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를 적시며 흐르는 물에 가슴을 베인다 ©Dreamstime

물의 칼

대장간의 화덕에서 벼려진 굳은 쇠붙이만이
예리한 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로 가슴을 베인 적이 없는가?

해협을 향해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의 모서리가 아니라

몇 방울의 물

두 안구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 방울도

사람의 가슴을 베는 칼이 된다

임보 (1940~ ) 전남 순천 출생.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임보의 시들<59~74>』,『목마일기』,『황소의 뿔』등 14권이 있다. 시예술상 본상, 상화시인상, 제30회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시 해설
물의 칼이라니! 참으로 기발한 상상력입니다.
형체도 없고 부드럽고 연약한 물이 예리한 칼이 될 수 있다니요! 물의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칼날을 보아 내다니요!
당신은 물의 칼에 가슴을 베인 적이 없으신가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물의 칼에 여러 번 가슴을 베었습니다. 부모님의 눈물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에, 친구의 눈물에, 아이의 눈물에,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물 방울에 수도 없이 가슴을 베이면서 제 삶이 더 깊어지고 맑아진 것이었더라구요.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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