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고 감정이 북받칠 때 자신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가 감정을 발산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뉴스핌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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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억제보다 표출
우리는 분노를 뿌리째 뽑아내고 아예 화가 나지 않는 상태로 살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불교에서 수행을 할 때 아예 속세를 떠나 평생 자신을 비워내는 훈련을 하는 이유도 우리의 평정심을 깨뜨리고 마음을 얽매이게 하는 감정들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노애락의 감정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허락하신 것이다. 이것을 없애려하거나 억누르면 엉뚱한 때에 뜻밖의 모양과 강도로 터져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분노의 감정을 다룰 때는 분노를 어떻게 없앨 것인지 생각하기보다는, 분노를 어떻게 잘 표출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편이 더 현명한 일이다. 마치 결혼 생활을 막 시작한 신혼 부부가 둘 사이에서 갈등을 어떻게 없앨 것인지 고민하기보다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는 편이 더 지혜로운 것과 마찬가지다.

건강한 분노 표현
그렇다면 우리는 분노를 어떻게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분노는 나의 힘>의 저자 아니타 팀페는 ‘자신의 감정 표현이 안전한 범위 내에서 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감정을 허용하고 표현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정말로 화가 났을 때에는 자신의 분노를 안전하게 발산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찾도록 권한다. 예를 들면, 차 안이나 자신의 방, 혹은 바닷가 같은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를 찾아가 마음껏 소리를 지르거나, 믿을 만한 친구를 찾아가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는 종이에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있는 대로 쏟아내거나 그림이나 노래, 춤 등으로 감정을 발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분노 조절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가 마음 속의 분노를 모두 발산할 수 있도록 쿠션을 때리거나 신문지를 찢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겉모습은 얌전하고 온화해 보이는데 의외로 격한 운동을 즐기거나 샌드백을 두드리는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마음속에 쌓인 게 있을 때 등산을 하며 산꼭대기에 올라가 숲으로 돌을 던진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또, 한 친구의 그림이 떠오른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여인의 모습이었는데 그 여인의 눈 주위에 유독 어둡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친구는 당시 심한 산후우울증과 부부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갓난아이 때문에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그녀에게는 그림이 자신의 감정들을 쏟아내는 탈출구가 되어주었던 셈이다.

분노 조절
이처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격한 분노의 감정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발산하는 시간을 가지면 그 격렬한 감정이 우리 몸 밖으로 빠져나가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와 주변을 파괴하고 부숴버릴 것 같던 그 감정들이 어느새 견딜 만해지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 이제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 감정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내가 분노하는 상황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다른 진짜 감정들과 맞닿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미움, 슬픔, 두려움, 불안감, 죄책감, 시기심 등 여러 색깔의 감정과 느낌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이 단계까지 갈 수 있다면 나를 분노하게 한 대상이나 상황을 이성적으로 다룰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이나 자신을 해하거나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고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가 폭발할 때 친한 친구를 만나 한바탕 시원하게 속풀이를 하고 나면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며 당장 끝장을 내겠다고 벼르던 마음도 어느새 조금 누그러지고, 내가 잘못한 부분도 슬슬 생각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오늘 저녁엔 식구들에게 뭘 해 먹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분노 해소
이처럼 분노를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나 대상이 있는 사람들은 감정을 건강하게 표출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크리스천들은 이미 분노를 발산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하고 안전한 통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가장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인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편의 많은 구절들은 상처받은 이의 분노와 불안함, 억울함으로 시작된다. 다윗도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시31:11)”,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시 31:13)”라고 토로한다. 그는 하나님께 마음껏 일러바친다.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해치려 할 때마다 억울하고 절망스러운 심정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쏟아낸다. 그러나 시편은 절망과 분노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격한 감정을 토로한 후에는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속죄의 말을 아뢰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기대며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으로 마무리한다.

다윗은 음악과 기도라는 아주 좋은 분노 해소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렇게 건강한 분노 해소 방법을 잘 실천한 덕분에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었다. 호시탐탐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적들의 공격 속에서도 그는 상처받았다고 주저앉지 않았다. 절망과 분노로 심령이 상하고 쓴뿌리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복수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찬양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우리 안에 쌓여 있는 감정의 쓰레기들을 적절한 처리장에 쏟아내 버릴 때 우리는 다시 좋은 것으로 자신을 채울 수 있다. 차 안이든, 방이든, 산이든, 상담소든, 친한 친구든, 우리에게는 안전하게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억눌린 분노가 폭발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처리장에서 건강하게 잘 처리된 다음 꽤 괜찮은 재활용품이 되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