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HL'S 백화점 내의 화장품 편집샵 세포라에 취업한 엘리의 이름표 ©스마일 엘리

잡 인터뷰
완벽한 면접을 위해 나름 열심히 사전준비도 하고, 집에서 일찍 나섰지만 갑자기 길이 헷갈리는 바람에 인터뷰에 지각을 해 버린 저…….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K 백화점의 총책임 매니저, S사 매니저와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일단 인터뷰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리라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면접에서 떨어지더라도 후회 없도록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가리라!’ 다짐하며 입술도 꽉 깨물었어요.
K 백화점의 매니저는 저를 보자마자 반갑게 활짝 웃으며, “오! 이미 도착했었군요! 방금 전에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메세지 남겼어요. 오늘 못 오는 줄 알았는데 만나서 반가워요. 난 K 백화점 매니저 ○○○예요.” 하며 악수를 청하더라고요. 저도 악수를 하며 좀 구차해 보이지만 살짝 변명을 흘렸습니다. “제가 아직 이 지역이 낯설어서 길을 잃었어요.” 그랬더니 이곳으로 언제 이사 왔는지, 이 지역이 어떤 것 같은지 등 일상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이어서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모든 면접의 공통 질문. “Tell me about yourself.”
예전에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살 때 홈굿즈에 이력서를 내러 갔다가 갑자기 당장 시간 되냐며 오피스로 끌려 들어가 즉석 면접을 한 적이 있어요. 면접 준비를 하나도 안 한 상태에서 당황해서 뭔소리를 하고 나온지도 모르는 인터뷰 흑역사죠. 그래서 제가 가장 많이 연습했던 것이 바로 이 질문의 답이었기에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제 대답을 듣고는 예전에 8개월 정도 일했던 미국 마트 크로거에서의 알바 경험을 언급하시더라고요. 이 내용은 이력서에 끼워 넣기는 했지만 첫 질문에 답할 때는 언급하지 않았어요. 제가 지원한 뷰티 분야와 별로 관련도 없고 일한 기간도 짦았으니까요. 그렇지만 하문을 하시니 답을 드렸지요.
미국으로 이민 와서 처음으로 구한 파트타임 잡이었고, 캐쉬어 업무를 했기 때문에 캐쉬 핸들링에 전혀 문제가 없고, 고객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라 고객 서비스를 경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요.
그런데 근무 기간이 짧았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조금 더 덧붙였어요. 일을 더 하고 싶었지만 임신 8개월이 되어 출산 준비로 그만 두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전업주부로 육아에 전념했다고 답을 끝마치려 하는 순간!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제 책 <엘리네 미국 유아식>. 왠지 오늘 면접에 쓸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에 가져왔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감이 파바박~!!! 왔습니다.

특기와 장점
“제가 크로거 일을 그만 둔 후로 이력서에 쓸 커리어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예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폰던트 케이크를 만들었고 페이스북으로 주문을 받아서 커스텀 케이크 판매를 하기도 했어요. 커스텀 케이크는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려면 고객과의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한데 그런 부분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 고객을 위한 하나밖에 없는 케이크니까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서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첫째 아이가 음식 거부가 심해서 미국 유아식을 시도했고 그 경험을 블로그에 공유하면서 유아식 책도 출판했어요. 혹시나 해서 책을 가져 왔는데 한 번 보실래요?”
그러자 그분들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더 뜨거웠어요. “당연하죠!!!” 하시길래 주섬주섬 책을 꺼내 드렸더니 두 분이 미국 유아식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계속 ‘오마이갓!’을 연발하며 질문을 하셨어요. ‘사진도 직접 찍은 거냐? 음식 연출도 직접 한 거냐? 이거 너무 맛있어 보인다! 너무 귀엽다!!!’ 하며 매니저 두 분이 얼굴을 맞대고 책을 들여다보며 대화를 나누시더라고요.
‘아, 미국 유아식 책을 살리긴 했는데, 이걸 면접과 연결해서 잘 마무리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두 분이 책에 집중하는 사이 저는 머리를 굴리며 마무리 멘트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최근 6년간 전업주부로 지냈지만 그동안 케이크 작업도 하고 책도 출판했기 때문에 일을 완전히 쉬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블로그를 꾸준히 해 오면서 책을 낼 기회가 생겼고, 책을 읽은 독자들의 질문과 메시지에 답하는 과정도 고객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고객 서비스 일도 계속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국 유아식 책을 고객 서비스와 연관지어 마무리를 했습니다.

위기 일발
그리고 이어서 일본에서의 직장 생활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일본에서 겪은 문화 차이가 있는지 물으셨어요. 이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고, 일본에서 7년간 살면서 이미 완벽하게 적응을 한 후라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어서 갑자기 크게 당황해 버렸습니다. (앗, 위기다…!) 당황하니 머리도 굳어 버려서 1분 넘게 눈알만 굴리며 아무 대답도 못하니, 화기애애하던 인터뷰 현장에는 정적만 흘렀습니다.
그러자 K 백화점 매니저가 질문을 바꿔 “그럼 일본에도 살아보고 미국에도 살아봤는데, 어디가 더 좋아요?” 라고 물으셨어요. ‘아, 이것은 불합격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쌍한 어린양을 위한 문제다!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
“당연히 미국이죠. 미국에 온 후로 저에게는 많은 기회가 생겼어요. 미국 아기들의 유아식을 접하고 미국 유아식으로 아이를 키운 경험 덕분에 미국 유아식 책을 출판할 수 있었고, 미국의 다양한 홈데코샵을 알게 되면서 홈데코에 관심이 생겨 집을 꾸미고 그것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책 출판 제의가 들어와 지금은 인테리어 책 작업 중에 있어요.”
그러자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오마이갓!”을 연발하며 눈에서 별이 쏟아지더라고요. 저는 끝까지 대답을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미국에 왔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저에겐 도전이었지만, 저는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뭐든 한번 시작하면 최선을 다해요. 이게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제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만하면 불합격은 면했겠지 안도한 순간, 제가 제일 두려워 하던 질문이 날아왔습니다.

운명의 순간
“근무 가능한 시간이 언제예요?”
아, 이때가 5월 중순이었고, 한 달 후면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 그러면 저는 아이들 보느라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드디어 승부수를 띄워야 할 운명의 순간이 온 거죠.
“저는 평일, 주말 모두 가능해요. B.U.T……, 아시다시피 두 아이의 엄마이고 주변엔 아이들을 돌봐줄 가족이 없어요. 그래서 6월에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평일에는 일을 할 수 없고, 대신 주말에는 일을 할 수 있어요. 사실 이것 때문에 9월부터 일을 구할 생각이었지만, S사의 구인광고를 보고 난 후 이곳에서 너무너무 일을 하고 싶어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기회가 왔을 때 일단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지원한 거예요. 지금 당장 일을 할 수는 없지만, 9월에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가고 난 이후에 누군가가 필요할 때 저를 불러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어제는 다른 도시에 있는 S사의 매장에 직접 가서 직원들이 어떤 유니폼을 입는지 살펴보고 그에 맞춰서 오늘 옷도 비슷하게 입고 왔어요. 그래서 제가 S사의 직원으로 일할 때의 모습을 여러분이 미리 보실 수 있도록요.”
그러자 매니저 두 분의 눈이 완전 반달눈이 되어서 너무 흐뭇하게 웃으시더라고요. 고개도 끄덕끄덕. 그러더니 아이들 방학과 개학 날짜가 정확히 언제인지 묻고, 6월 이후에 휴가나 여행 계획이 있는지도 물어보고 기록하시더라고요.

준비된 사람
마지막으로 S사 매니저가 이전 근무 경험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실무에 대한 질문을 하셨는데, 제가 대답을 끝내기도 전에, “그 정도면 됐어요. 충분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K 백화점 매니저가 “더 안 들어도 되겠어요?” 하고 물으니, “충분해요. 뭘 할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You’re hired, Ellie!”
으응?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약간 농담조로 말하긴 했지만 분명 “채용됐어요”라고 했으니, 아무리 농담이라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겠죠…? 그럼, 진짜 된 건가???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으니 후회 없이 후련한 마음이었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K 백화점의 매니저가 제 경력 정도의 평균 시급을 알려주셨고, 채용 여부는 이메일로 알게 될 거라고 하셨어요. 만나서 즐거웠다고 서로 인사하면서, “책 보여줘서 정말 고마워요. 엘리 씨, 오늘 엘리 씨 자신을 정말 잘 팔았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자 S사의 매니저가 “그럼요~ 준비된 사람이에요.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문 앞에서 만났는데, 나한테 너무 친절하고 상냥하게 인사하더라고요. 그때 알아봤어요. 준비된 사람이구나!”
아니, 이것은…… 인터뷰에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올 때 문 앞에서 인사를 건네 온 매니저에게, 멈춰 서서 큰 소리로 인사를 주고받은 그 상황을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이때 다시 한번 느꼈어요. 인사를 잘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인터뷰에 지각까지 했는데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오늘 인터뷰는 완전히 망했었겠구나…….

희망 급여
다행히 인터뷰는 좋은 분위기에서 끝났고, 지각이라는 치명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아식 책 덕분에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것 같고, 농담처럼 “You’re hired” 라는 말도 들었으니 내심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주말밖에 일을 하지 못하니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었죠. 지각만 안 했더라면 분명 합격할 분위기였는데……. 혼자 자책도 하고, 기대도 하며 그날 밤도 뒤척뒤척 잠들지 못했습니다.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나니 오히려 욕심이 생겨서 ‘되면 정말 좋겠다’는 마음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다음날 오후, “띠링~” 휴대폰의 메시지 알림음이 맑고 경쾌한 사운드로 귀에 꽂히는데, 딱! 감이 왔습니다. 왔구나!!!!!!!!
Congratulations! 다른 문장들은 그저 거들 뿐, 제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건 바로 저 한 단어!!! 무슨 대기업 전문직 취직한 것도 아닌데 이게 그렇게 기쁠 일인가 싶겠지만, 저에겐 정말 의미가 컸답니다. 오랜 전업주부 생활로 사회생활 공백이 컸고, 아이들만 키우며 지내다 보니 자기관리도 못하고, 나이 들면서 중년 여성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외모에 점점 슬퍼지고, 이런 이유로 자신감을 잃었거든요. 그런데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용기를 얻어 도전해 본 일에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게 되니 그 성취감과 뿌듯함은 마음 속에 눌러 담을 수 없을 만큼 흘러 넘쳤답니다.
그리고 오퍼 레터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아니 실제로는 눈에 불을 켜고 제일 먼저 찾은 것은 바로 시급! 어므나!!!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제가 써낸 ‘희망 시급’으로 오퍼를 받았지 뭐예요? 조금 전까지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 넘치던 그 성취감과 뿌듯함은 자본주의가 주는 금융의 기쁨에는 비할 바가 아니더라고요. ㅎㅎㅎ
아니, 그래서 도대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이쯤 되면 밝혀야 되는 거 아니냐고 버럭하신 분 안 계십니까?^^ 제가 지금까지 무슨 대기업 고연봉 전문직 취업 대장정 스토리 버금가게 쓴 것 같아 밝히기가 민망스럽지만, 제목에도 쓴 것처럼 미국 사는 흔한 40대 아줌마의 알바 구하기 스토리이고, 저처럼 미국 와서 아이들만 키우다가 뭐라도 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는 분들에게 일단 도전해 보라는 의미로 쓴 글이니 그냥 오픈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냐면요, KOHL’S 백화점 내의 화장품 편집샵 ‘세포라(SEPHORA)’에서 뷰티 어드바이저로 일하게 됐습니다.^^
저처럼 아이들 좀 키워서 학교 보내고 이제 알바라도 하고 싶은데 망설여지시는 분들 계시면 망설이지 마시고 “에라잇~” 하는 마음으로 꼭 질러보세요. 화이팅~!!!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 정보, 일상생활, 문화 차이, 여행기 등을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이자 <엘리네 미국 유아식> 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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