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던 대로 해!"라는 말에 기죽지 말자. 우리는 매 순간 변하고 있다. ©MBC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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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해의 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런 것 중 하나가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물론 과학자들은 혈액형 성격설이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가설이라고 말하지만, 소위 ‘대중심리학’의 흐름에서는 여전히 나름의 효용이 있는 것 같다. A형은 이렇고, B형은 저렇고, O형은 그렇다는 식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스스로 위안을 얻기도 하고, 타인의 성격을 이해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도 사람들의 특징을 유형별로 분류하려는 노력을 계속 해왔다. 최근 다시 유행하는 MBTI를 비롯해, MMPI, TCI, HTP, KFD, SCT 등 다양한 도구를 통해 사람들의 성향을 이해하고자 한다. 지난 호에 소개한 해리엇 러너(Harriet Lerner) 박사의 5가지 분노 조절 스타일 역시 자신이 분노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조절하는지 깨닫도록 돕는 도구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람들의 유형을 파악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인간 이해의 틀을 갖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히 서로의 성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에서만 그친다면, 건강하지 못한 감정 패턴을 계속 반복하며 살아가게 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나의 상처와 분노의 뿌리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 이제는 나의 패턴을 어떻게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패턴으로 바꿔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고착된 패턴
C는 참 반듯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 신뢰를 주는 그의 태도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잘 따랐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는 교회에서도 중요한 역할들을 맡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C는 한 사람씩 관계를 단절하기 시작했다. 이틀이 멀다하고 자주 만나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더 이상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인사도 받지 않았다. 문제는 C가 왜 화가 났는지,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지 상대방은 도통 영문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러너 박사의 구분에 따르면 C는 거리두기형(distance)에 해당한다. 감정이 격해지거나 화 나는 일이 생기면, 그 감정에 직면해 해결하기보다는 관계를 끝내 버리는 유형이다.

어린 시절 C에게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한바탕 전쟁을 의미했다.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화를 폭발하며 욕을 하던 아버지의 감정은 늘 예측불가였다. 하루하루 지뢰밭을 걷는 듯 마음이 늘 조마조마했다. 어린 C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 눈에 띄지 않도록 숨소리도 안 내고 가만히 숨어 있는 것이었다. 이런 패턴이 어린 C에게는 최선의 생존 전략이었을지라도, 현재의 인간관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겁에 질린 어린 C의 행동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C는 이 패턴 때문에 점점 더 괴팍하고 외로운 사람이 되어갔다.
성인이 된 지금,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를 계속 원망해봤자 남는 것은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쓴 뿌리뿐이었다. 현재 자신의 패턴을 깨닫고 새로운 패턴으로 바꿔 나가지 않는다면, 처음에는 친해졌다가 좀 지나면 얼굴조차 보지 않는 패턴을 평생 반복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는 자신만 외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 역시 아프게 하는 가시가 된다.

변화에 따르는 저항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변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일상의 작은 습관 하나를 바꾸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내가 어렵게 마음을 먹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때 주위에서, 뭐 잘못 먹었냐,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하던 대로 해라, 뭐 바라는 거 있냐 등등 놀리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착된 패턴이 하루 아침에 쉽게 바뀌겠냐며 의심과 불신이 가득한 눈빛을 보낸다. 주위의 이런 반응에 새싹처럼 여린 나의 변화 의지는 안타깝게도 쉽게 꺾여 버린다.
하지만 기억하자. 모든 변화에는 저항이 따른다. 변화의 방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 없이 현재 상태를 지속하고 싶은 본능의 관성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에게 고착된 부정적인 패턴을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할 때, 나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도 그런 변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디 선가 보고 들은 대로 그냥 따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변화
현재의 패턴이 내 삶에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나와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그래서 내 인생이 행복하게 굴러가지 않는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제 오래된 타이어를 새 타이어로 교체할 때가 아닌지 말이다.
이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타이어를 교체할 때 네 바퀴를 동시에 다 바꾸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새 사람을 입고 거듭나듯이 자신의 부정적인 성격을 통째로 바꿔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한다면 그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감정뇌 속의 편도체에 빨간불이 들어오며 비상사태가 선포된다. 그러면 우리의 감정뇌는 외부의 변화에 강하게 저항하게 된다. 우리 뇌는 극적인 변화를 생존의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편도체에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을 만큼 작고 사소한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변화에 따르는 저항을 줄이는 현명한 방법이다.
나의 부정적인 패턴을 떠올리며 아주 작은 것 한 가지를 생각해 보라. 평소에 말도 잘 섞지 않는 사람을 갑자기 뜨겁게 사랑하고 나의 것을 다 내어주라고 하면 그냥 포기해 버리겠지만, 마주칠 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는 정도는 조만간 시도해볼 수 있는 작은 변화가 될 수 있다.
화가 날 때 당장 달려가 상대방을 몰아붙이며 직성이 풀릴 때까지 따지는 패턴이라면, 한 발자국만 물러나 하루 이틀 정도 먼저 기도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떤가. 또한 갈등을 회피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감에 빠져 지내고 있다면, 오늘은 일어나 창문을 열고 친구에게 전화나 문자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다 해버려야 안심이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한 가지만 부탁하고 맡겨보는 변화를 시도해보자.
이처럼 나의 행동 패턴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면, 이제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긍정적인 방향을 잘 잡고 느리지만 한 걸음씩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정말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선언하셨다는 것이다(고후 5:17).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결론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주어진 변화를 하루하루 살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