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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친구
옛말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돌아간다는데, 이곳 그린빌의 날씨는 아직도 덥다못해 스콜처럼 한바탕씩 쏟아지는 소나기마저도 뜨듯하다. 아무래도 9월 중순은 지나야 좀 서늘한 기운이 돌 것 같다.
대신 오늘 필자는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산들바람처럼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한국의 문화와 가치관을 좋아하고 BTS를 사랑하며 한국인과 소통하려고 한국어를 배우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한글학교 학생 까리나(Karina Gonzalez Hahn)이다.
참고로 이번 인터뷰는, 필자의 영어 실력과 까리나의 한국어 실력이 인터뷰를 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하지 않아 그린빌 한국문화원 윤숙영 원장님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였다.

한국문화 전도사
1993년 남편과 함께 그린빌에 정착하여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키우는 행복한 가정의 엄마이자, 레이저 제모관리사로 일하고 있는 까리나는 소문난 한국문화 전도사이다.
그녀는 그린빌 한국문화원 산하 한글학교에서 자신의 반 수강생을 8명에서 13명으로 늘린 일등공신이며, 작년 가을부터는 문화원 산하 ‘K 드럼’의 리더도 맡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마칭밴드(Marching Band)의 단원이어서 타악기를 좋아한다는 그녀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한국인의 가치관이 좋아요
“어릴 적부터 아버지께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그리고 한 2년 전부터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문화에 대해 알게 됐어요. 특히 한국 사람들이 어른들을 존경하고 가족간의 유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우리 아르헨티나 문화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제가 나이는 좀 있지만 BTS의 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르헨티나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까리나를 만나고 와서 조금 살펴보니, 까리나가 한 말의 의미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의 여러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남미의 유럽이라고 불리며,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95%가 카톨릭으로 다소 보수적인 성향이어서 서로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고, 개인간의 신뢰와 인적 네크워크가 중요해 가족과 친구 등의 유대관계를 통해 도움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었지만 수준 높은 대학교육을 제공해 남미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올 정도로 다른 중남미 국가들보다 교육수준이 높고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높다고 한다.

다국적 문화인의 시선
한국인과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이민자로서 그린빌에서 15년 넘게 살아온 까리나의 눈에 비친 한국과 한국인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에 관한 소식은 뉴스를 통해서 남북한 관계 등 많은 소식을 접해요. 그래서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죠.
그리고 저는 하루에 1시간에서 길게는 16시간까지 일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요.
이곳에서 열리는 여러 인터내셔널 이벤트 등을 통해 우리보다 젊고 어린 세대들이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문화와 소통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한국인의 장단점
한국인의 특징이나 장단점에 대해 그녀가 느낀 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국의 모든 게 다 좋아요. 한국의 음식과 문화, 그리고 특히 서로와 어른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말 좋아요.
그런데 굳이 단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약간 수줍음이 있어서 외부 사람들과의 소통을 꺼리는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민족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아요.”
그녀가 한국인들의 좀 특이한 부끄러움까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놀라웠다.

가족 같은 유대관계
여러 민족이 함께 한 다문화 사회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작은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가족관계처럼 서로 유대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자주 만나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심을 유지한다면 여러 민족이 함께 잘 어울릴 수 있는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와 인터뷰를 마친 오후 3시. 햇빛은 쨍하지만 청명한 느낌이다. 돌아가려고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까리나는 기왕 문화원에 온 김에 드럼연습이라도 하고 가겠다며 한국의 북을 들고 다시 문화원 연습실로 들어간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짐짓 부끄러움을 느꼈다.