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의 항문 수술 경험과 노하우, 섬세한 손기술로 유명한 강윤식 원장 ©기쁨병원
강윤식 박사
기쁨병원 대표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2016 한미 참의료인상 수상 gibbeumhospital.com

치질? 치핵!
항문에 생긴 질환을 폭넓게 ‘치질’이라고 부릅니다. 항문에 살덩어리가 생긴 것은 치핵, 항문 점막이 찢어지면 치열, 염증으로 고름이 나오면 치루라고 하는데, 치질의 70% 이상이 치핵이기 때문에 치질이라고 하면 대부분 치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치핵은 생각보다 아주 흔한 질환입니다. 한국에서 다빈도 수술질환 1위인 백내장에 이어, 치핵 수술이 2위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성인의 거의 대부분이 치핵을 가지고 있지만, 특별한 증상이 없어 많은 분들이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치핵(痔核)은 항문 속에 살덩어리가 커져 있는 병입니다. 핵(核)이라는 말이 덩어리를 의미합니다. 항문의 벽 점막에 있는 혈관이 정맥류처럼 확장되면서 피가 채워지고, 점막도 함께 늘어나면서 결국 항문 통로가 불룩한 살덩어리들로 채워진 상태가 치핵입니다. 그 결과 변이 나올 때 부풀어 오른 치핵 덩어리에 상처가 생겨 피가 나기도 하고, 변과 함께 치핵 덩어리가 빠져나오는 탈항 증상도 나타나며, 가끔 치핵 덩어리 속에 혈전이 생겨 부어 오르면서 통증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히 겨울이 되면 기온이 낮아지면서 항문 주변의 모세혈관이 수축해 혈액순환 장애가 생기기 때문에 치핵 증세가 악화되기도 합니다.

치핵이 생기는 원인
치핵이 이렇게 흔한 질환이다 보니 이를 예방하는 방법들을 인터넷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다 옳고 다 맞는 치핵 예방법들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치핵 악화를 예방하려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치핵 악화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스스로 판단해서 조심할 수 있는 분별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치핵의 발생 기전을 이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치핵은 한마디로 항문 정맥류입니다. 확장된 항문 정맥이 원인이 되어 탈항과 출혈과 아픈 부종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상생활 중에 항문 정맥류가 발생하고 악화되는 것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 생각하시면 그게 바로 치핵 악화 예방법이 됩니다.

우선 항문 정맥이 확장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면 항문 정맥을 확장시키는 좋지 않은 생활습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것
• 변을 볼 때 힘을 많이 주는 것
• 무거운 것을 들거나 배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을 하는 것
• 쪼그리고 앉거나 가부좌 자세로 앉는 것 (특히 따뜻한 방바닥에)
• 술을 많이 마시는 것 (술은 혈관을 확장시킴)
이런 행동으로 인해 항문 주위로 혈액이 몰리면 항문의 압력이 높아져 항문 정맥을 확장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여기에 한 가지 꼭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쓸데없이 매일 좌욕을 하는 것’입니다. 치핵을 예방하겠다고 날마다 열심히 온수 좌욕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러는 데는 의사들의 잘못된 권고도 한몫을 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따뜻한 물에 항문을 담그고 앉아 있으면 항문 정맥이 수축될까요, 확장될까요? 당연히 확장되겠지요. 따라서 항문 부위에 통증이 있는 경우 외에는 매일 좌욕을 하는 것은 치핵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 말씀드린 내용만 조심하면 치핵이 예방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상의 여러 가지 활동들이 알게 모르게 항문에 압력을 가해 혈관을 확장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변을 자주 보는 것
•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일하는 것
(특히 앉은 채로 밤을 새는 것)
• 한쪽으로 삐딱하게 앉는 것
• 기침, 재채기를 많이 하는 것
• 여성분들의 임신과 출산 과정,
아기를 들어올려 안아주는 것
• 다이어트로 인한 변비
이처럼 항문 정맥을 확장시키는 활동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치핵 예방을 위해 취해야 할 다음 전략은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바로 확장된 혈관을 그때그때 수축시켜주는 것입니다.

치핵 예방법
확장된 혈관을 수축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은 배변 후 비데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비데의 물줄기가 확장된 항문 주위 정맥을 마사지해서 수축시켜주기 때문에 치핵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비데가 없으면 휴대용 비데나 샤워기를 사용해도 되고, 물을 받아 직접 씻어주는 것도 비슷한 치핵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비데가 항문 건강에 오히려 좋지 않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비데의 온도나 수압이 너무 높거나 청결관리가 안 된 경우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은 변을 본 후 물로 씻는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그래서인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우리나라만큼 치핵 환자가 많지 않습니다. 또한 병원에 오신 많은 환자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예전에 치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비데를 쓰고 나서부터 많이 좋아졌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치핵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은 휴지만 쓰지 마시고, 비데나 깨끗한 물로 씻어내는 습관을 들여보시기 바랍니다.
치핵을 예방하는 또 한 가지 좋은 방법은 가끔씩 항문을 오므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괄약근이 혈관을 짜주어(squeezing)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확장된 혈관을 수축시켜 치핵을 예방해줍니다. 특히 스스로 생각하기에 치핵이 좀 심하다고 느껴지시는 분들은 평소에 이 습관을 들여 놓으면 치핵 악화를 예방하는 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혹시, 혈관이 수축되라고 찬물에 좌욕을 하는 분은 없으시겠지요? 그렇게 하면 오히려 혈액순환이 느려지면서 피가 서로 엉겨 항문 정맥에 혈전이 생기고, 치핵이 부어서 심한 통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겨울철에 날씨가 추워지면 치핵이 부어 올라 고생하는 분이 많아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항문을 오므려주는 운동을 케겔 운동이라고 하는데, 이 운동을 하면 괄약근 조절력이 좋아져 치핵 예방은 물론, 요실금이나 변실금, 전립선 질환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한 하복부의 혈액순환이 활발해져 소화기관도 좋아집니다. 처음에는 3초 정도 항문을 천천히 조였다가 풀어주고, 익숙해지면 5초 정도로 시간을 늘려가시면 됩니다. 한 번에 10회 정도부터 시작해 30회 정도씩 하루에 두세 번씩 반복하면 괄약근이 튼튼해집니다. 이처럼 평소에 항문 정맥 확장을 피하고, 확장된 정맥을 수축시켜 주는 습관을 몸에 익혀서 치핵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