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17일(금) 저녁 6시에 노스 캐롤라이나 채플힐에 소재한 원불교 NC교당에서 명진 스님 캐롤라이나 강연회 및 북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우리 캐롤라이나 지역에 귀한 손님이 오시니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지면을 통해 명진 스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명진 스님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봉은사의 주지로서 국가 권력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불의를 비판해 오신 대표적인 사회 참여 승려이다.

명진 스님은 1950년 생으로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스님들도 반드시 군대에 가야 했던 시절이어서 월남전 당시 군생활을 하게 된 명진 스님은 맹호부대원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다.
1969년, 19세의 나이에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하였고, 1998년~2005년까지 봉은사 선원장, 2006년~2010년까지 봉은사 주지로 재직했다. 봉은사 주지로 재직하는 동안 사찰 재정 공개를 시행하였고, 1,000일 기도를 완성함으로써 오늘날의 그 유명한 봉은사를 만든 주인공이다.
2010년 명진 스님이 정권에 의해 봉은사에서 쫓겨나게 된 사건은 당시 한국에서 아주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명진 스님이 봉은사 일요법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직접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명진 스님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출처: 2010년 3월 23일자 시사IN, 2010년 3월 21일 명진 스님 봉은사 일요법회 법문 전문(출처: <불교포커스>)]

“먼저 법회에서는 부처님의 법이 설해져야 하는데 오늘은 부처님의 법이 아닌 세간의 시비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신도님들과 사부대중에게 저의 부덕한 소치로 그 동안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를 드린다. 봉은사 부처님께도 참회를 올린다. (중략)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살에 해인사로 출가해 성철 스님 문하에서 1년 있다가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법주사로 출가했다. 걸망을 지고 이 선방 저 선방으로 돌아다니다 86년도에 해인사 승려대회를 계기로 사회와 종단의 여러 문제에 관심 가지게 됐다. (중략)

94년 종단개혁 때 제가 부처님께 가사를 바치며 이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산문을 떠나겠다고 했다. 중노릇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종단의 개혁이 성공했다. 형식적으로는. 지금의 종헌종법도 개혁회의에서 마련된 것이다. 그 뒤로 선방에서 남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시 봉은사 주지를 맡게 됐다. (중략)

그때 품은 뜻은 94년에 이루고자 했던 개혁을 봉은사에서 한번 해보자. 종단개혁이 법안을 바꾸고 종헌종법을 바꾸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부처님의 법대로,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절을 만든다면 종단이 바뀌지 않겠나 하는 원력을 세우고 1,0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처음 기도 시작할 때 신도님들이 믿지 않았다. 100일 지나도 믿지 않았고, 200일 지나도 믿지 않았다. 300일째 되니까 정말 기도하는 건가 생각했다. 500일째 되는 날 신도님들에게 3배를 올렸다. 만약 제가 혼자 기도했다면 벌써 그만 뒀을 것이다. 여러 신도님들이 바라보고 기대하는 그 마음을 생각했다. 중노릇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거구나 느꼈다.

봉은사가 재정을 공개할 때 재정의 투명성을 분명히 하면 신도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종단에서 ‘저렇게 잘 되니까 우리가 직영해야겠다’고 나올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중략)

2009년 11월 5일 총무원장 취임식이 있었다. 11월 20일경 김모 거사가 나를 찾아왔다. 자승 원장과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 의원이 같이 자리를 했는데, 안상수 의원이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잣절 주지를 그냥 놔둘 수 있느냐”고 했다. 그리고 용산참사에 1억 전달한 것을 두고 “돈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단다. (중략)

이후 조계종 총무원은 2010년 11월 9일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고, 명진 스님은 봉은사를 떠났다.

그리고 지난 2017년 4월 대한불교 조계종이 언론 인터뷰와 법회 등에서 종단과 총무원 집행부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 종단의 위상과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명진 스님의 승적을 박탈했다. 이에 수많은 종교,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승적 박탈 철회를 요구했지만 명진 스님은 재심 요청을 하지 않고 자유인으로서 길거리로 나와 법회를 열었다. 명진 스님은 옳은 길을 가며 스스로 성찰하는 삶을 살자고 당부했다.

명진 스님 캐롤라이나 강연회 및 북 콘서트, 08-1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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