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미워! 하지만 날 떠나지는 마." 경계성 성격장애의 이중적 심리 ©getty Images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mail protected]

상처받기 쉬운 사람
살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또 이별을 경험한다. 그 이별의 이유가 새로운 직장으로의 이직이나 상급 학교 진학 등 좋은 일일 때도 있지만, 힘든 인간관계 때문일 때도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는 그 경계가 모호하고, 양쪽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신이 피해자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교회는 만남과 은혜를 체험하는 하나님의 집이지만, 우리 모두의 부족함으로 인해 때로는 상실과 분노를 경험하는 아픔의 장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이민 교회는 다른 곳에서 수용과 인정, 사랑을 경험하기 힘든 외로운 사람들이 낯선 이국 땅에서 새로운 가족을 찾고 싶어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 서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싸우기도 한다. 우리의 가족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이민 교회의 도전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한인들은 미국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상담소를 찾는 문화가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마음이 아플 때 상담소 대신 교회를 찾는다. 그런데 마음의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해 대부분의 교회는 무방비 상태이다. 복음을 향한 열정과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려 애쓰지만, 어느새 문제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공동체 내에서 편이 갈라지고, 누군가가 타겟이 되어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상황을 개선시켜 보려 애를 쓰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모습을 보며 진이 빠지고,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생각하며 좌절한다. 그리고 그 상처를 당사자와 공동체가 고스란히 껴안고 아파한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좀 더 참았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그 일을 곱씹으며 후회하기도 한다.

성격장애
그런데 우리가 조금 더 주의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이 힘든 사람의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가벼운 문제 아래 뿌리 깊은 상처와 고질적인 증상들이 숨어 있기도 하다. 그 중의 하나가 성격장애이다.
예를 들어, 경계성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지식이 필요하다. 언뜻 보기에는 정말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기복이 심하고 주위 사람들과 관계가 깨지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늘 조심하게 된다. 또한 이런 일이 있다가도 가라앉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초연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도 진단하기 까다로워 하는 유형이다. 경계성 성격장애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고 깊기 때문이다.

경계성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란 그 정도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신경증’과, 현실적 판단력에 현저한 장애가 있는 ‘정신증’의 경계에 있는 성격장애라는 뜻이다.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런 전제가 있다.

1. 이 위험한 세상에 나는 아무 의지할 사람도 없이 혼자 버려졌다.

2. 내가 의지하고 싶은 사람에게 보호를 요청하면 그 사람은 나를 공격하고 조롱할 것이다.

3. 하지만 내 모든 것을 받아주고 의지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4. 나는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겼다. (분노) 그러니 너는 나에게 당연히 잘해주어야 한다.

5. 네가 나를 떠나 버린다면 세상만사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들이 이런 성격장애를 갖게 된 원인은 어린시절 부모나 보호자에게서 보호와 학대가 반복되는 불안한 환경에서 자라며 자신이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내면화되었고, 여기에 강한 보호욕구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여린 마음을 감추기 위해 사회적 가면이 발달해 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자신을 나쁘게 보거나 자신을 떠나는 것에 대해 죽음과 같은 고통을 느끼며 심한 공격성을 보인다.

미국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특성이 5가지 이상 나타날 때 경계성 성격장애 진단이 내려진다.

1. 버림받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과 심한 질투심이 있다. 상대가 다른 사람과 친한 것을 참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거나 떠날까봐 두려워한다. 자신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적으로 간주해 버린다.

2. 시각이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있다(Black or White). 사건을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인간관계에서 이상화와 평가절하가 교대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목회자를 처음에는 천사로 생각했다가 한 순간에 악마라고 여긴다. 상담자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권위자라고 찬사를 보내다가 한순간에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3. 충동적인 자기 파괴의 행동을 한다. 사치, 낭비, 성적 문란, 약물 남용, 도벽, 무모한 운전, 폭식 등의 중독 증세가 있다.

4. 평소에 기분이 과민, 불안, 우울로 쉽게 변한다. 감정기복이 매우 심하고, 이것이 몇 시간에서 며칠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5. 부적절하게 심한 분노를 느끼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폭발한다. 갑자기 전화를 해서 상대방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퍼부어 대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심하게 화낼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6. 주위 사람들에게 자살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자살 시도나 자해 행위를 한다. 실제로 자살을 하려는 의도는 없으나 이를 통해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을 유도한다.

7. 지속적이고 심한 자기 정체성의 혼란이 있다. 자신의 이미지, 성 정체성, 목적의식, 직업 선택, 가치 기준, 자신이 원하는 것 등에 대한 혼란이 있다.

8. 만성적인 공허감이나 무료함을 느낀다. 인생에 대한 허무감에 지속적으로 힘들어 한다.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지혜로운 사랑
이들을 돕는 방법은 한마디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들과 언쟁을 하거나 잘못을 깨우쳐 주려고 시도하면 이들은 자신이 거부당했다는 공포심과 혼란을 느끼고 더욱 폭력적으로 변한다.
크리스천 리더로서, 목회자로서, 왜 그 한 사람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까 괴로워하며 자책하고 회개할 때도 있겠지만, 상대를 잘 이해하고 현명하게 도와주기 위해서는 적절한 임상적 사례와 지식이 필요하다. 그 사람과 우리 모두를 위해 상황을 지혜롭게 분별하기 위해서는 대하기 힘든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확한 이해가 지혜로운 사랑과 돌봄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