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구식이긴 하지만
편지는 역시 연애편지가 제일이다
수동이든 전동이든
편리한 타자기론 한숨이 배지 않아
쓸 수 없는 편지
그래서 꼭 쥔 연필 한자루
입맞추듯 때때로 침을 묻혀가면서
글씨야 예뻐져라 또박또박
또박또박이 제깍제깍으로 바뀌어
밤을 새우는 편지
답장은 없다 다만 창밖에
스산한 찬바람이 낙엽을 굴린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그래야만 애가 타서 또 쓰는 편지
그것은 타자쳐서 사진식자로 인쇄하는
홍보용 인사장이 아니다
일대 일이다
이쪽도 혼자 저쪽도 혼자
실은 저쪽한테 묻지도 않고 이쪽이 혼자
또박또박 제깍제깍 밤을 새우는
지금도 창밖에는
답장없는 스산한 찬바람
낙엽이 굴고 있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그래야만 애가 타서 또 쓸밖에 없는
편지는 역시 연애편지가 제일이다.

▶ 이형기 (1933~2005) 시인. 경남 사천 출생. 1949년 <문예>로 등단. 시집 『적막강산』, 『돌베개의 시』, 『절벽』, 『존재하지 않는 나무』등이 있음. 시 <낙화>가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

▶ 시 해설
메마른 가슴에 물기 오르게 하고 두근거리게 하는 시입니다. 아름답던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 시입니다.
밤을 새워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구겨 던지던 편지, 오직 한 사람을 향해 오롯이 쏟아 붓던 영혼의 손편지, 저쪽한테 묻지도 않고, 이쪽이 혼자 설레며 밤을 밝히던 편지, 보내도 답장이 없어 애태우며 다시 쓸 수밖에 없었던 연애편지. 편지는 역시 연애편지가 제일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설레던 젊은날이 있었지요?
어찌보면 시인이란, 독자한테 묻지도 않고 저 혼자 또박또박 제깍제깍 밤을 새워 연애편지를 쓰는 사람이 아닐까요?
편리한 타자기로는 한숨이 배지 않아, 연필 한 자루 손에 꼭 쥐고, 입맞추듯 때때로 침을 묻혀가면서, 글씨야 예뻐져라 주문을 외며, 답장 없는 연애편지를 쓰는 시인. 어쩌면 시인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아닐까요?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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