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옆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붙어 있는 미국 아파트 구조 ©스마일 엘리

아파트 층간 소음
제가 미국 아파트의 층간 소음을 경험한 건 예전에 모제스 레이크에 살 때였는데요, 저희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2층에 사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어요. 특히나 토들러 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은 종종걸음으로 걷기 때문에 아랫집에 안 들릴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발 달린 아이를 묶어둘 수도 없고, 걸을 때마다 주의를 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아파트는 무.조.건 1층으로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입주한지 두 달 정도 지나 윗층에 제제 또래의 여자 아이가 있는 가정이 이사를 왔는데, 우와! 그 소음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습니다. 위층에서 다다다다다다다~ 뛰는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어른이 그냥 걷는데도 쿵쿵쿵쿵, 무슨 거인이 억하심정으로 바닥을 찍으며 걷는 소리 같았어요. 그리고 곧 깨달았죠. 이게 바로 그 층간 소음이구나!!!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거슬리고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것도 마음 먹기 나름인지 ‘어차피 우리는 6개월만 살고 이사갈 거니까 조금만 참자~’ 하면서 견뎠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좀 익숙해져서 위에서 다다다다~ 하면 애가 뛰는구나, 쿵쿵쿵쿵 하면 아빠가 걷는구나, 하며 그러려니 하는 경지에 도달했어요. 심지어 쪼르르르~ 한 후, 쏴아~ 하는 소리가 들리면 ‘오줌 소리 한번 세차구나! 나라를 다스려도 되겠어~’ 하는 여유까지 생겼죠.^^;;

그러다 저희가 시애틀 근교로 이사를 하면서 새 집을 짓는 동안 다시 아파트에서 살게 됐어요. 이번에도 무.조.건. 1층을 원했으나 코로나 시국이라 그런지 저희가 입주할 시점에 딱 비어 있는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층 아파트에 입주해야만 했답니다. 1년만에 다시 경험하게 된 아파트 생활이라 저희 아이들이 층간 소음의 원인이 될까봐 조금 뛰기라도 하면 주의를 주고, 제제의 종종걸음을 단속하느라 스트레스가 이런 스트레스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복병은 우리집 아이들이 아니라 윗집 3층이었어요. 윗집에는 어린 아이들이 없어서 우다다다~ 하는 소리는 없는데, 그냥 걷기만 해도 쿵!쿵!쿵!쿵! 예전 위층 아저씨의 걸음걸이는 양반이었구나 싶더라고요. 위층의 누군가가 걸어다니면 동선이 정확히 파악될 정도였어요.

새벽에 세탁기 돌리는 윗집
그런데 윗집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1도 없더라고요. 저희 아파트는 발코니에서 숯불 그릴 사용 금지인데, 윗집은 버젓이 숯불 그릴에 고기를 구워 먹고 그 재가 저희집 발코니 의자에 고스란히 내려 앉았어요. 게다가 밤 12시가 넘은 새벽에 세탁기를 돌리는 일이 일주일에 두세 번은 되더라고요. 새벽에 잠도 안 자는지 서너시에도 쿵쿵쿵쿵~!
그러나 이번에도 저에게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카드가 있었어요. ‘우리는 8개월만 살고 이사갈 거니까 참자~ 참자~ 참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도 아랫층 사람들에게 소음일 수 있는데 그분들은 아무 컴플레인을 하지 않으니 우리도 좀 더 너그러워지자!!!’ 하면서 참았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자려고 불 끄고 누우면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쿵쿵 걷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잘 못 잔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밤 10시 이후에는 세탁기 사용을 자제하도록 증거를 수집해서 오피스에 얘기를 해야겠다 싶더군요. 또 하나의 걱정은, 남들 다 자는 밤 12시에 세탁기를 돌리면 소리가 워낙 요란해서 저희집뿐만 아니라 저희 옆집이나 아랫집에서도 벽을 타고 들릴 텐데, 그러면 혹시나 제가 오해를 받을까봐 걱정이 돼서 세탁기 소리가 들릴 때 영상을 찍어두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세탁기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릴 때마다 세탁기 소음을 영상으로 녹화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어젯밤이었어요.

밤 10시 40분쯤 세탁기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세탁기가 화장실에 있기 때문에 우리집 화장실에서는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리거든요. 화장실에 갔다가 그 소리를 듣고, ‘오늘은 웬일로 빨래를 일찍 하는구나~’ 하며 자려고 누웠습니다. 눈을 감고 자려고 노력했지만, 아시다시피 그런 상황에서는 소음이 더 크게 들리잖아요. 그래서 ‘내가 잠을 못 자서 이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거야…….’ 하며 저에게 최면을 걸었죠.

그런데 어제는 유난히 세탁기 소리가 크더라고요. 마치 제 머리 위 천장에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여러분, 세탁기에서 세탁물이 한쪽으로 쏠리면 균형이 안 맞아서 탕 탕 탕 소리나면서 돌아가는 거 아시죠? 그런 소리가 탕 탕 탕 하면서 너무 크게 들리니까 이것도 증거로 남겨야겠다 싶어서 이불을 박차고 나와, 폰을 들고 화장실로 달려 갔습니다.

어? 그런데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는 여전히 들리는데 그 탕탕탕탕 하는 소리가 화장실로 오니까 오히려 줄어들더라고요. 그래서 뭐지? 하며 다시 침실로 돌아왔어요. 그러자 세탁기가 탈수 코스로 넘어갔는지 급가속을 하며 타타타타타 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와 함께 박자를 맞춰 아흐흥~ 아흐흥~ 하는 비명에 가까운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제서야 저는 깨달은 거죠. ‘아~ 위층에는 침실에도 세탁기가 있구나. 그 세탁기에 여자를 넣고 돌린 거구나!!! 그렇구나…….’

그렇게 위층 침실 세탁기는 빨래를 끝냈는지 쿵쿵쿵쿵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욕실로 걸어가더라고요. 하아~!!!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위층의 세계. 세탁기 소리인 줄 알고 녹화를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아니, 차라리 그냥 찍어둘 걸 그랬나봐요. “이거 좀 들어봐라. 침실에서는 세탁기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이렇게 능청을 떨며 오피스로 보냈으면 화장실 세탁기 소리는 물론이고, 여자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일도 좀 조심할 것 같은데……. 하지만 괜찮아요. 침실 세탁기는 또 돌아갈 테니까요!

추가
여러분! 정말 놀랍게도 어제에 이어 오늘도 윗집에서 빨래를 하지 뭐예요? 마침 남편과 제가 불 끄고 자려고 딱! 누운 상태였는데, 깜깜한 방에 둘이 누워 위층 빨래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남편과 저는 급 어색해져서 각자 폰으로 이것저것 보고 있었어요. 금방 끝나겠지……, 휴~~~ 아니, 그런데 이게 금방 끝이 안 나더란 말이죠. 빨리 탈수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이걸 계속 듣고 있다 보니, 저 세탁기가 여자를 죽일 작정인가 싶고 ……

그래서, 에라잇~ 모르겠다~!!! “아흐흥~ 아흐흥~” 제가 더 웅장한 고음질 사운드를 방출해줬습니다. 푸하하하~~ 폰 가지고 놀던 남편이 저의 아흐흥 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왜? 왜?” 하다가 제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아흐흥 하니까 빵 터져가지고 대폭소를 하더라고요. 아니, 내가 지금 자기 자존심 세워주고 있는 것도 모르고 눈치 없이 대폭소라니!!! 미친듯이 소리내서 웃던 남편이 나중엔 제 입을 틀어 막았어요. 그래서 효과음이 강제로 중단됐는데 갑자기 조용~? 하더라고요. 그래서 드디어 빨래가 다 됐나 보다 했는데, 아놔~ 세탁 코스 끝나고 헹굼 코스 들어가더라고요. 젠장~! 결국 한 20분 지나고 탈수 코스까지 타타타타타. 그 빨래는 볼 것도 없이 새 것같이 하얘졌을 거예요. 그죠? 그런데 만약 내일도 또 세탁기 돌린다면 이번엔 진짜 녹음해서 한밤중에 세탁기 돌린다고 컴플레인을 해야겠어요.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엘리네 미국 유아식> 저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