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열정과 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과 지혜가 필요하다. ©Psychology Today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mail protected]

결혼의 현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것은 그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신데렐라가 딱 한 번 같이 춤을 추고 사랑에 빠진 왕자님과 결혼하는 데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그저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은 그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한 이후, 서로의 배경 차이, 문화 차이, 성격 차이, 왕비로서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부담 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았을지, 그녀가 과연 행복했을지 뒷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결혼에 골인하면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로맨틱한 감정에 이끌려 결혼을 하고 나면 이어서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고, 아기 기저귀도 갈아야 하고, 잔디도 깎아야 하고, 매달 날아오는 청구서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사역의 현실
구원의 기쁨과 은혜에 충만해 사역에 헌신하고 시작할 때는 신난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가서 커피를 내리는 일도, 교회 쓰레기통을 치우는 일도 그저 감사하고 은혜롭다. 하지만 그 사역을 계속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 점점 김 빠진 콜라처럼 느껴지면서 아무 감정도 없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그 거룩하고 멋진 순간 뒤에는 훨씬 많은 시간 동안 치뤄야 하는 값이 있다. 잠못 이루는 밤들, 끝도 없이 계속 되어야 하는 독서, 버릇이 되지 않는 새벽기도, 이어지는 불만들을 해결해야 하는 부담감, 내가 과연 좋은 리더인가 하는 의문과 자괴감, 자책감 등등 사역의 고단함과 말 못할 아픔들이 숨어 있다.

직장의 현실
상담소를 찾은 G양은 지난 6개월 동안 직장을 세 번이나 옮겼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옷가게에 매니저로 취직해서 처음에는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모두에게 호감을 샀다. 일을 빨리 배우는 순발력으로 사람들을 감탄시키고 칭찬을 받았다. 자신이 얼마나 빨리 인정받았는지, 그것이 얼마나 빨리 승진으로 이어질지 생각하면 가슴이 부풀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날마다 끝도 없이 옷을 접어야 하고, 쉬는 날에도 갑자기 불려 나가서 아픈 사람들의 빈 자리를 대신해야 하고, 진상 부리는 손님들과 불공평한 슈퍼바이저의 태도를 보면서 열정과 기대로 부풀었던 가슴은 점점 실망으로 변해갔다. 그러다 그 일을 계속 해야 할 이유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어 옷가게를 그만두었다.
이런 일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삶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성격장애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더 견디기 힘든 경험으로 다가온다. 좋을 때는 너무 좋지만 힘들 때는 극단적으로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삶이란 늘 이상적이고 완벽한 순간의 연속이어야 하는데, 한 순간의 짧은 행복 뒤에 숨겨진 끝없는 수고와 지루한 일상이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신나고 열정에 찬 순간이 지나가면 모든 것이 다 나쁘게만 느껴진다.

삶의 균형
어떻게 해야 시작한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신나는 순간들과 그 뒤에 따라오는 지루한 수고들을 함께 감당할 수 있을까? 부부로 함께 살면서 은혼식(25주년), 금혼식(50주년)의 축복을 누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3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역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마샤 리네한(Marsha M. Linehan) 박사는 그 비결의 하나로 ‘균형의 원리’를 강조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Wants)과 해야 하는 것(Shoulds) 사이의 균형이 건강하고 지속적인 삶의 요건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열정과 의무 사이의 균형이다. 우리가 하는 수많은 일들 중 어떤 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고, 어떤 것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인지 가늠해 보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그 대가가 따른다. 즉흥적으로 장기간 여행을 떠나 은행 잔고가 바닥나도록 돈을 쓴다면, 제때 내지 못한 방세와 전기세 등에 대해 벌금을 물어야 한다. 혹은 집을 잃고 누군가에게 얹혀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해야 할 일들에만 둘러싸여 산다면 분노, 우울감, 피로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매일 기계적으로 출근해서 일을 하고, 끝도 없는 집안일을 반복하고, 매일 아이들 레슨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삶을 계속 살아간다면 삶이 지겹고 지칠 수밖에 없다. 나를 이런 삶에 묶어 놓은 자신과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은혜와 의무 사이
건강한 삶에 필요한 균형은 누가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열정을 느끼는 일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다. 때로는 나의 열정과 의무가 만나는 행복한 순간도 있다. 요리하기를 즐기는 엄마가 식사 준비의 의무를 기쁘게 감당할 때처럼 말이다. 또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선생님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하면 훨씬 낫다. 힘든 일을 하고 나면 나에게 작은 보상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달콤한 초콜릿 아이스크림, 한 권의 책과 커피 한 잔, 30분의 자유시간 등 스스로를 배려하는 소소한 일들이 내가 해야 하는 일들에서 오는 피로감을 덜어주기에 충분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도 주시고 의무도 주신다. 우리를 아무 대가 없이 구원하셨지만, 주님의 자녀답게 빛으로 살라고 격려하신다. 우리에게 마음의 소원과 열정도 주시지만 인내와 도전도 주신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셨지만 또한 쉬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하루만 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길게 쓰임 받으려면 내 삶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 조금 더 지혜로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