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미국 시댁에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에 있는 동안 매운 한국 음식을 못 먹을 걸 생각하니 가기 전부터 속이 느글거리면서 뭔가 매운 걸 챙겨 가야겠다는 생각에 한국 라면 ㄴ구리를 5개 챙겨 갔답니다. 2주 동안 머물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라면을 끓여 먹겠다는 계획이었죠.

그런데 제가 라면을 끓이자 시댁에 놀러 왔던 시누이가 자기도 한번 먹어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과 저, 그리고 시누이와 함께 둘러앉아 라면을 먹었답니다. 라면 속에 들어간 계란이 라면의 메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남편 때문에 계란을 4개씩이나 넣고 끓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주얼은 완전 계란찌개에 라면사리 추가한 것 같은 형상. (남편은 라면에 계란이 사람 수대로 들어가야 한다는 믿음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자기 계란은 꼭 두 개여야 한다고 해서 남편 것 2개, 저와 시누이 것 각각 1개씩, 그렇게 계란 4개가 들어간 거죠.)

어쨌든 시누이에게는 처음 먹어보는 한국 라면 요리인지라, 라면을 그릇에 덜어 스파게티 먹듯 면발을 돌돌 말아 먹는 시누이 표정을 살피며, ‘너무 맵지 않을까? 입맛에 맞을까?’ 걱정을 했더랬죠. 그런데 시누이가 너무 맛있다며 혀를 내밀고 “헤~ 헤~” 매운 기운을 삭이면서 끊어진 라면 부스러기들까지 싹싹 긁어 먹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날 이후, 제가 라면을 끓일 때마다 시누이가 와서 함께 먹더니, 마지막에 하나 남은 라면을 먹을 때는 시아주버님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라면 1개에 계란 5개를 넣고 끓여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답니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시댁을 방문했을 때는 일주일 정도만 머무를 거라 한국 음식 안 먹어도 살겠지 싶어 그냥 갔는데,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이틀째부터 한국 음식 금단 현상이 생겨서 미국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한국 음식이 아른거려 죽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남편과 시댁 근처에 있는 월마트에 갔는데 거기서 ‘ㅅ라면’을 발견한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시댁 근처에서 ㅅ라면을 발견한 게 그렇게 놀라웠던 이유가, 그곳은 아시아인이 정말 없는 곳이었거든요. 제가 남편과 걸어가면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고, 심지어 시댁 식구들과 볼링장에 갔는데 사람들이 무심결에 저희 쪽을 쳐다보다가 아시아인인 제가 있는 걸 보고 놀래서 다시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짓곤 했죠. 게다가 월마트에서 계산할 때, 캐셔가 하는 말이 자기가 태어나서 실제로 처음 만나본 아시아인이 저라고까지;; 아무튼 동양인이 없는 그곳에서 아시아 음식은 기대도 안 했는데, 그곳 월마트에서 ㅅ라면을 발견했으니 제 눈에는 ㅅ라면이 있던 섹션이 라면계의 금광, 또는 노다지로 빛이 나는 것을 느꼈답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ㅅ라면 5개를 사 들고 룰루랄라 시댁에 가서 라면을 끓였답니다. (이미 한국 라면 끓인다는 소식에 시누이는 시댁을 향해 오고 있던 중~)

그런데 그전까지 한국 라면에 관심도 없던 시아버지께서, “내가 먹을 라면도 있는 거냐?” 하시길래 “당연하죠. 같이 먹어요.” 하며 ㅅ라면이 담긴 큰 솥을 식탁 한가운데 두고, 계란찌개에 라면사리 비주얼의 신라면 배급을 시작했습니다.

라면을 드시기 시작하던 시아버님의 벗겨진 머리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하더니 심지어는 눈물 콧물까지 흘리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멈추지 않으시고 한번 더 저에게 리필을 받아서 드시고는 마지막에 솥 바닥에 깔려 있는 국물까지 국자로 박박 긁어 한 국자를 기어이 만드시더니, 그것마저 다 드셔 버리는 겁니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면서 드셨건만 얼굴은 이미 100미터 달 리기를 한 것처럼 땀과 눈물과 콧 물범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맛있었다며 고맙다고 하시더라고 요. 그리고선 시아버님이 갑자기 쓰레기통을 막 뒤적거리시는 겁니 다!?!?!? “아버님 왜 그러세요?” 했 더니, “라면 포장지를 보관해 둬야 지. 나 혼자 월마트 가서 이 라면을 살 수 있지 않겠니?” 하시며 쓰레기 통에 버려진 꾸깃꾸깃해진 라면 포 장지를 찾아서 곱게 펴시더군요. 사 나이 울리는 ㅅ라면이라더니, 미국 인 시아버님도 울려버리다 못해, 쓰 레기통까지 뒤지게 만드는 자랑스 런 한국의 매운맛!!! 한국에 가면 제 대로 된 원조 ㅅ라면을 사서 보내 드리려고요. (미국에 판매되는 ㅅ신 라면은 미주용으로, 한국 라면에 비 하면 별로 맵지가 않답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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