중간선거에 출마한 자랑스런 한국계 후보들의 모습 ©KOREAN LIFE

이준길 변호사 (NC)
법학박사 (SJD)

아시안 정치 리더들
지난 11월 8일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 4명이 모두 재선에 성공했고, 하와이주에서는 한인 최초의 부지사가 탄생했다. 근소한 차이로 안타깝게 낙선한 후보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가 앞으로 한인들의 정치력 확장에 크게 기여할 인물들이다. 1세대 한인 정치인이 시작한 정계 도전을 이제는 1.5세와 2세, 3세들이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2022년 선거 결과가 아직 완전히 나오지 않았기에 지난 2020년 11월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상원 및 하원의원 총 535명의 인구대비 인종별 분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20년 미국 중간선거 결과 ©KOREAN LIFE

이 결과를 보면 인구대비 백인 정치인 비율이 76%로 아직도 높은 편이고, 아시안은 3%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인종별 인구수를 보면 아시안과 히스패닉 정치인들의 경우 앞으로 2배 이상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아시안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백인 정치인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그 자리를 아시안과 히스패닉 정치인들이 대신하게 될 것은 매우 자명한 사실이다.

미국의 정치 지형
미국의 정치 지형은 다른 나라와 많이 다르다. 미국은 전 세계 여러 인종들이 어우러져 사는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서 다양한 정치적 이념과 철학이 공존한다. 따라서 같은 인종이라도 각자의 신념에 따라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
특히 현재 미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가장 숫자가 많은 백인 정치인들끼리 민주당, 공화당으로 나뉘어 매우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유권자들도 예를 들어, 백인 공화당 후보와 흑인 민주당 후보가 경쟁할 경우, 자신의 인종에 상관없이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한다. 이런 특징 덕분에 지난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흑인 인구가 13%였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의 지지를 얻어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아시안 미국 대통령
아시안들 중에는 아시안 인구가 아직은 너무 적으니, 나중에 아시안 인구가 좀 더 늘어나면 그때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13% 흑인표가 아니라 60% 백인들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처럼, 아시안 정치인들도 6% 아시안의 지지를 넘어 다른 인종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는 것이기에 굳이 아시안의 인구수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또한 현재 연방의원들의 숫자를 보면 히스패닉 연방의원 숫자는 인구대비 9%인데 반해, 히스패닉보다 인구가 적은 흑인들의 경우 11%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정치력이 인구수에 비례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인구가 많아야 정치인의 숫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현재 인구수에 비례해 아시안 연방의원은 최소 32명, 히스패닉 연방의원은 102명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아시안 연방의원은 17명, 히스패닉 연방의원은 46명뿐이다. 이 말은 아시안이 히스패닉처럼 인구 20% 수준이 되어도 현재의 히스패닉처럼 연방의원 46명에 불과하여, 인구 14%인 흑인보다 연방의원이 적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결국 중요한 것은 인구수가 아니라, 현재의 흑인들처럼 얼마나 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도전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최근 영국에서는 인도계 아시안 리시 수낵(Rishi Sunak)이 최초로 아시안 영국 총리가 되었다. 사실 수낵 총리는 흑인이자 아시안이다. 그의 부친이 인도계 아시안이기 때문에 주로 아시안으로 불린다. 영국의 아시안 인구는 7%, 흑인은 3%, 합해서 10%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안-흑인 총리가 탄생했다. 이에 비해 미국의 흑인 인구와 아시안을 합하면 20%다. 오바마나 수낵을 보더라도 인구수가 당선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4년 전 미국에서는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고, 2022년 영국에서는 아시안이 총리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미국에서 아시안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현재 미국의 정치 상황으로 볼 때 멀지 않은 미래에 아시안 대통령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 해리스 부통령이 아시안을 대표하고 있으므로 빠르면 2024년에 아시안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흑인 정치인들의 도전
미국의 소수인종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도전하고 또한 크게 성공한 것은 흑인들이다. 덕분에 흑인 대통령이 이미 존재하고, 현재 59명의 연방의원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에 더해 미 전역에 걸쳐 주지사, 시장, 주 검찰총장, 주 대법원장, 주의원, 시의원, 교육워원, 지방판사 및 검사 등 모든 선출직에 전방위적으로 도전하여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 선거에서는 로스엔젤레스에도 흑인 여성이 시장으로 당선되어 명실상부 대도시 시장들은 흑인들이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다.

왜 흑인들은 아시안이나 히스패닉에 비해 정치에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일까?
첫째는 그들의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뼈아픈 사무침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어느 날 갑자기 노예로 붙잡혀 와서 억울한 핍박과 착취, 부당한 차별과 죽음을 수도 없이 경험하며 300여년 동안 분노 속에 살아온 흑인들. 이제는 그들 스스로 정치 권력을 가져야 더 이상 이런 부당한 대우를 당하지 않을 거라는 깨달음이 그들을 정치로 이끌었을 것이다.
둘째는 흑인들의 결집력이다. 흑인들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집단적인 차별을 받아왔다. 때문에 그들은 아시안이나 히스페닉에 비해 인종적 결집력이 매우 강한 편이다. 특히 흑인들은 민주당이라는 단일 대오로 뭉쳐 있기 때문에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진 아시안과 히스패닉보다 더 많은 흑인 정치인을 의회로 보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의 정치적 성공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찍부터 정치적 영향력에 눈 뜬 흑인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안 정치인들의 도전
한편 아시안은 이민 초창기부터 주로 경제적 성공에 매진해 왔다. 미국 이민 역사가 가장 짧은 아시안 1세대 이민자들의 최우선 과제는 당연히 경제 문제 해결과 자녀교육이었다. 그들의 꿈과 희생을 딛고 성장한 이민 2세, 3세들이 드디어 1세대의 경제력을 추월하며 이제는 당당한 미국 사회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시안은 이민 역사가 상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경제적 성공과 안정을 바탕으로 이제 정치에도 도전하고 있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온건하고 평화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아시안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겪는 어지간한 차별에는 그러려니 하며 참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아시안이 가장 중시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교육 문제에 있어서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에서 질시의 대상이 되어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동등한 경쟁을 통해 입사한 직장에서도 단지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라는 부당한 차별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단지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무차별 폭력과 욕설을 경험하면서 이제는 아시안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배경 때문에 그동안 ‘조용한 소수’였던 아시안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결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유권자 그룹으로 정치 세력을 형성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2020년 연방의회 선거에 출마한 아시안 후보는 158명으로 지난 선거보다 15% 증가했다. 또한 지난해 선거에서 아시안 유권자들의 투표율도 역대 최고였다고 한다. 따라서 아시안 리더들이 미국 정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이다.

초당적 지지
2050년에 미국의 아시안 인구는 9%가 될 거라고 한다. 아시안이 결집한다면 미국 사회 전반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숫자다.
현재 젊은 백인 세대는 정치보다 경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물러난 자리에 아시안이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안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정치적 리더십을 갖도록 권장해야 한다. 그리고 아시안 후보들이 출마하면 당을 떠나 적극적인 지지를 해주어야 한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아시안 정치인이 많으면 아시안의 권익신장을 위해 초당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인구에 비례해 연방의원 32명을 비롯하여, 주지사, 판사, 대법관 등 수많은 차세대 아시안 리더들이 하늘의 별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들은 아시안의 권익은 물론, 더 공정한 미국 사회를 만들고, 전체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는 진정한 리더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