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명 목사
(한마음 벌링턴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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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독자 여러분께서 그동안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을 진지하게 묻고 답하는 ‘마음의 문답’ 칼럼을 신설했습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평소에 궁금하게 여기던 질문이 있으시면 [email protected]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선택이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에 구원을 얻는 복음의 진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속성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죄악을 심판하시는 동시에, 사랑이시기 때문에 죄악 가운데 무능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아들을 친히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몇몇 구절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고, 공의와 사랑에 근거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선한 일을 하기 전에 태중에서 에서와 야곱 중, 야곱이 택함 받은 구절도 그 중 하나입니다.

“10.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로마서 9장 10~14절)

전체의 맥락

모든 성경 구절이 그렇지만, 이 역시 이 구절이 쓰여진 전체의 맥락 가운데 이해해야 하고, 어떤 의미로 어떤 목적을 위해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 구절인지 세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이 성경 구절이 있는 로마서 9장은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 민족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과 사명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11장까지의 내용으로 연결되는 긴 서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동족인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안타까웠고, 그들이 그렇게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2가지 이유를 설명합니다.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어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그들의 행위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며(롬9:32), 둘째는 그들이 그렇게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받기까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롬11:25)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이며(롬11:28-29),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지혜와 지식은 인간이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롬11:33).
이러한 설명 중에 선택에 대한 예시로 “에서와 야곱”이 언급됩니다. 9장 11절에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들에게 공평한 기회도 주지 않고, 결정하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합니다. 또한 13절에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라는 보충 설명은 의문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이 표현이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와 상충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는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둘째 12절과 13절의 연관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미워하심이 선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에서와 야곱의 삶에 근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택함은 편애가 아니라 책임

첫번째, 하나님께서 태중에 있는 야곱을 택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일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태중에 있던 에서와 야곱 중에서 에서를 저주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장남이 차남을 섬기게 된다는, 당시 사회 풍습과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날 것임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통 장남이 아버지의 유산을 더 많이 물려받고, 권위와 질서에 따라 동생이 형을 섬기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이룰 자손을 선택함에 있어서 세상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둘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강자보다 약자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보게 합니다.
그러면, 왜 굳이 둘 중에 한 명을 선택하셨느냐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인류 역사 가운데 개입하심은 선택을 통해서였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에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 가운데 태어난 인류는 죄악으로 기울어졌습니다. 노아 시대에 전세계적인 홍수심판으로 인류의 잔혹성을 심판하신 후에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다시 인류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신들의 이름을 나타내려고 했고, 바벨탑 사건으로 인류가 온 땅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람(후에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뀜)이라는 한 사람을 택하신 것입니다. 이미 있었던 종족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룰 민족을 새롭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순간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더 많은 책임이 따랐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은 독자인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했야 했고, 그렇게 순종했을 때 다시 이삭을 얻게 됩니다. 이 이삭의 쌍둥이 아들이 에서와 야곱입니다. 이 둘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야가 태어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형성하기 위해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는데, 세상적인 원리로 장남을 택한 것이 아니라, 약한 자, 차남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선택받은 야곱은 에서보다 훨씬 더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했고, 많은 고생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선택받은 것은 복이기도 하지만, 선택받은 목적, 즉 사명을 이루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집니다.
사울 왕은 12지파의 많은 사람들 중에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선택받았지만,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지 못하여 비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그에게는 선택받은 것이 복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일곱 아들 중에 막내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왕으로 선택받았습니다. 10년간의 광야 생활을 했고, 그 연단을 통해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 충성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뿌리요, 자손이라는 칭호까지 받게 됩니다. 따라서 선택은 하나님께서 인간 공동체에 관여하시는 방법이며, 선택받은 자들은 특권보다는 책임과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한 연단이 더 많이 주어지는 것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었고, 그것은 편애가 아니라, 야곱에게 더 많은 의무와 연단이 주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에서의 선택

두번째, 에서가 하나님께 미움을 받은 것은 선택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특권을 망령되게 여긴 그의 선택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에서의 삶이 하나님을 존중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셨다면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히 여겨서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리는 선택을 합니다. 그 행동에 대해 성경은 망령된 행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브리서 12:16)”.

야곱의 불완전한 순종

물론, 야곱의 행동도 의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기도를 받기 위해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형 에서로 변장하고 속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였다면 이러한 속임의 방법을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고, 에서와 야곱의 관계는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도 인간의 불완전한 순종으로 인해 고난을 자초하여 힘겹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선택의 목적

이처럼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애초에 에서를 미워해서가 아니었습니다. 9장 14절부터 23절에서는 야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그분의 영광과 긍휼하신 성품을 드러내기 위한, 즉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2)”
하나님께서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라도 오래 참으심으로 사랑과 관용을 보이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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