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사진 하나가 있다. 내가 미국으로 오던 날, 친정 부모님은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공원산책을 하셨다 한다. 찬바람이 느껴지는 늦가을을 배경으로 벤치에 앉은 내 부모님, 그 텅빈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가 그 사진을 보여 주었다. 둘째를 낳고 누워 있던 때라 아버지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던 터였다. 하필 그 사진이 지인의 따님 결혼식에서 생각날 게 뭐람. 아마도 그날 본 작은 꼬마 아가씨 때문인 것 같다.

두 살쯤 되었을까. 예쁜 드레스를 입고 하객으로 온 그 꼬마 아가씨는 자기와 똑 닮은 아빠 품에 안겨 디저트 테이블로 왔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앞이었고, 그 모습이 앙증맞아 저절로 시선이 갔다. 간식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어느 새 합류한 할아버지와 아빠가 양쪽에서 아이를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이내 아이 엄마와 할머니까지 합류해 아이를 둘러싸고 안았다 내려 놓았다를 반복했다. 혹시나 다칠세라 안절부절하며, 아이의 예쁜 모습을 다 담아 두려는 듯 모두가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저리 키우셨을 테지 하는 생각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았다. 표정관리가 어려워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마음을 가다듬자 주위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걸어온 길과 살아갈 길은 저마다 다르지만 어느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남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고 오답이 되지도, 내가 가는 길이라고 정답이 되지도 않는다. 잘못된 길로 접어든다면 스스로 그만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길’의 어원은 ‘길들이다’라 한다. 처음 가보는 낯선 길, 내가 길을 들여 가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연습이 없는 인생길,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스레 길들이고 나아가야 할 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오늘 결혼식은 야외에서 치러졌는데 시간 전까지 비가 오락가락해서 누구 할 것 없이 안타까워 했다. 비가 개고 해가 나오기만을 한 마음으로 기원했을 것이다. 결혼식 직전 신부 대기실에 갔더니 신부와 신부의 친구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기적처럼 작은 바람들이 모여 화창한 날이 되었다. 오늘 신랑과 신부가 함께 내딛는 길, 항상 맑은 날은 아닐 테지만 진심으로 믿어주고 빌어주는 이들로 인해 외롭지 않은 길일 것이다. 어떤 길을 걷고 있든 모두들 마음만은 늘 맑고 화창한 날들이기를…….

 

김혜정

캘리포니아에 거주.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시와 수필을 공부하고 있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고 먹기는 더 좋아한다. 마라톤, 요가, 등산 등의 취미 갖고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람을 찾는 삶을 열망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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