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관심과 사랑을 원할 때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자. 심리게임으로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한다. ©marriage.com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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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문제인가?
K씨는 남편의 침묵이 참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과묵하고 진득해 보였던 남자가 살아가면서 지루하고 무관심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어쩌면 변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속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이 일터에서 들어오면 혼자 방에 들어가 컴퓨터 화면을 보며 지친 심신을 달래는 듯했다. 피곤해서 그러려니 싶어 배려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남편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도 반응이 시큰둥한 남편 얼굴을 보면 맥이 빠졌다. 자신이 하루 종일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육아에 얼마나 지쳤는지, 때로는 마음이 얼마나 싱숭생숭한지 이야기해도 도대체 관심이 없는 듯 보이는 남편이 점점 미워지기 시작했다. 예전엔 과묵하게 보이던 남편이 이제는 사랑이 없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느껴졌다.
K씨는 자신이 하는 말을 그저 무심하게 듣고 넘기는 남편의 주의를 끌기 위해 더 강한 어조가 필요했다. 그래서 K씨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남편에 대한 비난도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럴수록 남편은 K씨와의 대화를 점점 더 피하게 되었다. 매사 부정적으로 투덜대는 아내의 말이 점점 더 부담스러웠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원하는 대로 해줘도 여전히 불만스러운 아내를 보며 차라리 그냥 말을 말자 싶었다.
하지만 K씨는 어떤 점을 건드리면 과묵한 남편이 발끈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피곤하다고 늘어져 있는 남편에게 차고 청소 좀 하라고 시키거나, 집안에서 남편이 얼마나 형편없는 남편이자 아빠인지를 일깨워주면 되었다. K씨에게는 남편이 침묵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화를 내는 것이 나았다.

관심 받고 싶어
아이나 어른이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상대방의 관심과 인정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서서히 찾아오는 죽음’으로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이 인정을 받기 위해 치열하다. 심리학자 에릭 번이 말한 인정(stroke)의 욕구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나의 욕구와 필요를 드러냈을 때 돌아올지도 모르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건강한 인간관계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얻어낸다. 지금 나 좀 봐달라고, 당신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신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간관계가 늘 그렇게 건강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힘드니 잠깐만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 달라는 솔직 담백한 부탁보다는,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자극해서 관심과 주의를 끈다.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냐는 비난으로 대신한다. 이른바 심리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인정의 할당치
<나는 왜 네가 힘들까>라는 책의 저자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심리게임을 통해 일부러 싸우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인정의 할당치’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트 계산대에서 잔돈을 찾으며 시간을 끄는 짜증나는 아주머니는 혼자 사는 텅 빈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 말을 안 듣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는 야단 맞는 것 외에 어떻게 해야 선생님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를 수도 있다. 프티콜랭에 따르면, 주로 남에게 무시당하거나 관심에 목마른 사람들이 심리게임을 벌인다고 한다. 정서적으로 박탈감과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차선책이라는 것이다.
건강한 인간관계와 심리게임에는 차이가 있다. 건강한 사람은 위안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위안을 받는 법을 안다. 그런데 심리게임은 그 요구가 간접적이다. 자신의 진짜 의도를 숨기고 사람을 조종하는 양상을 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빙 돌려서 말한다. 그래서 엉뚱한 일에 화를 내고 걸고 넘어진다. 그런데 자신의 요구가 이루어져도 이번엔 자기가 거절한다. 위로와 관심을 있는 그대로 받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편이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아내의 경우, 남편이 차고를 깨끗이 청소해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아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차고가 깨끗해져도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성숙한 마인드
가만히 있는 사람을 찔러보고 상대가 화를 내면 비로소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 옆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리게임에 휘말리게 된다. 정신차려보면 싸우고 있다. 마치 마음에 드는 여자 아이가 있을 때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는 소년 같은 행동에 말려드는 것이다.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는 불만을 제기하고 말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것이 조직을 발전시키는 건전한 비판인 경우도 있다. 문제는 그 일이 해결되어도 불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늘 부족함을 찾아내고 불만이 주기적으로 계속 반복된다.
심리게임의 중심에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내가 관심과 인정을 원한다고 솔직하게 말했을 때 거절과 무시를 당하리라는 두려움이다. 그런데 심리게임은 우리를 소진시키고,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는 관심과 인정 대신 거절과 상처만 돌려받게 된다. 소년이 자라서 성숙해지면 ‘네가 좋다’고 말하고 잘해주는 것이 그가 원하는 관심과 애정을 얻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인정과 사랑의 가장 확실한 원천은 하나님이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심리게임이 존재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말하며 기도하는 대신 불평을 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난할 누군가를 찾고 투덜댔다. 구하는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면 받으리라고 약속하신 주님의 평강을 믿지 못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인정과 사랑을 가슴 벅차도록 부으실 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도 엉뚱한 사람들을 붙들고 관심과 애정을 구하며 심리게임을 벌이고 있다. 용기있게 그냥 말하면 될 것을, 엄한 데 가서 힘들게 삽질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