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지 이제 햇수로 5년째 접어듭니다. 저의 지난 포스팅을 하나씩 읽어보며 추억도 좀 곱씹고, 또 낯설던 미국 문화와 미국 생활 관련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아~ 이땐 이렇게 느꼈구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라고 느껴진 것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나도 이제 미국 살 만큼 살았구나~’라고 느껴질 때가 언제인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신발 신고 집안을 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때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집에 인터넷 설치 기사나 다른 누군가가 올 때 신발을 신고 집안을 돌아다녀서 정말 싫었어요. 거실은 카펫이 아니라 마루라서 나중에 닦으면 되지만 그 외의 공간은 카펫이라 밖에서 신던 신발로 집안을 들락날락하는 게 너무 신경쓰이더라고요. 게다가 그때 와플이가 두 돌도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죠.
누군가 신발을 신고 제 집을 다녀가고 나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생각, ‘저 신발을 신고 공중화장실도 다녀왔겠지?’
문제는 인터넷 설치 기사뿐만 아니라 같이 사는 남자인 와플이 아부지도 가끔씩 신발을 신고 집안을 들락날락하기도 했어요. 이미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하려다가 갑자기 급하게 집안에 들어와야 할 일이 생기면 신발을 벗지 않고 그냥 집안에 들어오는 거죠.
그런데 미국 생활 4년차를 지나면서 이제는 제가 그냥 신발 신고 집안을 막 돌아다니고 있더라고요.ㅎㅎㅎ 일부러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지는 않지만 와플이 아부지처럼 이미 신발을 신었는데 다시 벗기가 귀찮거나, 앞문에서 뒷마당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 신발을 벗었다가 다시 뒷마당에서 신발을 신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신발을 신은 채로 집안을 가로질러 가기도 합니다.
왜 이게 적응이 된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미국의 집은 한국처럼 방바닥 생활을 하지 않으니 바닥에 눕거나 앉을 일이 그다지 없어요. 한국에서는 겨울에 따뜻한 방바닥에 이불 덮고 누워서 TV도 보고 상 펴놓고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는 식사는 식탁에서 하고 바닥에 이불 덮고 눕는 일은 거의 없어요. (물론 미국에서도 한국처럼 좌식 생활 문화를 유지하시는 분들은 예외겠지만요.)
물론 아이들이 있다보니 종종 바닥에 앉아 있는 일이 있지만, 아이가 없는 집이라면 사실 바닥에 앉을 일도 거의 없지요.
그렇게 점점 바닥에서 생활하던 습관을 잊어가니 바닥은 그냥 발이 닿는 공간이라 집안에서 신발을 신어도 크게 개의치 않게 되었답니다. 심지어 그 반대로 맨발로 집 밖을 뛰어 다니는 일도 종종 있어요.ㅎㅎㅎ
그렇지만 한두 명이 집안에서 신발 신고 지나다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집에서 파티를 하거나 손님들이 많이 오셨을 때 그 손님들이 모두 신발을 신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까지는 아직도 적응을 못하겠어요.

미국 사람들은 옷장에 신발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스마일 엘리 블로그

2. 팁이 아깝지 않을 때
맨 처음 미국에 와서 제일 아깝게 느껴졌던 돈이 바로 팁이었어요. 한국에서는 내가 먹은 밥값만 내면 되었고, 일본에서는 내가 먹은 밥값에 세금만 더해서 내면 되었는데, 미국에 오니 내가 먹은 밥값에 세금을 더하고 거기에 왜 팁까지 더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심지어 미국서 나고 자란 남편이 일본 생활 4년 하더니,
“일본인들은 팁을 안 받아도 미국인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고 훨씬 더 친절한데, 왜 미국인들은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도 않으면서 팁이 필요한 거야?” 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오타쿠 미국인이 4년간 일본 물을 마시면 일본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아무튼 미국에서 음식값이 비싸지면 그만큼 팁도 올라가니, 팁으로 내는 돈이 10불을 넘어가면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제가 4년간 미국 물을 마셨더니 미쿡 사람이 된 건지, 이젠 팁을 막 더 퍼주고 싶은 지경까지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냥 내는 돈이라 아깝던 팁이, 내가 받은 서비스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팁도 음식값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메뉴에 씌여진 가격이 아니라 팁까지 포함한 가격을 음식값으로 생각하니 아깝다는 마음이 점점 사라졌어요.
게다가 서버가 정말 친절하거나, 신경을 많이 써준다고 느껴지면 팁의 적정 수준이라는 15%~20% 이상을 주는 게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주게 되는 날도 오더라고요.
특히 아이들이 있다보니 아이들에게 어떤 특별한 서비스를 해주면 그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거든요.

3. 형광등보다 백열등이 더 편할 때
한국의 밝은 형광등에 익숙했던 제가 남편과 결혼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남편은 형광등을 불편해 하고 저는 어둡고 답답한 백열등을 불편해 하는 포스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백열등이 어두워서 싫다며 불만을 터뜨렸던 저였건만……. 세상에! 저는 이제 밝은 형광등이 싫어요.ㅎㅎㅎ
이제는 백열등이 집안을 더 안락하고 따뜻하게 느껴지게 해서 밤이 되면 노란 불빛이 있는 게 훨씬 더 기분이 좋더라고요.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창 밖으로 새어나오는 노란 불빛도 너무 예쁘고요.
밝은 형광등인 day light은 요리할 때 사용하기 위해 주방에만 설치했고, 그 외에 식사를 하는 식탁과 거실, 각 방에는 모두 warm light의 은은한 백열등이에요.

4. 재채기 소리를 들으면 자동으로 ‘블레스 유~’가 나올 때
미국인들은 옆사람이 재채기를 하면 “블레스 유~ (Bless you~!)”라고 해주는데요, 미국인 남편과 살다보니 제가 재채기를 할 때마다 늘 ‘블레스 유’를 해줘서 그건 익숙해졌지만, 미국에 오니 저를 모르는 사람들도 “블레스 유~”를 해주더라고요.
쇼핑 하다가 재채기를 했더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블레스 유~”. 두리번 두리번하다가 부끄러워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땡큐…….”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저도 누군가가 재채기하는 소리를 들으면 자동으로 “블레스 유~”가 나옵니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어요. 그냥 내 몸의 생리 현상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요. 마치 방구가 나오면 냄새도 따라 나오는 것처럼, “엣취~”가 들리면 “블레스 유~”가 따라 나오거든요.
그리고 “블레스 유”와 “땡큐”는 세트죠. 누군가가 제 재채기에 “블레스 유”라고 해줬다면 “땡큐”가 자동적으로 따라 나오거든요.
이게 정말 의미없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고 느껴졌던 게, 한 번은 제가 재채기를 했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블레스 유”를 해줄 사람이 없었는데 저 혼자 “땡큐” 하고는 민망했던 적이 있어요. 작년에 한국 갔을 때 저 혼자 재채기하고 저 혼자 땡큐 날리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이기 미칬나?’ 하는 눈빛으로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기도 했어요.
제가 재채기할 때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블레스 유”를 해주지 않으면 왠지 섭섭한 생각도 들어서 ‘아~, 내가 미국 생활에 너무 적응을 했나보다’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주로 적절한 카드를 골라 서명만 해서 보낸다. ©스마일 엘리 블로그

5. 카드에 사인만 해서 보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
미국인들은 카드를 보낼 때 안에 내용을 쓰지 않고 이미 내용이 씌여진 카드를 사서 자신의 서명만 해서 보내는 게 일반적이에요. 물론 내용을 따로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서명만 해서 보냅니다. 또 그렇게 하라고 카드회사에서 고심해서 카드의 문구를 창작해내는 카피라이터들을 고용해 카드를 만들죠.
카드는 머니머니 해도 머니가 든 ‘기프트 카드’가 최고지만, 머니가 들어 있지 않다면 보낸 이가 정성들여 쓴 내용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한국인 마인드였던 저는 이 카드 문화가 처음에 익숙하지 않아서 시어머님이 아무 내용도 없이 서명만 해서 보낸 카드를 받고 섭섭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미국 생활 4년만에 카드 작성 문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이 편리한 문화를 완.전.내.것.으로 받아들여 아주 만족하며 잘 이용하고 있답니다.
초반에는 그래도 시부모님이나 시조부모님께 보내는 카드에는 한두 줄이라도 뭔가 내용을 써야 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왠걸요~! 그냥 유머러스한 카드를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고르면 그걸로 제 마음을 대신하고 서명만 달랑 해서 보내는데도 복부에서부터 솟구치는 그 뿌듯함!!! 마치 내가 그 유머러스한 문구를 생각해낸 것처럼요.
더 웃긴 건 심지어 남편이 서명만 달랑 해서 보낸 카드를 읽고 제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답니다. 남편이 고심해서 직접 쓴 문구도 아닌데 카드에 씌여 있는 내용이 남편의 진심이라고 찰떡같이 믿게 되는 지경까지 와서 그 문구가 너무나 감동적인 나머지, “아~ 역시 이 사람에게 난 이런 존재구나!” 하며 눈물을 펑펑… 그러다 나중에 제 정신이 돌아오면 ‘지가 쓴 게 아니지!’ 하긴 하지만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은 미국 생활이지만 이 정도면 뭐 미국 살 만큼 살았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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