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기간 8년 동안 백발이 급격히 늘었다. ©The Korea Herald, 트럼프 대통령은 퇴임 후 한층 더 젊어진 모습으로 등장했다. ©트럼프 주니어 트윗
오효성
Interbrand Korea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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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단축되는 직업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의 마리우스 구엔젤(Marius Guenzel) 교수는 2021년 3월 연구 논문에서 1,605명의 미국 대기업 및 상장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결과에 따르면, CEO의 스트레스가 늘어날 때 수명이 약 2년 정도 단축되었으며, 불경기에는 노화가 일반인들에 비해 약 1.2년 가량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번 연구에서 구엔젤 교수는 스트레스가 기업 임원들의 장기적인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며 사회적, 개인적 비용 역시 엄청나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었다.
또한 <리얼 에이지(Real Age)>의 저자 마이클 로이즌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미국 역대 대통령의 취임 전과 퇴임 후 건강기록을 조사한 결과, 미국 대통령들은 일반인보다 2배 이상 빨리 노화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역대 대통령들이 막중한 국정 운영 압박을 받으며 동시에 주변의 끊임없는 비판과 견제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이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평균보다 노화가 빨리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연구로, 노스 이스턴 대학교의 로버트 길버트 박사는 미국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리처드 닉슨 대통령까지 사망한 역대 대통령들의 수명을 살펴본 결과, 36명 중 무려 26명(72%)이 평균 수명에도 못 미치고 단명했다고 밝히며 대통령의 직무와 노화 간에 충분한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스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수명 단축 기간과 노화 연수까지 발표된 자료를 보니 놀랍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의 스트레스 관리 능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과중한 스트레스
‘스트레스’ 하면 한국도 만만치 않은 나라들 중 하나다. 지난 2014년 연세대 윤진하 교수가 발표한 직업별 자살률 통계 추이를 보면, 한국의 화이트 칼라 남성 관리자들의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007년 3.7명에서 2012년 44.6명으로 12배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끔 언론에서 어느 기업 임원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무척 놀라곤 했는데, 실제 통계자료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진한다는 것은 소위 ‘별’을 따는 것이요, 길게는 20여년 동안 열심히 일한 보상을 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임원 승진의 영광과 함께 따라오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다. OECD 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기업 임원들의 스트레스 역시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임원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개인, 기업 그리고 사회적 대책은 무엇일까?

리더의 고뇌
그동안 임원들을 위한 비즈니스 코치로 일하면서 그들과 개인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그들 중 어떤 분들은 업무로 인한 중압감이 너무 커서 정신과 약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버텨내고 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기도 했다. 하루하루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고뇌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져 듣는 내내 마음이 안타까웠다.
나도 과거 대표이사로 근무할 때 기업의 인수합병을 진행하며 수십 명의 임직원을 해고해야 되는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한쪽에서는 해당 임직원들에 대한 인식 공격성 제보들이 들어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들에 대한 절박한 구명 요청이 들어왔다. 그 압박감 때문에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해 결국 정신과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이처럼 리더의 역할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결코 간단치 않으며, 이 때문에 스트레스 관리가 비즈니스 코칭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스트레스 관리
임원들은 매일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있다. 따라서 임원들의 정신 건강은 사실 조직의 정신 건강과도 직결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분에 따라 조직의 분위기가 싸~ 하게 돌아가서 직원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봄 햇살처럼 따스하고 밝은 에너지를 조직에 불어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심리상담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지만, 임원들을 위한 지원은 미진한 부분이 많다. 물론 임원들도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주위 평판 때문에 임원들 스스로 그런 기회를 이용하지 못한다. 혹여라도 다음 인사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다른 건강 이슈들처럼 정신 건강 역시 조기에 파악할수록 그 대처가 쉬워진다. 따라서 회사에서는 이제 임원의 정신 건강을 위해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임원들도 개인적 차원에서 자신의 정신 건강에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임원 직급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대개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어느 정도 강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비를 계속 맞으면 결국 옷이 흠뻑 젖을 수밖에 없다.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현재 내가 정신적으로 취약함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내가 나약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오히려 이 사실을 부정하고 회피할 때 더 큰 부작용을 겪게 된다. 용기 있게 현실을 직면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처할 때 정신적 회복력이 증진된다.
조직 차원에서도 임원들의 정신 건강을 개인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조의 울타리가 없는 임원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으로서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가야 할 임원들의 정신 건강 유지를 위해 충분한 휴식과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