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길 변호사

 

미국에서 자영업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중 하나가 건물주와의 임대계약서, 즉 리스 (Lease)이다. 한국에서의 자영업자 리스는 관행상 매우 간단하다. 많은 부분을 문서화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이나 상식에 따른다. 예를 들면, 큰 부분은 건물주가, 소모품은 세입자가 책임지는 식이다. 경계가 모호한 경우에는 반반씩 내거나 아니면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리스는 많은 분들이 이미 경험하셨듯이 상당히 복잡하다. 일단 영문으로 된 데다 생소한 표현과 법률용어도 많고, 랜드로드에 따라서는 첨부서류까지 포함해 계약서가 약 70페이지에 달하는 경우도 있어 일반인이 읽고 이해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리스 첫 장에 나오는 자신의 개인정보와 리스 기간, 렌트비 정도만 확인하고 싸인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리스는 그 특성상 랜드로드가 자신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들을 담아 세입자에게 싸인을 요구하는 형태이다. 어떤 조항은 일반적인 해석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어 세입자가 자신이 이해한대로 믿고 싸인했다가 낭패를 보게 되는가 하면, 심지어 랜드로드에게 이메일을 보내 내가 원하는 답신을 받았다 해도, 리스 조항에는 싸인하기 이전의 모든 의사소통은 무효화되며 이 계약서에 기록된 내용만 유효하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건물주의 말만 믿고 싸인을 해서도 안 된다. 더 교묘한 경우에는 계약서 앞 부분에서는 A라고 해 놓고, 뒤에 가면 A의 효력을 제한하는 예외 조항을 넣어 A조항 자체를 쓸모 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 사람들도 리스는 반드시 변호사에게 검토를 의뢰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반면 우리 한인들은 한국에서 은행 업무를 보러 가거나 핸드폰을 개통하러 가서 담당자가 싸인하라는 곳에 무조건 싸인을 해 주던 관행이 있어서 그런지, 랜드로드가 보내 온 리스의 내용이 자신에게 얼마나 불리한 줄도 모른 채 랜드로드가 싸인하라고 하는 곳에 싸인을 하고는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하며 애써 불안감을 묻어 버린다. 그러나 리스라는 것은 목적 자체가 그 ‘설마’ 하는 경우에 랜드로드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면 리스는 거의 온전히 랜드로드의 방패막이가 되고, 세입자는 자기도 모르던 조항 때문에 억울하게 손해를 감수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 우리 한인들이 넘어서야 할 심리적 장벽이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관계를 한국식 ‘갑을 관계’로 보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이른바 ‘갑질’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물론 미국에서도 개인 소유의 작은 건물일 경우 건물주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랜드로드가 회사의 형태라면, 세입자에게 리스 조건에 대해 검토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수정 요청에도 합리적으로 응한다. 그 이유는 대형 랜드로드 회사일수록 정통 ‘미국식’으로 비지니스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 회사에서 리스를 만들고 검토하는 일은 법무팀 변호사가 담당한다. 회사 변호사가 세입자 변호사와의 협상을 통해 리스를 만들고 수정해 간다. 따라서 랜드로드가 세입자에게 리스를 검토하라고 보낼 때는 당연히 세입자의 변호사가 그 리스를 검토하고 회사 변호사에게 수정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므로 랜드로드가 보낸 리스에 모호한 조항이 있다면 계약의 동등한 주체로서 얼마든지 수정을 요청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개인이 직접 그 일을 하기에는 역시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다.

한인 변호사로서 나는 그동안 여러 건의 크고 작은 회사들의 리스를 검토해 왔는데, 많은 경우가 그 ‘설마’했던 문제가 발생한 케이스였고, 리스들을 검토해 본 결과 세입자가 그 내용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대로 싸인하지 않았을 계약서들이었다. 따라서 새로 임대계약서에 싸인을 앞둔 분이라면 반드시 변호사에게 먼저 리스 검토를 의뢰하시기를 강력히 권해 드리는 바이다. 적은 비용으로 앞으로 있을 큰 걱정과 손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 사이에 당연한 관행으로 정착되어서 더 이상 불공정한 리스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보는 분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 호에서는 비즈니스 오너로서 리스에 싸인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지 짚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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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길 법학박사(SJD, 금융법전공), 변호사(미국 North Carol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