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하고픈 말들을 잠시 호리병에 담아 두자. ©RomayKitchen

호리병에 담아

내 하고 싶은 말들을
호리병에 담아 두었네

텅 비어 있어도 차 있는 듯
가득 차 있어도 비어 있는 듯
누가 툭툭 건드려도
깊은 종소리로 울렸으면 좋겠네

기울여 잔에 따르면
얼음 녹는 소리로
졸졸 흘렀으면 좋겠네

알 듯 모를 듯 꽃처럼 웃으며
언뜻언뜻 향기 풍겼으면 좋겠네

목을 거쳐 작은 입으로, 퐁퐁
맑은 소리 울렸으면 좋겠네

▶ 시인의 말

하고 싶은 말들을 호리병에 담아 둡니다.
이 말들이 호리병 밖으로 흘러나올 때
물소리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내 속에 아름다운 생각들이 맑은 물로 고여 있다가
말소리 되어 나올 때, 깊은 종소리로 울렸으면 좋겠습니다.
뿌리가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길어 올려 피운 꽃처럼
나의 말이 향기를 풍겼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말이 얼어붙은 가슴을 향해 따스한 봄 기운이 되어
얼음을 녹이는 소리로 졸졸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반가운 엽서』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
임문혁 시인의 시집 <반가운 엽서> ©시와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